[우리 함께 춤춰요] 세미나의 동화 발제문

동화가 끝난 뒤에도



꿈꾸는 오로라 ~ 어른을 위한 동화

옛날 옛적에, 슬기롭고 착한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소녀일지도 모릅니다. 어쨌거나 주인공은 어느 날 우연히 뜻밖의 모험을 시작하게 되고, 위험에 맞닥뜨리게 되지만, 결국 모든 것을 이겨내어 오래도록 행복하게 삽니다.

아직 글도 모르던 시절에 이야기의 즐거움을 깨우쳐주고, 만물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 것은 수많은 전래동화나 그림동화들이었습니다. 동화 속에는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공주님도, 지혜롭게 시련을 풀어나가는 왕자님도, 그들을 도와주는 말하는 짐승들도 있습니다. 그곳에는 꿈이 있고 사랑이 있으며 그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영원합니다. 누구나 그 동화들을 읽으며 꿈을 꾸었던 시절이 있었을 것입니다. 사실 나는 어느 먼 나라의 숨겨진 왕족이라든가, 언젠가 요정이 나를 멋진 왕자나 공주로 변신시켜 줄 거라든가, 그래서 영원한 사랑을 만나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 거라고 믿지요. 어린 아이들은 환상과 현실을 혼동합니다. 그들에게는 아직 세상 자체가 금관마을인 셈입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동화는 뇌리에서 멀어져 갑니다. 그런 ‘영원할거라 주장하는 환상’에 빠져들기엔 너무 현실적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따위 건 애들을 위한 거라고 웃고 돌아서버리면 어느 새 동화가 보여주던 절대적인 환상의 즐거움을 잊게 되지요.

그런 의미에서 『프린세스 츄츄』는 더 이상 동화의 환상에 빠져들지 못하게 된 사람들을 위한 동화입니다. 『츄츄』의 6번째 DVD 북클릿에 실린, 원안 및 작화를 담당한 이토 이쿠코 씨의 「꿈에서 깨어나도」라는 글 중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1)


『프린세스 츄츄』의 주제곡을 만들어 주시기로 하신 오카자키 리츠코씨에게
‘꿈’이라는 말을 압축해서 담아내어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어린이들은 내일을 향한 꿈을 키워가기를, 어른들은 꿈꾸는 기분을 생각해내기를...
하는 바람을 담아서.


낭만사조 작가인 괴테의 말을 빌리면, 동화는 이성에 의해서 반론이 제기되지 않고 환상이 절대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장르입니다.2) 츄츄가 보여주는 변신 판타지는 어린 시절의 그리운 꿈을 상기시키지요. 원래 변신소녀물이라는 장르가 그러한 여자아이들의 환상 위에 태어나기도 했지만, 『프린세스 츄츄』는 장르 특유의 판타지 이상의 재미를 제공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접했던 환상의 근원인 동화를 끌어들였으니까요.


현실과 이야기가 공존하는 잊혀진 세계

『프린세스 츄츄』에서는 ‘현실과 이야기가 뒤섞였다’라는 것을 아예 설정으로 내걸고 있습니다. 옛날에 동화를 읽을 때 알게 모르게 머리 속에 깔려있던 배경설정을 주입시켜주는 거지요. 이건 정말 현실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드뤼셀마이어의 술수 때문에 말이죠. 그렇다면 현실의 오리가 갑자기 공주님으로 변신해도, 말을 하는 고양이가 선생님이어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만 납득하면 어른들도 다시금 꿈을 꿀 수가 있습니다. 공주가 되어 왕자를 구하는 아름다운 환상. 거기에는 금기3)도 있고, 뭐든지 알고 있는 친절한 조력자(에델)도 있고 적(까마귀)도 있습니다. 그것은 아주아주 옛날 우리들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들었던 ‘동화’ 그대로입니다. 미운 오리새끼가 실은 백조였다는 이야기. ‘나도 이래보여도 실은...?’하고 꿈꾸었던 것들이 다시금 눈앞에서 이루어지는 거지요. 물론 어릴 때 구별이 모호했던 ‘환상과 현실의 공존’과는 다릅니다. 뮤토를 제외한 츄츄의 캐릭터들은 금관마을 쪽의 현실 태생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동화 속 인물들과 달리 무척이나 인간적이거든요.4) 복잡다단한 인물은 오히려 이해하지 못하고 단순한 인물이라야 자신을 대입하고 꿈을 꾸는 것이 가능하던 유년시절과는 달리, 아히루의 콤플렉스나 고민에 동참을 하면서 ‘현실의 나’의 동화세계 여행은 시작됩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목소리

