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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집에 수록될, 제 3 장 난상토론 편집본의 일부입니다.
받아쓰는 과정에서, 잘 들리지 않는 말소리는 받아적지 못했고요 ㅠ_ㅠ 구어체는 알기 쉽게 임의로 정리한 부분이 많으며, 그리고 부득이하게 페이지 수 때문에 말씀하신 바를 축약한 부분도 있습니다. orz 의의가 있으실 경우 비밀글이나 메일로 보내주시면 다시 손보도록 하겠습니다. 토론에 참여하신 분들은 한번씩 훑어봐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특히나 중간의 붉은 글씨는, 닉네임을 말씀 안하셔서 확신이 안 가는 발언들입니다; 신고 부탁드려요. (두번째 것은 엘시르님 목소리 같기는 했는데...) 그 외에도 '내가 한 발언이 아니다'라거나 '이건 내가 한 말이다' 등등.... 다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p.s : 화키아 얘기는 바로 이 다음부터 나옵니다 ^^;;;; p.s 2 : 저, 저는 조리있게 말하는 법을 익히든지 아니면 사회자답게 추임새만 넣고 있든지 둘 중 하나만 해야 할 것 같아요. 클레르와 루우, 고뇌하는 오딜의 매력 earendil : 아까 어느 분이 이야기가 드롯셀마이어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살아서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하셨고, 그리고 청룡님 얘기 들으니까요. 아히루...라기보다는 프린세스 츄츄라는 존재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금관마을 사람들의 의지가 형상화된 것이 아닌가, 드롯셀마이어는 그냥 오리 한 마리를 데려왔지만 그게 실제로는 자신의 불쌍한 피조물들이 만들어낸 회심의 한 수였다는... 구세주를 바라는. 씨네필 : 이야기가 시작할 때의 아히루와 끝날 때의 아히루가, 생긴 것은 같아도 동일하지가 않아요. 그 사이 성장을 한 거예요. 끝의 몇 화를 빼놓고는 그때까지 드롯셀마이어의 의지대로 움직인 일이 아주 많아요. 그런... 속박이라 해야 하나? 누군가가 규정해준 역할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짜겠다, 그게 궁극적인 츄츄의 성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아히루의 의지였다, 혹은 의지가 아니었다 하는 이분법적으로 나눌 게 아니라 이 가정 하에서 두 의미가 중첩되고 결론적으로는 의지의 승리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살아가자 : 클레르라는 캐릭터가, 남자분들이 생각하시는 악녀(팜므 파탈)적 이미지를 잘 살린 것 같지 않나요? 물론 후반부에 가서 완전히 망가지긴 하지만요(웃음). wizdom07 : 클레르는 초반에 잠깐 표독하다가 나중에 망가지는 역할로 끝난 것 같은데요. 씨네필 : 제가 볼 때는, 남자들이 생각하는 악녀 이미지는 그렇게 복잡하지 않아요. 단순한 면이 있어야 되기 때문에, 막 몸으로 밀어붙이고... 클레르가 팜므 파탈이라는 이미지에서 망가졌다고 표현하지만, 다르게 해석하면 ‘새로운 타입의 악녀’ ‘악녀도 사랑할 수 있다!’ 이런 의미가 아닌가 싶네요. 엘시르 : 로맨스 소설을 보세요. 딱 동화같은 게, 여자 있고 남자 있고 걔네 둘이 싸우다가 해피엔딩, 결혼하고 애낳고, 한데 여주인공의 라이벌이 나오잖아요. 걔네들이 악녀적 스타일인데, 남자가 오지 말라는데 제멋대로 달라붙고 육체적으로 밀어붙이고 그러거든요. 그러니까 머리 속에 ‘이 남자를 내 걸로 하고 싶다’는 생각 외에 아무것도 없어요. 자기 정체성이나 고민 같은 것도. 바보예요 한 마디로. (폭소) 씨네필 : 하나 더하면 계급상승. 엘시르 : 예 계급상승. 그런 욕망만으로 움직여요. 귀족 남자랑 결혼하면 자기가 올라간다... 클레르는 그렇게 보면 정말 새로운 유형의 악녀죠. earendil : 클레르라는 캐릭터 자체가 루우랑 분리된 별개의 캐릭터라기보단 제대로 안 잡힌, 루우가 어설프게 덮어쓰고 있는 페르소나라는 느낌은 안 드세요? 아히루=츄츄, 뮤토=왕자, 화키아=기사에 비해서 루우=클레르라는 구도는 유난히 클레르 쪽이 생명력이 별로 없다는 거지요. 청룡 : 그건 까마귀가 거의 최면하다시피 해서 만들어낸 거니까... earendil : 기간도 짧고, 과정도 무리였고...(웃음) 당근 : 단순한 악녀가 되지 않도록, 오딜이 자기 정체성을 찾고 고민하도록 클레르라는 인물에게 성격을 부여한 거라고 보거든요. 