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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나의 영웅이었다가, 머리가 굵어지면서 평가가 있는 대로 하락한 사람이 두 명 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두 사람. 이문열과 이현세이다.
<공포의 외인구단>은, 처음 봤을 때 ‘이것이 최고의 한국만화가 아닌가!’라고 섣부른 단정을 짓게 유도할 만큼 그 위력이 강력했다(현재까지 그만한 광기를 가지고 날 압도한 만화는 귀기가 서렸다 할 만한 <유리가면> 뿐이다). 지금은 당연히 그렇게 생각지 않지만, 대신에 또다른 의미를 가지고 내게 다가온다. 이토록 노골적으로 남성적인 가치, 것도 배격해야 마땅한 광기를 가지고 여자인 나를 윽박지르는데도 불구하고 나로 하여금 수긍하게 만드는 작품은 이거 하나 뿐이었기 때문이다. 동조할 수 없다. 인정하기도 싫다. 이 미친 놈들을 전부 굴비두름으로 묶어서 정신병원에 처넣고 싶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이해할 수 있었다. 미쳐버린 시대의 아픔이 뼈저리게 다가왔다. 내가 아직 철모를 시절이었기에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버렸지만, 여전히 내 위에 남아있는 이야기들. (외인구단이 완결난 해는 내가 태어난 해다) 그래서 <공포의 외인구단>은, 열거하기도 귀찮은 그 수많은 단점들을 가지고도 나의 베스트 작품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 보았을 때 이 작가는 인간도 아니라고 생각했고, 그는 단숨에 어렸던 나의 영웅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뒤에 찾아본 이현세의 작품들은 - 당시에는 나름대로 즐겁게 봤다만 - 하나도 괜찮아보이질 않았다. 며느리밥풀꽃에 대한 보고서, 블루엔젤, 남벌. 아니 님하 왜 이러셈 이라는 소리가 저절로 튀어나오게 만들던 만화들.(그래도 못 버리고 갖고 있다 크흐흐흑! orz) 개인적으로 최고의 걸작은 <쌀 팔러 간 아이>나 <짜장면 아빠>라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나를 강제로 사로잡는 강력함을 자랑하던 <공포의 외인구단>에서의 기백은 어디로 갔는지, 이 아저씨 그냥 포르노&신파&영웅주의&찌질마초&군국주의를 그리고 있었다... 아아아악!!!!!! 다 그만두고 사상적으로 너무 태클 걸 곳이 많아서 이입도 안 되고 이입이 안 되니 그나마 없는 재미가 하나도 없어!!!!! 그로부터 오는 것은 지독한 배신감이었다. ‘니가 나를 속였어?!’라는 종류의 느낌이었지만, 그건 억지라는 걸 나도 알고 있다. 원래 이현세는 그랬던 거고 시대가 낳은 <외인구단>을 보고 내가 좀 착각을 했던 것뿐이다. 하지만 그래도, <외인구단>의 팬으로서, 그 안의 캐릭터들에 매료되었던 사람으로서 찌질한 까치나 어중간하게 돌은 마동탁은 도저히 참아 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차라리 다른 캐릭터를 써!!!!! 디자인이 그렇게 귀찮았니!!!!! 나의 일그러진 영웅을 향한 애증섞인 분노는 굉장히 오랫동안 해소되지 못한 채 남아있었다. 그만큼 나는 외인구단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볼 때마다 반항하면서도 매료되고, 사로잡히고, 다시 또 기대를 하게 되다가 현실을 보고 좌절하는 일의 반복이었다. 그런 밤마다 나는 이를 아득바득 갈면서 이현세를 속으로 씹다가 눈에서 흐르는 땀을 훔치며 잠자리에 들어야 했던 것이다. 과장이긴 하지만 반은 진짜다. 외인구단은 거대했고 이현세는 찌질했다. 나는 내면에 벌어져 버린 이 갭을 쉽게 좁힐 수가 없었다. 