하지만 『프린세스 츄츄』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를 완전히 동화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한 발짝 더 나아갑니다. 바로 나레이션 아주머니를 등장시킨 것이지요. 어쩐지 조금 무서운 느낌의 “옛날 옛적에...”로 매번 에피소드를 여는 나레이션. 신비한 세계로 초대받는 이야기인 『호두까기 인형』의 서곡이 일그러진 음율로 연주되고, 그에 맞추어 들려오는 정체모를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우리를 『프린세스 츄츄』의 세계로 인도합니다.

나레이션이 그냥 목소리가 아니라 살아있는 하나의 캐릭터라고 느끼기 시작한 것은 역시 9화의 「검은 구두」 부터였을 겁니다. 도중에 능청스럽게 “에구, 이건 딴 얘기네요”라고 고쳐잡는 나레이션은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레이션 아주머니’로 불려집니다. 몇 초 얘기하는 것만으로 자신의 캐릭터를 시청자에게 각인시키는 파인플레이지요. 글도 모르는 어린 시절에 누군가가 말로 들려주는 동화를 들었던 것처럼, 나레이션 아주머니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직접 들려줍니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던 그 시절의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건 단순히 추억의 구연동화 효과를 내기 위한 장치가 아닙니다. 그 이상의 효과가 있지요.

나레이션 아주머니는 때로는 츄츄에 인용된 동화의 이야기를, 혹은 『왕자와 까마귀』의 이야기를, 어떨 때는 작가 드뤼셀마이어의 이야기를, 그리고 어느 순간 그 모든 것을 포괄하는 이 작품 『프린세스 츄츄』라는 동화의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에게 직접 말을 걸어옵니다. 그녀의 카리스마가 얼마나 절대적인지는 이 한 마디로 모두 실감을 하실 겁니다.


“자아, 오늘은 여기까지.”


실시간으로 보셨던 분들은 이 한 마디가 얼마나 무섭고 치가 떨리는지 잘 기억하고 계시리라 확신합니다. 세헤라쟈데의 얘기를 듣다가 아침이 오는 통에 결말을 못 들은 술탄이 차마 그녀를 죽이지 못했다는 게 진심으로 이해가 될 정도였죠.이야기 속의 이야기 속의 이야기 속의 이야기. 무려 4중 복합구조입니다.겨우 10분 동안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매정하게 자르면서 일주일간 기다리라고 다정하게(?) 말을 걸어오는 나레이션 아주머니는 이미 캐릭터의 차원을 넘어서 우리보다 우위에 있는 어떤 절대적인 존재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주체’ 즉 화자가 아히루나 드뤼셀마이어보다 더 가까운 곳, 바로 현실에 있다는 사실을 청자에게 인식시키지요. 『프린세스 츄츄』의 세계 안에 속한 존재가 아닌 나레이션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을 취함으로서, 『프린세스 츄츄』라는 이야기는 무려 이야기 밖에 있는 우리의 현실마저 포괄하는 구조를 갖게 됩니다. 이제 츄츄의 세계관은 뮤토로 대표되는 「왕자와 까마귀」라는 동화, 아히루 및 주민들로 대표되는 「금관마을」이라는 현실, 드뤼셀마이어로 대표되는 「알껍질」이라는 봉인에 그치지 않고, 나레이션 아주머니의 존재로 인해 「우리의 현실」에까지 영역을 확장합니다. 그야말로 동화와 현실이 뒤섞이고 만 거죠.


세상에서 가장 새로운 메르헨

자아, 이렇게 우리는 『프린세스 츄츄』라는 동화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럼 이것은 과연 어떤 동화일까요? 한마디로 요약하면 ‘세상에서 제일 새로운 메르헨’5)입니다. 일단 겉보기에 메르헨 같기는 한데, 등장인물들을 보자면 뭔가 색다르지요. 동화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도무지 일반적이지가 못합니다. 공주님은 오리요 왕자님은 히로인이요 마녀는 사랑을 얻지 못하는 비운의 여인이고 기사는 자신의 운명에 짓눌려 있습니다. 2부로 넘어가면 더 뒤죽박죽입니다. 왕자님은 까마귀가 된데다 공주님은 그 저주를 풀지 못합니다. 알고 보니 마녀는 마왕에게 잡혀간 소녀였으며 이미 죽었어야 할 기사는 동화의 벽을 넘어버립니다. 이토록 황당한 캐릭터들을 데리고 어떻게 보편성이 중요시되는 메르헨이라고 자처할 수 있을까요?