어릴 때 동화『백조의 호수』를 보면 오딜은 당연히 나쁜 애고 마땅히 오데트랑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클레르 같은 경우는 평면적인 캐릭터와는 다르게 새로운 면을 만들어준 게 아닌가 합니다. 페루루 : 클레르를 오데트과 오딜로 구분해서 볼 수도 있지만 오딜일 때만 놓고 본다면, 까마귀 대왕, 아버지의 압박으로 인해 왕자에게 고백을 하는 점이 그대로고... 루우와 클레르의 차이가 모호한 이유는 클레르가 루우의 변신이 아니고 하나의 캐릭터이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루우는 어릴 때부터 성격 형성이 안 된 상태에서 까마귀에게 ‘너는 사람에게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존재다’ ‘나와 왕자만이 널 사랑할 수 있다’ 그러니까 오히려 사랑을 절실히 원하게 되어버린 거죠. 그런 나머지, 흔히 드라마에서 나오는 - 좀 치사한 방법을 써서라도 여주인공을 내치고 주인공을 차지하려 하는 악녀적인 기질. 너무도 사랑을 원하는 루우의 독점욕이 발현된 것이 클레르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히루는 자신의 인격이 있고 츄츄의 인격이 따로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루우는 원래 클레르로서 자라 왔는데 잠시 동안 루우로서 시간을 보냈을 뿐이지 동일인물이거든요. 씨네필 : 뮤토와 루우는 학교에선 커플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클레르가 뮤토에게 사랑한다고 표시를 하는 적이 없잖아요. 나를 사랑한다고 말을 해라 그런 거나 시키고, 물뜨러 간 뮤토가 사라져도 네가 가봤자 어디까지 가겠냐(폭소) 그런 태도인데, 24화 마지막 그 순간에 자기 입으로 사랑한다고 말한 거예요. 사랑하지 않은 게 아니라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던 거죠. 페루루 : 사랑하지만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다, 그런 걸로 치면 훼미오의 나르시스 에피소드는 루우를 말하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까마귀가 나와 왕자 외에는 너를 사랑할 수 없다고 항상 주입을 시켜왔기 때문에 오히려 사랑한다고 말해봤자 안 될 거라고 생각해서 그럴지도요. 살아가자 : 사랑받고 싶으면 내가 먼저 사랑한다고 말해야 하는데... 페루루 : 그걸 모르다가 마지막에 얘기했기 때문에 왕자를 구해낼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씨네필 : 아오토아를 데리고 가다가 중간에 되돌려 보낸 것도 그런 의미가 있지 않나... 아까 말했다시피 사랑받을 수 없는 상황인데도 아오토아가 자기를 사랑해주니까. 클레르의 마음 속에서 사랑하는 방식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거겠죠. 마침내 사람된 왕자는 어디로 갔을까 당근 :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게 여러 종류가 있는데요. 사람에 대한 사랑일 수도 있고 세상에 대한 사랑일 수도 있고... 그런 걸 보면 왕자도 클레르와 똑같은 입장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심장을 잃기 전의 왕자라는 이미지는 정의의 용사잖아요. 이 세상 사람들을 전부 구하고 싶고, 그렇기 때문에 모두를 사랑할 수 있지만, 마지막화에서 루우에게 고백을 하듯이 까마귀 피에 더럽혀진 후에야 비로소 누군가에게만 사랑받고 싶어지고 사랑하고 싶어지는... 까마귀 피에 ‘더럽혀졌다’고 말은 하지만 사람이 사랑을 하면 더럽혀지지 않을 수가 없잖아요. 순수라는 거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비인간적인 거라고 할 수도 있고요. 그런 의미에서 피에 더럽혀진다는 거는 하나의 생명으로서 더럽혀진다는 얘기도 될 수가 있고. 그럼 왕자 역시 루우랑 같은 입장으로,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관계를 제대로 형성할 수 있었던 계기는 까마귀 피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살아가자 : 발제에서 왕자와 까마귀는 반대이고 서로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인간의 양극단 같은 거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왕자는 모든 이에게 사랑을 받고 까마귀는 모든 이의 사랑을 원하죠. 