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매튜 본의 <백조>를 봐야하는 이유

새삼스런 고백이기는 합니다만 저는 발레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릅니다.

에이~ 그럴 리가~ 하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여기가 일본 최초 발레 애니메이션 <프린세스 츄츄>의 블로그이니까요. 그런데 진짜 모릅니다. 어느 정도 수준인가 비유하자면, “노래방에서 멋진 노래를 들으면 잘한다 or 아니다 정도는 느끼지만, 원곡을 모르기 때문에 음정에 삑사리가 났다 해도 눈치채지 못하는” 입장이랄까요. 이 공연은 이렇다 저렇다, 비교해서 어떻다 그런 얘기를 할 수가 없어요. 보고 와서 좋았다 말았다 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 발레 본 거래야 백조의 호수, 지젤, 호두까기 인형이 다인 걸요. <프린세스 츄츄> 덕분에 발레 마임이나 춤이나 유래에 대해서 좀 알게 되었고 관심도 가지게 되었고, 세미나 때 청룡님이 친절하게 특훈(?)시켜주시기는 하셨지만, 아직 턱없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그런 초심자이기 때문에, 같은 입장인 분들에게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를 자신있게 권할 수 있습니다. ^^




1. 발레를 모르는 사람이 봐도 재미있다

이제 슬슬 잘 준비를 해야 할 12시에 매튜 본의 <백조> DVD를 노트북에 넣은 것은, 그냥 서플로 뭐가 들어있나 체크해보고 싶은 마음에서였습니다. 그런데 이 DVD, 메뉴화면이 먼저 뜨는게 아니라 그대로 본편이 재생되더라고요. 거기서 낚였다는 걸 눈치챘어야 했는데....

예상치 못한 본편 화면에 잠깐 멈칫한 사이에 츄츄 덕분에 완전히 귀에 익어버린 선율이 귀에 꽂히면서,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음악과 딱딱 맞아떨어져 시너지 효과가 배가 되는 <백조>의 오프닝. 뭐 좋아, 오프닝만 한번 볼까? 어라? 정말 스토리가 전혀 다르네. 푸하하하 저게 뭐하는 짓거리야! 그러다 정신을 차리니 1막이 끝나 있었어요.

2막이 시작되려는 참이었습니다. 이제 자야 할텐데... 으음, 하지만 곧 백조가 등장하는 장면이니 거기까지만 구경해보자.
백조가 나왔습니다. 허허허허허허허허허허허허허허허 어머나어머나어머나어머나
너무도 강한 컬쳐쇼크에 넋을 잃고 보다 보니 어느새 2막도 끝나 있었습니다.... 이미 시간은 새벽 1시. 으윽... 뭔가 딱 걸렸다는 느낌이 들면서도, 저 <백조>가 도대체 어떤 <흑조>로 변신할까가 궁금해서 멈출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3막으로 GO.

흑조가 나왔습니다. 커허허허허허허허허허허허허허헉 하아하아(.....)
흑조만 쳐다보고 있었더니 3막도 다 끝나 있더군요. 이제는 더 이상 저항할 생각도 포기한 채 입에서 흘린 피를 슥 닦으면서 4막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4막은 호러였습니다...... 에반게리온 극장판의 트라우마가.... 아니면 히치콕의 <새>인가? 어느 쪽이든 나 이제부터 자야 하는데 이 상황을 어찌 책임질거야! 무섭잖아!!!

엔딩 보고는 탈진했어요. 그리고 다음날 모분의 츄츄 일러스트 보고 또 얻어맞고


에- 이렇듯이...
발레의 춤에 대해 몰라도, 마임을 몰라도, 심지어 사전 스토리조차 몰라도 재미있게 보실 수 있습니다. 대사 한마디 없는데도 불구하고, 보기만 하면 전개 상황을 그냥 알 수 있어요. 안무가가 알아서 전부 안배해놓았거든요. 매튜 본을 인터뷰한 내용의 일부를 살짝 발췌해보겠습니다.

나의 백조의 호수는 현대 동시대의 관객들을 흥분시키고 감동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현재 무대 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어린이들이나 보통의 영화 팬들에게 반이라도 설명하고자 노력해보아라.
쉽게 설명해줄 수 없는 마임 장면, 박수갈채나 무대인사를 위한 무의미한 정지의 순간,
그리고 매우 심오하여 이해하기 어려운 플롯 등을 말이다.
이렇게 고전 발레에서 나오는 요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사전 지식이나 애착이 필요한 것으로, 만약 이러한 지식들이 없다면
훌륭한 작품을 보면서도 그 누구라도 ‘무능’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다른 분들은 어떠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츄츄를 보고서야 발레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동태눈 살아가자로서는 저 말이 뼈저리게 이해되더군요. 츄츄와 만나기 이전에 그냥 그렇게 굴러가던 어린 학생 시절, 우연히 기회를 잡아 처음으로 보게 되었던 <백조의 호수> 공연은... 초등학교 때 읽었던 파블로바의 전기나 발레동화책으로 인해 두근거리는 마음을 품고 보았음에도 무지무지 화려하고 아름다운 서커스 이상의 의미를 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와아 어떻게 저렇게 회전할까 라든지). 적어도 지금과 비교하면 말이죠.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합니다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공부를 하고 오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사실 이 DVD를 보고 나서 오리지날 <백조의 호수> 발레공연 DVD를 다시 한번 봤는데요.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 완전히 다른 이야기인 주제에 <백조의 호수>라는 이야기가 가지는 매력 포인트는 지키고, 음악은 고대로 썼으면서 장면 장면 어쩌면 그토록 기막히게 매치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2. 몸짱이라구? 너희가 육체의 아름다움을 알아?