『프린세스 츄츄』는 동화답게 가장 일반적인 동화의 구조를 받아들여 채용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분법적 구도지요. 선/악, 남/여, 동/서, 집/숲 하는 식으로 딱딱 나누어 떨어지는 동화의 구도는 인간이 가지는 이중성의 엑기스를 추출해 노골적인 화법으로 드러냅니다. 『츄츄』 역시 그런 대립구도를 보여줍니다. 애초에 이 소동의 원인이 된 책 제목부터가 『왕자와 까마귀』인걸요. 이렇게 말하면 그야말로 동화처럼 단순할 것 같지만, 막상 그 와중에 일어나는 캐릭터들의 다양한 변화를 보고 있자면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먼저 그곳에는 왕자라는 이름의 절대선이 있었고 까마귀라는 절대악이 있었습니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왕자와 모두의 사랑을 먹어치우려는 까마귀. 두 개의 대립항은 서로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래서 까마귀가 동화에서 현실로 튀어나온 순간, 왕자는 그를 봉인하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심장을 부숩니다. 왕자가 사라진 순간 까마귀도 같이 사라졌고, 이야기의 영역이 현실로 확장되면서 동화의 일부가 된 금관마을은 갑자기 양대 축이 없는 공백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는 멈춰버렸지요. 이야기를 다시 움직이기 위해, 드뤼셀마이어는 현실의 아기오리 한 마리를 이야기 속의 ‘프린세스 츄츄’로서 캐스팅해 집어넣습니다. 츄츄는 왕자의 마음을 되찾아주는, 더 정확히는 마음을 되찾고자 하는 왕자의 의지가 형상화된 분신입니다. 츄츄의 등장에 따라 반대편의 세력도 움직이게 되지요. 양분구도인 만큼, 왕자의 대리인인 츄츄를 저지하는 자는 자연히 왕자에 반하는 까마귀의 위치에 서게 됩니다. 그런데 『프린세스 츄츄』는 동화의 양분구도를 취하고 있으면서도, 캐릭터의 위치를 쉴 새 없이 교체하면서 이야기의 단조로움을 없앱니다. 그에 따라 인물들의 성격도 계속 입체적으로 변하지요. 앞서도 말했듯이 그 모습은 도무지 동화 속의 인간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뮤토를 제외하고). 마치 현실의 인물들을 ‘동화’라는 틀이 억눌러 지배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마저 줍니다.


  동화「왕자와 까마귀」의 대립하는 인물 변화


 에피소드 ㅣ      왕자    ㅣ      까마귀        ㅣ   중립인물


   1-6화   ㅣ      츄츄     ㅣ      화키아        ㅣ  뮤토, 루우


   7-8화   ㅣ      츄츄     ㅣ  끌레르/화키아 ㅣ     뮤토


   9-11화 ㅣ  츄츄-뮤토  ㅣ     끌레르        ㅣ    화키아


 12-13화  ㅣ 츄츄-화키아ㅣ 끌레르(+뮤토) ㅣ


 1부 엔딩          츄츄와 뮤토의 춤 (끌레르 패배)


  14-20화 ㅣ츄츄-화키아ㅣ 끌레르-뮤토    ㅣ


                    (유령기사)


  21-23화 ㅣ      츄츄     ㅣ         뮤토       ㅣ 화키아(현실),루우(갈등)


     24화  ㅣ  츄츄-뮤토  ㅣ      까마귀       ㅣ 화키아(현실),루우(인간)


  25-26화 ㅣ  왕자(뮤토)ㅣ       까마귀      ㅣ 화키아(현실),루우(인간)


 2부 엔딩     까마귀의 피를 받은, 왕자-루우의 결합(정반합)




이렇듯, 마치 톱니바퀴가 맞아 들어가듯이 서로 자리를 바꾸며 동화 속의 양 대립 구도가 계속되지요. 자리를 이동하지 않는 것은 프린세스 츄츄 뿐입니다. 그래서 츄츄는 ‘이야기를 움직이는 자’이고, 츄츄가 이야기 속에서 빠져나온 순간 대립항을 잃은 이야기는 더 굴러가지 못하고 멈춰버렸던 거지요.