이건 꼭 왕자가 모두에게 사랑받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들리잖아요. 그런데 보다보면 실제로 그렇거든요. 뭔가가 결여되어 있는 거예요. 정말 기본적인 사랑의 욕망이 없는 거죠. 그런데 루우가 결과적으로 왕자를 그 숙명에서 풀어주게 된 거죠. 페루루 : 왕자가 까마귀 피에 물들면서 선과 악이 혼합된 존재가 되었지 않습니까. 그리고 동화로 돌아가기는 했지마는, 그 이전에 하나의 인간이 된 거지요. 왕자는 동화 속의 인물이지만, 선과 악을 갖춘 인간이 되면서 선과 악이 융합된 루우와 함께 인간으로서 동화로 돌아갔으니 그 동화도 현실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애초에 금관학원은 이야기와 현실이 융합된 곳이고, 오리가 마지막에 춤을 추면서 ‘우리가 주인공인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자’는 하나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이야기/현실로 나눌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로 융합된 세계가 츄츄가 말하고자 하는 세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야기와 현실을 종합한. earendil : 저도 뮤토와 루우가 동화 속으로 돌아갔다기보단 현실로 나왔다는 설을 지지하는데요. 루우는 일단 현실 속의 캐릭터거든요. 그런데 그 애가 동화 속으로 들어갔다면 아히루와 비교해서 불공평하거든요. 루우는 동화 속 왕자님이랑 맺어졌는데 왜 아히루가 사람이 되는 건 안되느냐... 살아가자 : 아히루가 사람이 될 수 있는 길은 처음부터 하나밖에 없었어요. 왕자에게 선택받는 거지요. 그럼 인간이 될 수 있었어요. 동화 속으로 들어가면 인간으로 있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래선 메시지 성립이 안 되잖아요. earendil : 예, 그러니까 뮤토와 루우는 동화와 현실이 혼합된 세계로 나와서 인간이 되었을 거라고 보는게 타당하다는 거죠. 살아가자 : 아까 페루루님이 ‘아히루가 왕자를 사람 만들어놨다’고 하셨는데(대폭소) 전 뮤토를 좋아하지만, 그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서 그런 거지, 얘가 인간이다라는 느낌을 별로 받아본 적이 없어요. 그리고 뮤토가 인간이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확신을 느낀 장면이 없었어요. 그럴 새가 없었잖아요. 페루루 : 아까 ‘누구 원망할 상대가 없다’고 하셨는데, 다들 원망은 드롯셀마이어한테 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한번 더 생각해보면 그걸 만든 사람들은 현실에 존재한다구요, 바로 일본놈들이거든요(대폭소). 사토 준이치가 정말 사악하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자기들 들을 욕을 드롯셀마이어한테 다 넘기고 있다는 점이예요(웃음). 살아가자 : 그래서 사토셀마이어와 나레이토 아주머니라고 하잖아요(웃음). 구운체로 : 저같은 경우는 뮤토가 동화 속으로 돌아갔다는 설을 지지하는데요. 14화에서 동화 속으로 가겠다고 확실히 말했기 때문에, 어디로 갔든 일단 동화로 돌아갔을 거라 생각해요. 그런데 그러면 루우의 존재가 상당히 거슬리거든요. 하지만 루우 역시 이야기와 현실이 뒤섞인 세계에 있었고, 그래서 100% 현실의 인물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이야기를 담은 동화책이 하나 더 생겼다고 보거든요. 왕자가 이야기 밖으로 튀어나갔지만 어찌어찌 우여곡절 끝에 잘 먹고 잘 살았다는 내용의. 살아가자 : 예의 다중 밴다이어그램이 독특한 점이... 츄츄 동맹 초반에 유사한 세계관으로서 언급되었던 책으로 『소피의 세계』가 있어요. 그리고 헤니히님이 추천하신 『마담 베리의 살롱』도 있죠. 그런데 『소피의 세계』의 경우 작가까지 생각해주면 삼중 구조고, 기본적으로 이중이고요. 『마담 베리의 살롱』도 지금까지 봐서는 이중인데, 츄츄는 제가 파악하기로는 사중이예요. 구성이 대단한 거죠. twenty : 그 중첩 구조 속에서 인물들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잖아요. 