우리 사회가 좀 여자 밝히는 사회(.....)다 보니, 저도 여성의 육체 곡선이 얼마나 아름답고 섹시한지 정도는 느끼면서 살아왔습니다. 근육의 아름다움 같은 거는... 글쎄요, 느껴본 일이 없어요. 미스터 코리아 그림을 보고 기겁한 기억은 이미 초등학교 때의 추억입니다만. 그렇다고 삐쩍 마른게 좋다는 것도 아니지만... 한마디로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았다는 겁니다.

그리고 저 <백조>를 보고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성의 육체라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깨달았습니다.....
아 정말 권상우는 그걸로 몸짱이니 어쩌니 할 생각이라면 나가 죽어야 돼요(죄송합니다).

단순히 댄서의 몸빨이 좋더라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언어가 아니라 몸으로 전하려는 의사가 얼마나 아름답고 간절해지는가에 대해서는 츄츄 13화를 보고 느낀 적이 있습니다. 그랬습니다만... 인간의 육체가 움직이는 모습, 그 역동성, 절제된 몸짓, 특정한 의미를 담고 움직이는 동선 등을 보면서 제 심장이 제 위치를 지키기는 어려운 노릇이더군요. 정말 강했습니다.

기존 발레도 그런데 뭐가 그렇게 달랐느냐 하면, 글쎄요. 기존 <백조의 호수>에서의 백조는 날개를 가진 요정이나 천사같은 이미지가 강했는데, 이쪽의 백조는 그야말로 새라는 동물... 이라는 느낌이던데요. 더군다나 남자의.
자꾸 강조해서 민망하네요;;; 저도 남녀차별 발언은 싫지만 이전에 남자의 몸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이렇게까지 느끼게 해주는 매체를 접해본 적이 없어요.... 흑흑. (제 문화생활이 얄팍한 게 문제겠지만)

그 움직임 하나하나에서 풍겨나오는, 화면 안으로 뛰어들고 싶을 정도로 사람을 압도하는 색기! 카리스마!!! 왕자님, 나 당신의 심정 정말 백프로 이해한다니까요.... 저런 거 보고 나면 죽고 싶은 맘도 싹 사라지겠다....
일본만화에서 토끼 혹은 고양이 귀나 꼬리가 참 유행합니다만, 이거 보고 나니 가설 하나가 떠오르던데요. 인간이 동물을 흉내낼 때는 색기가 정말 엄청나게 증가하는 것 같아요. 모든 것을 몸짓과 스킨쉽으로 전달하고 실행해야 하니까요. 백조가 왕자에게 머리 툭툭 들이박을 때 확인사살 당했거든요(.....).

그리고 흑조가 있었습니다.
무대 위에서 확실하게 키스 한번 안하는 주제에 어쩜 그런..... 어쩜 그런..... (운다)
아아 사람 육체의 흡입력이라는 건 빈곤한 언어 따위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불라불라 떠드는 말 같은 건 하위 언어수단이야!(....) 그 몸짓과 움직임에서 주체못하게 흘러나오는 색기를 어떻게 글로 쓴답니까. 여튼, 블랙의 위험하고 유혹적인 색기라는 게 정말 무섭구나. 진짜 눈빛만으로 사람을 붙잡아서 오도독 오도독 씹어먹을 수도 있겠다 라는 것을 피가 거꾸로 흐를만큼 서늘하게 실감했습니다.

백조 떼의 습격은 히치콕의 <새>가 생각났고... 어쩌면 다들 그렇게 움직이는지 정말 기가 막히더군요. 춤이라는 것이, 그 단순한 어휘 정의 안에 얼마나 다양한 스펙트럼을 내포하는지 처음으로 깨달은 느낌입니다.