대립구도 외의 동화적 요소를 찾아보자면, 이야기를 움직이는 힘을 갖고 있는 또 하나의 인물, 우즈라를 얘기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순간에 캐릭터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고, 심지어 이야기를 역행시키는 힘마저 가지고 있었던 우즈라. 우즈라와 그녀의 전신인 에델은 동화에서 조력자로 분류되는 인물입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주인공에게 길을 알려주거나 새로운 아이템을 주거나 하는 식으로 이야기가 제대로 움직이도록 인도하는 요정이나 할머니, 동물들이 소위 조력자라 불리죠. 그러나 『프린세스 츄츄』에서 나타난 조력자는 정체불명이거나 신비로운 분위기라는 점은 같아도, 이야기 진행을 위한 들러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사연을 가지고 변화한다는 데서 캐릭터에 차별성을 보입니다. 예전에 에델은 드뤼셀마이어가 명하는 대로 아히루를 돕고 이끌었지만, 우즈라는 이제 자신의 의지로 아히루를 돕고 이야기가 갈 방향을 인도합니다. 화키아가 아히루를 구해낼 수 있었던 것도, 루우가 자신의 과거를 알게 된 것도, 펜던트의 비밀을 알려준 것도 드뤼셀마이어의 대필기계로 안내한 것도 그녀였습니다. 에델이 스스로 몸을 태우면서까지 바랬던 소망이 이루어진 겁니다. 13화를 장식했던 불꽃이 바로 그녀의 소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행한 ‘자신의 의지에 의한 조력’이었지요. 덕분에 우즈라는 드뤼셀마이어의 꼭두각시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조력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됩니다. 이야기가 이야기꾼의 통제 안에서 벗어나 그야말로 제멋대로 굴러가기 시작한 거지요. 오죽하면 드뤼셀마이어가 에델이 있었더라면 하며 한탄을 하겠습니까.

문제는 결말입니다. 『왕자와 까마귀』의 비극은 동화인데 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습니다. 에델도 말했지요. “끝이 없는 이야기는 잔혹한 것”이라고. 영원히 끝나지 않는 싸움의 숙명, 이보다 더 잔인한 고착상황이 있을까요. 이야기꾼이 결말을 써주지 않았기 때문에, 이 대치상황은 끝나질 않는 겁니다. 왕자와 까마귀는 한참 싸우다가 결국 또 심장을 부숴서 공백상태를 맞게 되고, 다시 츄츄가 나타나서 새로우면서도 오래된 싸움이 반복되고... 그것이 드뤼셀마이어가 말하는 ‘세상에서 가장 잔혹한 비극’이었겠지요. 영원히 끝나지 않는 순환엔딩.

하지만 이야기 바깥에서 끼어든 화키아와 아히루의 도움으로, 뮤토는 자신의 동화를 끝낼 수 있게 됩니다. 왕자가 있는 한 까마귀도 있는 것이 법칙이었지만, 자신의 몸속에 까마귀 피를 받아들이고 마찬가지로 까마귀의 피가 흐르는 인간 소녀 루우를 프린세스로 맞음으로서 홀로 오롯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 왕자의 숙명에서 벗어난 겁니다. 그리하여『왕자와 까마귀』는 해피엔딩을 맞이하게 되지요.


금관마을에서 현실이 되는 동화

『프린세스 츄츄』는 캐릭터들을 양쪽 진영으로 교차시킴으로서 동화가 가진 위험성, 단조로운 이분법 구도가 빠지기 쉬운 ‘뻔한 이야기’라는 함정에서는 상당히 탈피했습니다. 하지만 『츄츄』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어른들을 위한 요소를 계속 배치합니다. 아는 것이 많아져 단순한 동화의 플롯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된 어른들에게 ‘아는 만큼 보이는’ 이야기 속의 이야기를 제시하는 거지요.