예를 들면 단순하게 이 애니를 보는 태도만 봐도 아히루에게만 감정이입하지 않고, 얘한테 공감하고 쟤한테 공감하고 하는 식의 다중 시점. 마지막의 뮤토도 원래 이야기 속에서 나왔다는 존재감이 있기 때문에 이야기 속으로 돌아가는 것이 타당하게 느껴지거든요. 반면 아히루는 현실의 오리이고. 뮤토는 이야기 속으로 가고, 화키아와 아히루는 현실로 나와서 딱 분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떨어짐으로서 오히려 서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사랑받는 여주인공 아히루, 소녀의 매력 twenty : 아히루가 여자들이 좀 싫어하는 타입의 주인공이었잖아요. 여자들이 싫어하는 타입 중의 하나가, 남자 발목 잡는다든가, 힘도 없고 별 재주도 없으면서 맨날 삽질하는... (소위 민폐형) 그러다 맨 마지막엔 남자랑 잘 되고 행복해지는, 그런걸 보면 여러 생각이 드는데요. 처음에 나왔을 때야, 하늘 위의 공주님보단 자기랑 비슷한 부분이 있다 생각해서 감정이입이 되었을지 모르겠는데 그런 패턴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식상하고 짜증나게 되거든요. 그러다보니 이젠 그런 애만 나와도 벌써 안 봐요. 아히루에겐 언뜻 보면 그런 부분이 있어요. 그런데도 다들 불쌍하다, 귀엽다, 그렇게 호감을 가지고 봐주는 게, 제 생각에는 오히려 아히루에게 감정이입을 못해서 그런 것 같아요. 그 전제 조건 중 하나가 얘가 인간이 아니라 오리라는 설정이죠. 또 하나는 -노말 커플 얘기지만- 화키아 입장에서 아히루를 보게 되는 것 같아요. 마지막에 화키아가 글을 쓰는 모습이 시청자 마음과 딱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거기서 화키아가, 물론 내용상 엄청나게 강조...됐지만 안 된 척 하는 두 사람의 그 좋아진 관계가(웃음) 화키아 눈으로 아히루를 보면 사랑스럽고 불쌍할 수밖에 없는데 그게 시청자 입장에 대입이 되면서 아히루라는 캐릭터가 사람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방법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살아가자 : 아히루와 화키아에 대한 얘기는 좀 해야 할 것 같은데(웃음들) 아니, 많이 해야 돼요!!! 헤니히 : 아히루가 원래 굉장히 불쌍한 캐릭터잖아요. 보잘 것 없는 오리인데, 그거에 대해서 여성들은 약간 동정심도 있고... 모성본능 같은 것도 있어서 감싸주고 싶어지는 거예요. 소년만화 같은 걸 보면 주인공들이 굉장히 잘났잖아요. 남성분들은 여성분들의 입장이랑 달라서 강한 주인공을 좋아해요. 그런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여성들은 약한 자를 감싸주는 걸 좋아하고 남성들은 강한 자를 보는 걸 좋아하고. 씨네필 : 남성주의물에도 약한 사람은 분명 있긴 있는데, 그런 소년만화 타입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내가 지금은 권력 서열이 낮지만 <성장>을 해서 저 권력의 중추로 들어가겠다.’ 그게 남성 캐릭터의 주된 목표예요. 간단하게 『드래곤볼』의 손오공을 들 수도 있겠지만, 『지금 거기에 있는 나』 이런 타입의 애니 있잖아요. 보잘 것 없는 남자가 여자 한 명 옆에 끼고 이러저러하다가 여자는 하늘로 보내고 각성하는(대폭소) 그 과정에서 보이는 여성 타입이, 아히루와 비슷한 면이 분명 있어요. 근데 츄츄의 경우에는 오히려, 가령 화키아만 해도 기사로서 고민하는 모습보다 그걸 이끌어가는 아히루의 모습을 더 많이 그리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여성들이 더 다각도로 감정이입을 할 수 있고, 남성들도 이제야 ‘아 여자들이 왜 저러는지 이해가 간다’(웃음) 그런 의의가 있다고 봅니다. 페루루 : 가장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만든 사람이 여자분이잖아요. 제 말은 그러니까 이제까지 여자들이 보는 캐릭터들은 대체로 남자들이 만든 캐릭터였거든요. 그리고 그 여자 캐릭터들이 남성향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 친다면, 츄츄 같은 경우에는 이토씨가 자기가 보고 감정이입할 캐릭터를 만들어 보고 싶다고 생각해서 그려낸 캐릭터니까요. 그게 맞아떨어진 게 아닐까요. 살아가자 : 그건 꼭 그렇진 않아요.『환상게임』이라고 아세요? 