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XA ~ 레크레카 감상문

통칭 레카(LEXA)라고 불리는 이 3D 애니는, 2001년 드림픽처스21에서 제작하고 EBS에서 방영한 한국 애니메이션이다. 국내에서 전무후무한 RPG풍 판타지 애니메이션인지라 전부터 보고 싶다고 생각은 했는데, 중간까지 나오다 만 DVD가 한 장당 만 구천원이 넘는 걸 지를 용기는 도저히 없어서 이제까지 참고 있었다. 분명히 가격이 떨어지겠지... 그 전에 품절되면? 포기지 뭐.... 하면서. 그런데 요번 비트윈 행사 때 가격이 파바박 떨어졌길래 질렀다.

1화 틀면서 보고 나면 감상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1화 보면서 뒹굴뒹굴 구르면서 웃다가 이건 감상 못 쓰겠다고 마음을 바꿨다.

그러다 제작과정 서플을 보고 역시 뭔가 쓰기는 해야겠다고 고쳐 생각했다.



그래서 우선 1화만 보고 써본다.

먼저. 플롯은 좋다. 뒤의 전개도 대강 알고 있는 나로서는, 판타지로서 갖춰야 하는 기본기를 충실히 다하고 있다고 생각해줄 수 있다. 사실 애니북을 먼저 읽고서 흥미를 가지게 된 건데, 스토리가 꽤 괜찮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애니 기획의 고질병은 그거였으니까(걸작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기본기는 하고 있는데다 문화컨텐츠를 사용하는 방식이 좋아서 맘에 들었다).



그런데....


연출 좀 어떻게 해봐


이해는 한다. 2D도 아니고 3D라는 생소한 표현을 어떻게 연출해야 되는지 무슨 노하우가 있겠어... 2D보다 표정의 표현력이 떨어지는 것이 3D의 치명적인 약점이니 제스츄어가 크기도 해야겠지만, 그렇다고 오버액션은... 로시아가 슈리를 꼬시는 장면과 도리가 무릎꿇고 엄마~ 하면서 양팔 로켓트 펀치를 날리는 장면에서는 그냥 배를 잡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냥 연극적 연출을 차용해왔다고 돌려서 말하는게 좋으려나.

게다가 시퀀스 하나에 음악 한 곡, 이게 기본 아닌가? 갑자기 음악이 없어졌다 사라졌다 하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보통 음악이 끝나면 한 시퀀스의 끝이고, 다음 시퀀스가 이어져야 하는데 그런 법칙을 깡그리 무시하고 있으니 '너 아까 퇴장한 줄 알았는데 아직 안 갔었냐?' 라는 느낌의 전개 연속. 그리고 좋은 노래도 한두번이라는데 주제곡을 20분 동안 세번이나 우려먹는 건.... 이봐, 그런 건 한국판 우테나에서 충분히 당했다구.....

여기에 그칠소냐, 기본 중의 기본인 에코 활용도 못하고 있었다. 내면 독백과 대화가 구분이 안 될 뿐 아니라, 도리의 꿈 속에서 울려퍼지는 "레~크~레~카~"는 정말... 개그였다.... 성우분이 아무리 무섭게 무게를 잡으셔도.... 안되는 건 안되는거다 orz

전개도 문제가 심각했다. 말하고자 하는 바는 눈치로 캐치할 수 있지만, 장면과 장면이 뚝뚝 끊어지니 진짜 생뚱맞다. "내용같은 건 아무래도 좋다...! 당연한 때에 당연한 장면이 나와주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편할 수가....!" 라던 호노오 선생님의 말씀이 절실하게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한마디로, 3D라는 것을 어떻게 연출해야 하는지 아직 감을 못 잡고 갈팡질팡하는 상태였다. 허기는 3D로 화려해야 하는 판타지 액션 로드물을 표현하겠다니 사실상 자살행위지.

그렇다고 3D로서의 장점이 없는 건 아니다. 비록 얼굴은 전부 뻣뻣할지언정 (역시 한국 애니의 고질병인) 색감은 예쁘다. 캐릭터디자인도 멋지다. 복장도 코스프레를 염두에 둔 것처럼 특징있고, 색지정 역시 딱 보기만 해도 아이들의 마법속성을 알 수 있게 해놓았고. 건물 디자인이나 매카닉(?) 디자인도 애쓴 티가 난다. 그런 의미에서 3D를 살린 DVD 메뉴도 좋았다. (근데 화면선택에서 에피소드 구분조차 안해주면 어쩌자는 건지....)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스토리와 캐릭터와 디자인과 색감은 좋은데 연출력이 제로....
(대신 연출가라는 자리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깨닫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막상 제작과정을 보자니, 그 열악함에 기겁하게 되더라. 이 제작과정 필름도 시나리오 쓰신 분이 셀프로 다 찍으신 거고(캠코더라 화질상태가 장난이 아니다) 성우분들이 녹음하시는 스튜디오는 그야말로 창고였다... 으윽... 투니버스 전용 스튜디오 시설을 보고 온 나로서는 정말 입을 저절로 떠억 벌릴 수밖에 없었다. 저런 장소에서 이 수준의 더빙이 나오다니, 보는 사람 가슴이 다 찢어진다. (딴 얘기지만, 레카가 EBS에서 방영하게 된 이유도 거기 있다. 만들기는 다 만들었는데 성우들 불러다 더빙할 예산도 없더랜다. 그래서 방송국에 팔 수조차 없었는데, EBS에서 더빙을 자사 성우들로 해주겠다고 해서 거기 넘겼다는) 그 어색한 3D 렌더링 하나 만들려고 전 스탭진이 밤을 꼬박 새가며 노가다에 노가다를 거듭하고 있었다. 처절하다는 말로는 절대 부족하다.