『프린세스 츄츄』 내에 배치되고 인용된 여러 가지 동화와 전설들은 필연적으로 중첩된 의미를 가지고 시청자에게 어필하게 됩니다. 프린세스 츄츄가 춤을 출 때 그것은 그저 츄츄만 놓고 생각할 수 있는 성격의 이야기가 아니게 되지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동화가 ‘금관마을에 현실이 되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달은 시청자들은 자연히 뒷이야기를 ‘예상’하려 듭니다. 캐릭터들이 ‘동화와 같은’ 혹은 ‘전설과 같은’ 익숙한 선택을 하고 그러한 행동을 보여주니까요. 그러나 이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동화도 지역에 따라 여러 버전이 있고, 클래식 음악이나 발레에 표현된 버전이 다 다릅니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동화와 전설들이 씨줄날줄처럼 캐릭터들의 동선 위에 겹쳐 지나가기 때문에 단순하게 하나만 가지고 생각할 수도 없지요. 수상한 식당에서 식사를 대접받는 뮤토와 아히루(헨젤과 그레텔), 자살을 기도하는 뮤토와 비극적 연인인 츄츄(로미오와 줄리엣), 펜던트를 떨어뜨리고 도망치는 츄츄(신데렐라), 소유하고픈 욕심이 상대를 망쳐버렸음을 깨닫는 끌레르(라 실피드) 등 동화에서 모티브를 따와 상황을 구성한 경우도 많지만, 에피소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체 흐름을 타는 이야기들도 있습니다.

4화에 사용된 『지젤』의 이야기는 얼핏 보았을 때 자살한 소녀의 이야기, 그리고 사랑을 이룰 수 없는 프린세스 츄츄의 이야기로 보입니다. 하지만 아기오리의 장까지 보고 나면 그것은 단순히 에피소드 하나에 인용된 흐름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에델은 아히루와 루우 양쪽 다에게 지젤의 얘기를 했고, 훗날 ‘평범한 인간소녀’로 밝혀진 루우와 ‘그냥 오리’로 돌아가게 된 아히루는 ‘왕자님과 맺어지지 못한다는’ 슬픔에 절망의 호수에 빠져듭니다. 신분의 차이로 자살하게 된다는 지젤의 전설처럼요. 뿐만 아니라 ‘초자연적인 존재’들인 츄츄와 자살한 소녀의 춤 사이에서 잊혀져버린 ‘평범한 소녀’ 루우의 모습은 후반 왕자와 맺어질 까마귀 공주가 아니라 그냥 인간임을 알았을 때의 복선이 됩니다.6)

『백조의 호수』 역시 그러합니다. 1부만 놓고 보았을 때, 누가 봐도 백조는 츄츄요 흑조는 끌레르로 보입니다. 하지만 2부 마지막으로 가면 이 구도가 뒤집히게 됩니다. 『백조의 호수』에 나오는 왕자 지크프리트의 최대 키워드는 ‘배신’입니다. 그리고 오데트는 배신당했어도 왕자를 향한 사랑을 멈추지 않음으로서 지크프리트가 되돌아오게 만들지요. 그리하여 13화에서 뮤토가 자신의 선택을 뒤집고 끌레르를 버렸음에도 루우가 계속 자신의 사랑을 지켰기 때문에 뮤토는 결국 루우에게로 돌아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랑의 고백으로 왕자를 바꾼 것은 루우고 뮤토는 이야기 속의 존재거든요. 동화 속의 공주님이나 왕자님은 중간 과정에서 누가 어떻게 자기를 도와줬건 간에 반드시 ‘자신의 저주를 풀어준 주체’와 결혼을 합니다. 백설공주건 잠자는 숲속의 미녀건 개구리 왕자건 말이에요.7)

이와 같이 기존 동화의 모티브뿐만이 아니라 그 전개 양상도 동화의 형식을 빌렸기 때문에, 자연 보는 이에게 ‘운명적’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와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에 ‘예언된 전철’을 따라가는 것처럼 생각되거든요. 마치 드뤼셀마이어에게 조종당하는 듯이.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또 다른 동화의 암시가 치고 들어오기 때문에 결국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의외성을 획득합니다. 심지어 배경에 흐르는 음악 하나에도 그만의 이야기 및 복선이 있습니다. 가령 화키아와 아히루가 절망의 호수에서 춤추는 씬에서는 프로코피에프의 ‘이별 직전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흐르지요. 그런가 하면 정체불명의 여인 에델이 돌리는 오르골의 멜로디는 코펠리아의 ‘자동인형의 춤’입니다. 시각적으로도 청각적으로도 가지가지 이야기가 빈틈없이 흘러나오기 때문에, 보는 사람으로서는 많은 정보를 찾아내면 찾아낼수록 그 암시와 상징에 휘둘려 헷갈리게 됩니다. 알면 아는 대로, 몰라도 모르는 대로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이 『프린세스 츄츄』지요.