소위 대표적인 우사기 타입의 여자애인데, 환상게임은 작가가 여자고, 여자만화지만, 여자캐릭터들은 다 여자 주인공을 싫어해요. 페루루 : 그거는 와타세 유우가 여자 캐릭터가 아니라 남자 캐릭터에 중점을 뒀고, 남자랑 여자가 붙어먹는 이야기 중점으로 그렸기에(웃음) 얘기가 달라요. 와타세씨는 로맨스가 그리고 싶었던 거고, 이토씨는 오직 자기가 보기에 사랑스런 여주인공 하나 만들고 싶었던 거죠. 이야기 구조 같은 복잡한 거 다 뛰어넘고, 그래서 아히루는 여성분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닌가 합니다. ranigud : 90년대에 포스트모더니즘과 페미니즘이 떴잖아요. 그 때 나온 게 『슬레이어즈』와 『우테나』예요. 거기 히로인들은 남성성과 여성성을 둘 다 갖고 있는 상태로... 억지로 통합시킨 게 아니라 두 개를 같이 갖고 있으면서 어필할 수 있었는데, 그 이후에 만들어진 애니들은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그랬던 건지 여성성만 가지고 있는 캐릭터가 많고, 그래서 여자들이 싫어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 여자 캐릭터가 주인공인 애니 중에 『슬레이어즈』를 보면요. 리나가 여자라는 데에 팬들이 의의를 꽤 두는 편이잖아요. ‘여자가 주인공인 애니 중에 여주인공이 이렇게 맘에 드는 애니 별로 없다’는 반응인데, 어떻게 보면 그 성격 자체가, 여자가 아니라 남자래도 별 상관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츄츄』나 『세일러문』, 개인적으로 우사기를 딱히 좋아하진 않지만 대표적인 여주인공인데... 이 두 캐릭터에서 두드러지는 일면이 제가 보기엔 모성본능이거든요. 모든 걸 포용하려 하는 느낌, 그런 모성본능을 의식하고 간직한 채로 일반 사회에서 남자들이 가지는 능동성을 발휘했기 때문에, 츄츄가 완성도 높은 여주인공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엘시르 : 세미나 게시판에 살아가자님이 글 올리셨죠. 여자분들이 왜 전형적인 현모양처 타입을 싫어하는지 남자분들이 의외로 이해 못하신다고. 그런데 그때 일단임시님이 『불의 검』을 예시로 드셨는데요. 아라도 그런 전형성이 강한 애인데도 여자 중에 싫어하는 사람이 없는 게 ‘납득할 수 있기 때문에’라고 하셨는데 저도 같은 의견이거든요. 『북해의 별』 여주인공도 제가 안 좋아하는 수동적 캐릭터이지만, 멤피스를 그냥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라 그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자신의 의지로 ‘그 분이 없어도’ 나는 하겠다 하며 자기 의지로 움직이잖아요. 살아가자 : 애니가 아닌 소녀만화 중에는 괜찮은 애들 굉장히 많아요. twenty : 여성 캐릭터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저도 어렸을 때부터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에 나오는 여자 캐릭터가 맘에 들은 경우가 정말 손으로 꼽을 정도예요. 리나, 츄츄, 요코. 대부분 자기가 뭔가를 하거나 강해보이는 캐릭터 -물론 그건 성향 차이도 있지만요- 제가 강해보이는 캐릭터를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그런 의미에서 보면 츄츄는 제가 이제까지 선호해왔던 캐릭터들과는 좀 다르죠. 세다는 느낌이 좀 안 들잖아요. 대학교 시절, 여성에 대한 토론 시간에... 여자가 아이를 낳는 소중한 존재니까 지켜준다는 소린 정말 말도 안 된다는 거였죠. 그건 여자가 아이를 안 낳으면 가치가 없다는 얘기잖아요. 게다가 여자에게 있어야 하는 모성본능이라고 하는데, 없을 수도 있잖아요. 아이를 낳기 싫을 수도 있고, 남자에게도 연약한 존재를 지켜주고픈 맘이 있을 텐데 그런 것들을 여성의 한정된 특성으로 정해서 ‘여자는 다 모성본능이 있어야 돼, 얌전해야 돼, 상냥해야 돼’ 이걸 억지로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에 반발심이 생겨서 반대 방향의 여자 캐릭터만 찾고 있었어요. 그런데 츄츄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냐면, 우리는 현모양처 캐릭터를 보면 짜증을 내지만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으면 존경한다고요. 