아담 쿠퍼님 빨리 날 죽이러 와주세요............ orz (내한 정말 안 올거야?! ;ㅁ;)


두서없고 영양가없는 감상문입니다만, 솔직한 제 심정입니다. 다들 보고 같이 죽어주십사 하는 ^_^ 낚시성 단말마이기도 하고요.
자아, 새로운 백조의 세계에 오지 않으시렵니까? (나와 함께 춤춰요 마임을 한다)


p.s : 영화 <빌리 엘리어트>가 보고 싶은데 집에는 비디오테크가 없습니다.... 흑흑 이건 또 어디 가서 본다냐


by 살아가자 | 2005/06/12 12:26 | 올망졸망 | 트랙백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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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지현 at 2005/06/12 14:46
발레에 대핸 잘 모르지만...중학교때 음악시간에 본 백조의 호수를 봤을때...흑조의 그 춤(츄츄 책자에 뭐라고 나왔는데 지금 찾으려니 어딘지 OTL)은 지금도 잊을수 없네요.
(사실 저 이유로 츄츄 초기부터 루우를 좋아 했지요....)
피겨스케이팅 (혼성댄싱부문이 취향이었지요) 같은것도 발레와는 다르지만 보는 재미가 있어요
Commented by 수안 at 2005/06/12 19:35
빌리 엘리어트와 이 디비디의 순서가 생각이 안 나지만; 둘 다 봤습니다! 그때 대중문화 강좌에 최근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을 그려 내라는 출석체크에 이마에 백조표식(?)을 한 아담 얼굴(지 멋대로 그리고 아담이라 우긴다)을 그려 낸 기억이 납니다. 그 표식그리는(미리니름?) 장면에서 소름 돋았던 기억이 나네요.
Commented by 살아가자 at 2005/06/12 20:13
지현님 / 그랑 페데일 겁니다 ^^ 정말 멋지지요. 뭐든지 알면 알수록 관심을 가질 수록 그 아름다움에 더 공감할 수 있는 모양이네요.

수안님 / 헉 저도 그 장면 너무 좋아해요 ㅠ_ㅠ 실은 캡쳐도 해놓았답니다;;; 콧등을 내려그은 다음에 씨익 웃는 그 얼굴이라니....(부들부들)
Commented by 깃쇼 at 2005/06/13 00:10
담에는 빌리 엘리엇 DVD를 보여드리지요, 음하하. 원하시면 아담이 잠깐 나오는 다른 DVD들도 보여드리겠습니다. 아니면 각종 백조 컬렉션을 과시해드리겠습니다(<-악마).
일단 학기가 끝나고 자세히 얘기를 OTL
Commented by 살아가자 at 2005/06/13 13:38
깃쇼님 / 부들부들 떨면서 심판의 날이 오기만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ㅁ;
Commented by 리오야 at 2006/01/28 21:28
아..음. 아담쿠퍼씨는, 일본을 제외한 어디에서도 백조를 재현하실 생각이 없으시다고 들었습니다. 최근에 한 프랑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아담쿠퍼 안무, 제작에 직접 연기한 발레극을 런던에서 봤는데, 상당히....음...세월을 느꼈다고나 할까요. 갑자기 유령이 나타나서 말 걸어서 죄송합니다;;
Commented by 살아가자 at 2006/01/30 01:53
안녕하세요 ^^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째서 일본만? 일본만?! ;ㅁ;
라이브를 볼 순 없는 거군요 사실상.... orz
Commented by 리오야 at 2006/01/30 14:25
...음 제가 알기로는 쿠퍼씨와 그의 부인 사라 위도 씨(최근작도 그녀와 함께 춤을 춘 걸로 보아 앞으로도 계속 함께 공연할 것같습니다.)가 굉장히 일본을 좋아해서..-_-;;
본인 입으로 백조를 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었다고 했으면서, 재작년인가 일본에서 백조 공연을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일본에서 새 극의 초연을 선보이는 걸 보면, 일본 편애라고 할 수 있죠.
영국인들 중에서 일본에 대해 무조건적인 동질감과 호감을 가지는 경우를 종종 봐왔는데, 그 때마다 씁쓸했답니다. 아담쿠퍼의 새로운 발레극의 제목은 les liaisons dandereuses입니다. 동일작품으로 영화화된 게, 말코비치의 동일한 제목의 영화-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한국의 스캔들...이 있습니다. ^^
Commented by 살아가자 at 2006/01/31 22:00
어헉 정보 감사합니다. 그 영화 그렇잖아도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담 쿠퍼씨가 발레극으로 올리신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네요.
Commented by rena☆★ at 2006/08/23 21:22
정말 멋져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살아가자님의 말에 백배공감백배공감!!!!!!!!!!!!!!!퓨ㅠㅠㅠㅠㅠㅠ
Commented by 모카 at 2007/07/23 15:55
아담 검색중에 글 잘 보았습니다. 아니요, 무슨 말씀을. 살아가자님의 글에 이 공연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나타나 있어요. 와하하 저 몸짱 얘기에서 정말 배아플 만큼 웃었습니다. 그렇죠, 단순히 몸만 좋다면 보디빌더지 감동할 게 있나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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