『프린세스 츄츄』는 한편의 흥미로운 동화와도 같습니다. 하지만 그건 알 속에서 보여지는 꿈일 뿐. 이제 이야기는 진짜 현실이 되려 합니다. 처음부터 이 동화는 각성을 위해 시작된 것이었으니까요.



각성의 입맞춤 ~ 그리고 현실

후반부가 되어 이야기가 클래이맥스로 치달으면서, ‘프린세스 츄츄’의 운명은 더 명확해집니다. 그녀는 『왕자와 까마귀』라는 동화의 히로인이 아니라 조연이라는 것이지요. 물론 이제까지 몇 번이고 “본문에 몇 줄밖에 언급되어 있지 않은” 이라고 강조를 해왔습니다만, 이야기를 움직이는 것은 그녀였기에 설마하니 왕자에게 선택받지 못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비분강개하는 사람들도 많았었지요.

하지만 잠깐 다르게 생각해볼까요. 아히루는 원래 한낱 오리였습니다. 오리밖에 안 되는 주제에 한때나마 프린세스 씩이나 되었고 왕자님과 춤도 춰봤으니 충분히 주제넘은 행복을 누린 거 아닙니까? 원래라면 감히 바라지도 못했을 꿈같은 경험을 했으면서 이제 와서 돌아가기 싫다고 떼쓰는 건 은혜도 모르는 게 아닌가요?