착하고 상냥하고 나에게도 잘해주는 여자분들을 보면 좋고,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점을 다시 깨우쳐준 것 같아요. 씨네필 : 이 세상에 여성을 규정하는 말은 엄청 많아요. 하지만 그건 남성의 사고에 의한 규정, 여자는 상냥해야 되고, 헌신적이어야 되고... 이런 식으로 정해져 왔고, 그것이 애니 속에 그대로 투영된 거죠. 그 반대되는 개념으로 우테나나 오스칼처럼 강하고 남성성을 가지고 능동적인 타입의 캐릭터가 있을 수 있어요. 그건 하나의 방법론이예요. 문제는 그런 여성성에 반하는 캐릭터만이 여성의 감정이입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사회에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여성 안에 남아있는 그 속성들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페미니즘이 있는 반면에, 이 모든 것이 다 소중하다고 인정하는 방향도 있어요. 초창기 페미니즘이 가장 비판받은 이유 중 하나가, 여성을 하나로 획일화시킨다는 거였어요. 여성 안에서도 인종, 종교, 관습, 국가 등 정말 다양한 부류가 있어요. 그 각각을 존중하는 것이 페미니즘이잖아요. 그걸 지향하지 못했기 때문에 비판받고 지금은 포스트 페미니즘이라 해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지요. 츄츄가 단독적으로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우테나라든지 다른 스트레오 타입의 여성 캐릭터가 있기 때문에 더 의미를 부여받는 거예요. 알테마 : 한동안 강한 여성 캐릭터가 유행했잖아요. 남성향 쪽에서 ‘난 여자가 아니라 남자가 되겠다’는 투로 말하는 애들이 많이 나와요. 남자들을 막대기 하나로 다 때려눕히고(웃음) 모성본능이라든가 그런 것도 안 보이고, 입 걸고, 욕 잘하고. 그런데 그걸 보면서, 강한 것 이전에 공감이 안 되는 거예요. 소녀인데도 우리 또래의 감수성이 전혀 없으니까. 왜 저 여자가 강한지도 사랑받는지도 모르겠고. 남자는 그... 정복 욕구라고 해야 하나? 그런 걸 느끼는 것 같은데. 츄츄는 정말 간만에 본 소녀다운 애니가 아닌가 싶어요. 소녀다운 면을 가지고 또래다운 생각을 하고, 그래서 공감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earendil : 정리하자면, 결국 캐릭터가 식상하다는 건 딱히 민폐형이다 그런 게 아니라, 하나로 고정되어 있다는 게 문제 아닌가 싶어요. 아까 애니메이션이 남성향으로 편중되어 있다는 얘기를 하셨는데, 남성이 여성을 바라보는 것은, 여성을 이해할 수 없으니까... 인간의 여러 페르소나, 다면체적 측면 중에서 자기에게 행하는 건 딱 하나, 에로스적인 측면뿐이라는 거죠. 모성본능이라는 것 자체도 자기 배우자가 되었을 때 자식에게 대하는 일면. 그렇게 생각하면 아까 야오이가 ‘시선의 다양화’라는 얘기를 했는데, 여성이 바라본 여성의 다면체적인 시선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거겠죠. 그렇다면, 아히루가 공감을 얻는 이유는 민폐형이다 아니다를 떠나서, 연애가 존재의의가 아닌 캐릭터이기 때문에(탄성과 박수). 뮤토에 대한 것도 연애라기보다는 치료, 아가페적인 측면이었고, 화키아랑은 있긴 했는데 이게 얘기의 중심으로 떠오르지는 않았지요. 금관마을을 구원하는 쪽으로 끝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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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개구리 at 08/28 살아가자님 안녕하세요? 츄츄를 .. by 까망오리 at 08/10 저... 늘 눈팅만 했었는데 하도 .. by stonebe at 07/08 감사합니다 ^^ 음.... 우테나.. by 청룡하안사녀 at 06/30 살아가자님 언제나 열정적인 모습.. by 청룡하안사녀 at 06/26 안녕하세요 책 잘 받았어요 저는 .. by clay at 06/26 네이버 블로그로 담아가겠습니다... by 이세린 at 06/20 살아가자님 이제 유명인 되셨군.. by 휘연 at 06/17 ...울어라 팬... ㅠㅠ!!! 2 by 아리샤인 at 06/16 ...울어라 팬... ㅠㅠ!!! by 계짱 at 06/16 최근 등록된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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