그쯤 되면 더 이상 무슨 말도 붙일 수가 없더라.... (<- 위에 쓴 건 다 뭐냐)

그렇지만 성우진은 나름대로 빵빵했다. 도리의 목소리가 귀에 익었다 싶었는데, 나중에야 하울의 캐스퍼인 걸 알고 뒤집어졌다. 보통은, 아니 당연히 10살 남자애 목소리는 여자 성우가 맡았었는데, 엄상현님 대단하시다....(당시는 무명이셨지만) 히로인인 곤지의 성우분은 차명화님이고.

나중에 레카에 대해서 더 써볼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 근데 막상 보고 나니 너무 의욕이 없어져서.....
예전에 애니북을 봤을 때는 상당히 재미있다고 느꼈는데, 시나리오가 괜찮아도 연출력이 안 받쳐주면 얼마나 상태가 심각해지는지 깨달았달까. 첫술밥에 배부를 수는 없는 거니까 후반부로 진행하면 나아지겠지.

근데 문제는, 이 DVD가 3권까지밖에 안 나왔다는 점이다. 과연 볼 기회가 있을까....


by 살아가자 | 2005/05/22 01:02 | 올망졸망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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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Innocent at 2005/05/22 01:20
밸리에서 제목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몇년 전에 나름대로 좋아하면서 봤던 거였거든요. 일요일 아침마다 배를 잡고 구르며 잠을 깼지요;<-
DVD가 있었군요...이로서 저도 지르게 생겼습니다 on_ 사실 이건 뒤에 가야 더 재미있는데...굉장히 고지식한 염장의 정석을 따른달까.
아실지 모르겠지만요, 저기 맨 처음 그림에서 맨 뒤에 있는 보라색 머리의 약초사가 크리스라는 애인데, 구자형씨가 맡으셨답니다! 제가 여기서 보고 반했지요(제로스는 너무 오래되어서 구자형씨인지 모르고 봤었고;) 요즘 하시는 유희는 제대로 못 들어봤네요(사실은 기억이 잘 안 나는;)
Commented by 살아가자 at 2005/05/22 10:38
헉 구자형님이셨습니까.... 이런;; 그러고보니 그렇네요.
레카와 인연맺은 데는 아직 이야기거리가 더 있답니다 >_< 또 포스팅할 수 있을지도.
...그건 그렇고 이걸 알아보는 분이 계시다니 역시 이쪽 바닥이란;;;;
Commented by 유유 at 2005/05/22 12:30
매 주말마다 되도록 챙겨보려고 했던 그 레카군요.'-' 그래도 우리애니치곤 꽤나 연출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었는데. 성우나 표현이나 기타 등등이 마음에 들어서 '연출이야 항상 그렇지' 라는 식으로 넘어가고 말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어중간한 일요일 오후시간대에 보던거라 동생눈치보면서 시청한 탓도 있을 수도 있구요... 쇼프로가 그리 중요하냐!

그나저나 마지막 글은... 웃음이 나오지만 가슴 아파서 정말 눈물이 나올 것 같은 비화네요. 우리나라 애니제작의 현주소입니까. 어응. 정말 눈물나요.
Commented by 살아가자 at 2005/05/22 23:46
눈물나지요...
다음번에 쓸 작정입니다만 마지막회의 연출은 괜찮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제가 그걸 보고 5시간 동안 레카를 찾아서 서핑을 했으니.

애니제작...... 진짜 눈물납니다. 대체 뭘 믿고 저짓을 하나 싶습니다.....;
Commented by 박지연 at 2007/07/03 06:26
마지막회.. 시간이 너무 없어서 시나리오를 그렇게 변경했던 건데.. 무의식으로 들어가는 걸로. 대부분 나레이션과 대화로 떼웠죠. 어두운 공간 안에서. 제작과정은..제작과정이라기보단 그냥 제가 하루만에 캠코더 들고 다 찍은거고... ;; 감독님이 계속 바뀌거나 없었고 직원들도 자주 퇴사해서.. 어쩔 수 없었죠.. 문제는 레카가 제작되던 2001년보다 지금이 더 환경이 나빠졌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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