물론 보는 이는 그렇게 생각할 수 없습니다. 다들 아히루를 연민하고, 공감하고, 눈물을 흘리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1부에서 슬픈 마음이, 자애로운 마음이, 두려운 마음이 돌아가기 싫다고 반항을 할 때 우리는 어떤 생각을 했었던가요. 램프의 이야기나 지젤의 이야기를 보면서 나름대로 안됐다고는 생각해도, ‘그래 그러면 네가 그냥 마음의 조각 가져’라고 생각하신 분은 한 분도 안 계실 겁니다. 중간 신세타령이야 어쨌거나 최종적으로는 뮤토에게 마음을 돌려줘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며 보셨겠지요. 현실에서라면 그렇게까지 냉정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것이 동화이기 때문에, 동화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무의식 중에라도 ‘왕자님을 위해서라면 저런 일회용 조연쯤은’이라고 여기게 되는 것이죠. 흔히 동화에선 ‘왕자님과 공주님은 오래도록 행복하게...’가 나오면 해피엔딩이라 생각되지만, 이렇게 뒤집어 보면 참으로 싸늘한 얘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마지막 싸움이 벌어지면서 츄츄가 왕자와 happily ever after를 할 수 없음이 뚜렷이 드러나고, 그녀 역시 이야기로부터 사라져야 할 순간이 오게 됩니다. 그리고 ‘동화니까’라는 이해 아래 이제까지 다른 조연들에게 너무도 당연히 요구했던 것들이 아히루에게 돌아오는 순간, 그것들은 ‘나의 현실’이 됩니다. 더 이상 동화는 동화가 아니게 되고 말지요. 지젤의 전설이, 램프의 사연이 현실로 변합니다. 달콤했던 꿈이 깨지는 순간입니다. ‘프린세스 츄츄’. 그건 아름다운 츄츄복에 감싸여 일시적으로 걸린 마법일 뿐, 내 자신을 공주님으로 만들어주지는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면 프린세스에게 주어진 이름조차도 그렇습니다. 마음의 조각이 부여해준 츄츄복을 벗으면 아무런 존재도 아니게 되는 동화 속 역할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있어서 무섭기까지 합니다.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내가 공주님이 된 줄 알았는데, 왕자님과 영원토록 행복하게 살 줄 알았는데, 나 역시 사실은 히로인이 아니라 그냥 잊혀져갈 조연이었다... 그 무서운 사실과 직면하는 순간 사람은 얼어붙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입니다. ‘네 인생의 주인공은 너다’라고들 표현하지만, 주인공이라는 건 이야기에 존재하는 겁니다. 자신이 세상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현실에는 주인공이라는 게 없습니다. 왕자님도 없고, 변신의 마법도 없고, 모두에게 사랑받지도 못하고, 자신의 싫은 부분은 그대로이고 골머리 썩는 문제는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들 꿈에서 깨고 싶지 않아합니다. 이대로 꿈만 꾸고 있으면 안 되냐고, 다시 한번 왕자는 심장을 부수고 또다시 공주가 되고 기사가 되어 특별한 존재인 양 행세하며 살면 안 되냐고 애원하지요. 꿈을 꾸는 공주와 꿈에서 깨어난 공주, 어느 쪽이 행복한 걸까요. 어째서 꿈에서 깨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요? 모처럼 아름다운 꿈을 꾸고 있는데 왜 이렇게 잔인하리만큼 현실과 맞부딪쳐야 하는 걸까요. 화키아는 거기에 대답합니다. 진짜 네 인생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라고요. 누군가가 부여한 운명이 아니라 현실 위를 자기 발로 걸어가야 하기에. 그리고 그것이 우리들에게 이 꿈을 보여준 목적이자 메시지이지요.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콤플렉스, 그건 아마도 모두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오지랖 넓고, 대책 없이 착하고, 변신도 하고 왕자님도 만나는 등 역대 이입 방해 요소를 다 갖춘 듯이 보이는 아히루가 모두에게 사랑받는 게 아닌가 합니다. 요새는 이런 히로인이 여자들에게 그다지 환영을 못 받지요. 수많은 소녀 판타지가 있습니다만, 대개는 착하고 평범한 소녀가 멋진 왕자님을 만나는 것이 기본입니다. 그게 나라고 이입하며 본다면 즐겁지만 어느 이상 반복되면 허무해집니다. 그건 결국 그 여자애의 얘기였을 뿐 ‘내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책을 덮고 나면 내 현실 속에서 나는 여전히 주인공이 아니니까. 그래서 이야기에 선택받지 못한 비운의 조연 아히루가 다시 일어설 때 시청자들은 뼈저리게 공감합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뮤토지만 나의 주인공은 아히루니까요. 그리고 그것이 바로 화키아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화키아는 이야기를 씁니다. 히로인이 될 수 없었던 작은 오리의 이야기, 그럼에도 볼품없는 자신을 당당하게 받아들였던 아히루의 이야기를요. 그것은 화키아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했고,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했습니다. 급기야 작가가 해피엔딩을 부여해주지 않았던 동화『왕자와 까마귀』에 ‘그리하여 왕자와 공주는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한마디를 끌어들이지요. 츄츄복을 벗은 뒤엔 이야기의 흐름에서 쫓겨나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그렇기에 역으로 이야기 속에 존재하지 않는 현실의 희망을 가지고 올 수 있었던 오리 한 마리를 통해서. 그렇게 환상이라는 이름의 알을 깨고 「아기오리의 장」은 완성됩니다. 화려한 츄츄복을 걸친 프린세스보다 볼품없더라도 현실의 네가 더 가치 있다고 외치면서 오랜 꿈을 깨우죠. 13화에서 ‘진정한 나는 그냥 오리일 뿐이지만 당신이 있으면 츄츄가 될 수 있어’라고 독백하던 아히루와, 26화에서 ‘진정한 나는 그냥 오리지만 그래도 괜찮아’라고 말하던 아히루 사이에는 얼마나 엄청난 차이가 있는지요. 오리가 백조가 되는 건 『미운 오리새끼』 같은 동화에서나 있는 일입니다. 현실의 오리는 아무리 자라도 오리일 뿐 백조가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오리인 자신을 감싸안고 현실로 돌아가겠다는 아히루의 고백은 얼마나 눈물겹고 사랑스럽고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꿈에서 깨어나도 꿈을 꾸는 듯한 오로라 공주처럼.

동화에는 끝이 있지만, 현실에는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끝이 없는 이야기’인 현실은 잔혹합니다. 그것을 알기에 사람은 이야기를 원하고 엔딩을 갈구합니다. 하지만 아히루와 화키아는 현실로 돌아가라고 말하지요. 끝이 없는 대신, 현실에는 쫓아가도 쫓아가도 잡히지 않기에 가치가 있는 ‘희망’이 존재하니까요. 화키아가 새로이 쓰기 시작한 이야기처럼 말입니다.


