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중에 1997년 판 지킬 앤 하이드를 들으면서....
지킬 앤 하이드는 언제 들어도 항상 가슴을 뒤흔드는 뮤지컬 음반 중 하나입니다.
....아니 생각해보니 일단 맘에 들어서 구입한 것들은 다 그렇긴 하군요.

지킬 앤 하이드라는 작품이 제게 있어 특별한 위치를 점할 수 있는 구석이 있다면, 그건 철저한 [꿈의 실패]입니다. 그 테마는 제게 있어 정서적으로 굉장히 약한 부분 중 하나인지라(왠만한 비극 로맨스보다도 약발이 셉니다), 포문을 여는 지킬의 노래가 가냘프게 "....die"라고 끝나는 걸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날 것만 같습니다. 공연 볼 때는 "This is the moment"에서 울어버렸고요.

아무리 원대한 꿈을 가져도, 정의를 실현하고 싶어도, 그것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 영혼마저 걸고 노력한다 해도... 어떻게 보면 재수가 좋으면 되고 아니면 안되는 거죠. 지킬 박사는 오로지 자기 아버지와 고통받는 환자들을 구하겠다는 선의로 이 모든 것을 감행했고 받아들였건만,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완전히 망했죠. 이런 표현으로 부족합니다만. 엠마도 루시도 너무 딱합니다. 지킬이 가장 가슴 아파하는 부분도 거기 있을 겁니다. 꿈을 위해서 달렸건만 결과적으로 자신과 관련된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난도질하고 말았다는 것.

그래서 이 비극적인 실패담을 들을 때마다, 희망적인 파트는 희망적이라 슬프고 절망적인 파트는 절망적이라 슬픕니다. 듣고 있으면 왠지 자학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도 좀 듭니다.
하지만 아직 제가 젊고 철없어서 그런 걸까요? 저는 "This is the moment"를 들을 때마다, "나라도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희망을 느낍니다. 내가 헨리 지킬이었더라도 그 약을 마시고 말 거라고. 나의 꿈을 위해서 분명 돌이킬 수 없는 도박을 할 거라고요. 그 뒤에 어떤 결과가 기다릴지 몰라도. 제가 이제까지 저지른 크고 작은 일들의 패턴이라는 게... 딱히 결과를 생각하고 한 게 아니거든요.;;;; 그냥 하고 싶으면 저질러 버리고, 대신 저질러 버린 만큼의 책임을 지고 열심히 뛰는 거지요. (B형입니다, 저)

이제까지는 그래도 애들 장난 수준으로 커버할 수 있는 마당에서 놀고 있었지만(....저야 진지했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말이죠), 곧 사회인이 될 텐데 그 때의 저는 어떤 모습일까요. 제가 한 일들, 제가 간직한 꿈이 저를 새로운 미래로 이끌어줄지, 아니면 지킬에게 그러했듯 저버릴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오늘의 저는 제 앞에 주어진 선택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요모양으로 생겨먹은 이상은. 적어도 지킬 앤 하이드를 들을 때, "This is the moment"를 들으며 냉소하지 못하고 눈물짓게 되는 동안에는요.
아아악 정말이지 97년 판 최고입니다 ㅠ_ㅠ


밤이라 감상적이 된데다 완전히 잡소리였는데요;;;;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은 필수로 요 아래 포스트도 읽어주세요.
안 그럼 미워할 거예요.

by 살아가자 | 2005/07/14 01:56 |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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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laitwave at 2005/07/15 21:42
글을 읽고보니 어떤 곡이 궁금해져서 들어보고 있습니다. 1997년판인지는 모르겠지만...
뮤지컬을 보지 못해서 그런지 필이 확 오진 않네요. ^^
저도 금년이 인생의 한 시즌에서 마지막 상황이고, 내년부터는 스스로 알아서 해야하는 시기가 옵니다.
요새 그것때문에 이것저것 알아보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있죠.
Commented by laitwave at 2005/07/15 21:42
살아가자님과는 다르게 안 좋게 되는 상황을 우선 상정하는 타입이라(A형) 좋지않은 변수들과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해야 하고,거기다 제가 살고 싶은 삶, 해야 할지도 모를 하고 싶지 않은 일들(힘든일이라 그런게 아니라 이미지상. 남들은 당연하다는듯이 저지르는 것들이지만), 금전적인 문제들을 계속 머릿속에서 굴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새삼스럽게 우테나의 계란껍데기얘기나 습지생태보고서의 마지막회가 짠하게 다가오고...
성공에 대한 자신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걸 위해서 제가 살고 싶은 방식을 포기하는 것과 적당히 어우르는 것, 아니면 완전히 살고싶은 대로만 사는 것(이것도 사실 다른 걸 포기해야 할게 많지만).
이것들 중에 정말 나중에 후회하게 되지 않을 길은 어느 것인지, 아니 후회조차 잊어버리고 살게 되는 것은 아닌지... 미래의 자신에 대한 불확신속에서 고민하고 있지요.
This is the moment라고 노래처럼 확실하고 강하게 말할 수있는 성격이 때론 부럽기도 합니다.
Commented by 살아가자 at 2005/07/16 10:47
각자 자기 성격대로 사는 것이긴 하지만요....
멋대로 말할 수 있는 것도 지금뿐일지 모르지요. 하지만 그래서 지금이 소중한 거구요. ^^
저도 이 앞으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일단 되는 데까지는 해보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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