2005. 3. 23. by 살아가자



주석

1) 한국에서 발매된 츄츄 DVD의 북클릿 33p에 전문 번역이 실려 있습니다.
2) M. Thalmann : Das m?rchen und die Moderne. Stuttgart 1961. S. 54
3) 프린세스 츄츄가 고백을 하면 빛이 되어 사라진다는 금기는 당연한 겁니다. 츄츄는 왕자와 합쳐져야 할 존재이지 맺어질 수 있는 존재가 아니거든요. 자기 스스로에게 반한 나르시스 전설의 결말을 생각해보면 더 명확해집니다.
4) 그 인간적인 고민의 근원은 자신이 동화 속의 선택받지 못한 조연일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왕자와 맺어질 수 있을까, 헛되이 죽지 않을 수 있을까... 보는 사람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두려움이죠. 자기가 세상의 주인공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무니까요.
5) 『프린세스 츄츄』의 공식 캐치프라이즈.
6) Vgl. 모종의 인물, 츄츄동맹 BBS 게시물 No.901
7) Vgl. 청룡 하안사녀


참고문헌

츄츄 동맹 BBS
http://tutu.lil.to

사이암 님의 [자학소년]
http://psyam.new21.org/alice//dinner-tutu-main.htm

모종의인물 님의 [Flying teapot]
http://ft.pe.kr


洪順玉, [幼兒童話와 fantasy에 關한 硏究 (A Study on the fairy tale and fantasy)], 論文集, Vol.7 No.1, 1986.
張南駿, [독일 낭만주의 동화 연구 (《Marchen》in der Deutschen Romantik)], 人文學硏究, Vol.20 No.-, 1993.
양윤정, [영국 아동문학의 발생과 19세기 문학 동화의 특성 (The Rise of English Children's Literature and the Charatcteristics of Literary Fairy Tales in the 19th Century)], 동화와번역, Vol.6 No.-, 2003.


김희경, {명작동화의 매력}, 교문사, 1992.
린다 시거, {시나리오 거듭나기}, 시나리오친구들, 2001.
이우학 외, {동화와 설화}, 건국대학교 동화와 번역연구소, 새미, 2003.

by 살아가자 | 2005/05/04 20:22 | 화키아의 불타라 펜 | 트랙백(2)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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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고독한별의 망상★놀이터 at 2005/05/07 09:06

제목 : <프린세스 츄츄>의 이야기 세계 구조에 대한 분석...
<프린세스 츄츄>를 DVD로 재감상하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쓴 이 글에는 몇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프린세스 츄츄>를 한번도 본 일이 없는 사람은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이해를 못한다. 둘째, <프린세스 츄츄>를 본적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어지간한 팬이 아니면 읽어도 재미가 없다. 셋째, <프린세스 츄츄>를 어지간히 좋아하는 팬이라도 골치아픈 글을 싫어하면 스트레스만 쌓일 뿐이다. 이 글은 제가 오랜만에 '뇌가 배배 꼬이는' 고통을 즐기고(?) 싶어서 쓴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딱딱하고, 재미없고......more

Tracked from Tutu Forever at 2005/05/12 01:50

제목 : 동화가 끝난뒤에도.. by 살아가자님.
프린세스 츄츄의 세계관을 일목요연하게 쉽게 정리해주신 명필입니다! 아울러 제가 글을 쓰는데 바탕이 된 세계관이기도 한 셈이니, 꼭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more

Commented by creasy at 2005/05/12 02:03
멋진 글 잘 읽고 갑니다. 전에도 읽었던 글이지만, 여기서 지금 다시 보니 공감 100% 입니다; 트랙백 해가고 싶은데.. 아아.. 이거 블로그 기능을 아직 완벽하게 숙지하고 있는게 아니라 trackback 이렇게 쓰는게 맞는지 모르겠어요. -_-;; 혹여 아니면 제게 말씀해주세요. T_T
Commented by 살아가자 at 2005/05/12 09:10
저도 초보인데 ;ㅁ;
하지만 맞다고 생각됩니다. 어쨌거나 양쪽에서 궁금한 사람들이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링크를 보여주면 되는 거겠지요?
소개 감사드려요 ^^
Commented by 베이브 at 2006/01/13 22:25
와와;; ㅠ ㅠ 정말...너무나 잘쓰셨어요.. 보면서 맞다! 라는 찬사를 몇번을 했는지..츄츄는 정말 세기에 남을 걸작이에요. ㅠ 그리고 이걸 쓰신 살아가자님 정말 최고입니다.. ^^
Commented by 살아가자 at 2006/01/16 13:11
부 부끄럽습니다 ;;;;
태클 넣을 구석이 많은 글이예요 저거. 그런데 저 내용으로 발제를 했다니 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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