하지만 탁이가 ㅎㅁ라면 어떨까 야오이에는 유희적 기능이 있다. 한심한 짓들, 바보같은 행동들, 심지어 찌질한 사건들까지도 한순간에 비웃어버릴 수 있는 강력한 기능이. 남자들만의 의리, 우정, 승부, 여성배타적인 세계관까지도 따스하게(....) 포용할 수 있는. ex) “부시랑 블레어는 왜들 저런대니” “내연관계라서 치정싸움을 전세계구적으로 하거든” <외인구단>을 포함해, 이현세의 만화에서 엄지는 우승기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K모님의 분석). 트로피도 아니고, 승자에 따라 왔다리갔다리 하는 우승기. 엄지만이 아니라 여자라는 캐릭터가 다 그렇다(블루엔젤을 보고 얼마나 기막혔는지 아는가....). 그 모습을 보고 화를 내면서 작품을 던질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팬이라 그럴 수가 없었다. 그 순간 깨달은 것이다. 아무래도 탁이가 이상하다고 말이다. 진작에 알아챘어야 하는데.... 이렇게 어렸다니! 이 녀석은 혜성이를 다시 만나기 위해 백타석 연속 안타를 날리고, 엄지와 결혼하고, 일본 가서 연습하고, 돌아와서 혜성이를 다시 만난 뒤로는 그 녀석 한번 이겨보겠다고 차마 내 입으로 형언할 수 없는 짓들을 했다. ....도대체 이 녀석 머리 속에 엄지가 존재하기는 하는거냐.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 날 엄지와 탁이의 또 그 녀석에게 졌어. 그건 당신을 향한 내 사랑이 부족해서... 그놈의 사랑타령은 하지도 말아요. 당신은 나와 결혼함으로서 그 사람과 못다한 승부를 할 수 있다 생각했고 그래서 그 어느 날처럼 날 이용한 것뿐이예요! 아니야! 당신을 이용하다니... 당치도 않아. 그래, 그 녀석을 조금이나마 인식하고 있었던 점은 내 사과하지. 하지만 그게 내 성격인 걸 어떡해? 어렸을 때부터 지고는 잠을 못 이뤘고 누구에게라도 이겨야 직성이 풀렸어! 그게 내 천성인 걸 어쩌란 말이야! 아주... 훌륭한 천성을 가지셨군요. 미치겠다......... orz 80년 그 옛날에, 호모라는 개념도 없던 시절에 사라진 혜성이 좀 만나보겠다고 위장결혼 했다며 저렇게 절절하게(=뻔뻔하게) 고백하는 중년남이 있었으니 그 이름 마 동 탁. 덤으로 얘기하면 이놈은 안 경 을 꼈 다 랄까 한국을 대표하는 안경잡이 캐릭터다 갑자기 이현세씨의 모든 것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죄송해요, 당신은 역시 선구자군요. 제가 좀 오해를 했었나봐요. ![]() 문제는 혜성이가 탁이만큼 미친 놈인 주제에 노말이라는 데 있었던 것 같다. 엄지같은 기집애가 뭐가 좋다고 그토록 따라다니는지.(아니, 그전에 니가 엄지 인생에 초민폐라는 사실을 좀 자각해) 그 때문에 탁이는 자기 맘 몰라주는 님좇아 얼마나 수많은 ......탁이의 순정이 얼마나 무서운지 실감했다. 그냥 빨리 안겨주고 조용해지는 게 인류를 위한 길인 거 같다고 생각하는 건 나뿐? 솔직히 맨 처음에는, 이 만화가 혜성총수로 보였었다(이현세 특유의 주인공 띄우는 영웅주의 봐라). 소꿉친구라는 전설의 필살기를 소유한 백두산부터, <에이스를 노려라!>서부터 내려오는 전통 - 감독님에 이르기까지 전원이 다 혜성이랑 한번 싸바싸바해보고 싶어서 엄지로부터 혜성이를 떼어놓으려는 걸 보면 처절함을 넘어 눈물겹기까지 했던 것이다. 이거 외인구단이야 호모구단이야. (아니 그런데 정말로 관계가 종류별로 다 갖춰져 있어서....; 지가 무슨 하렘물이야?) 하지만 탁이의 순정을 깨달은 순간 그 녀석의 편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까지 집념강한 놈이 또 있겠는가. 불쌍해서 내버려둘 수가 없다구(이건 모처의 사장님에 반한 영향을 받은 거 같다 아무래도. 혹은... 나 이런 취향?;;). 그림도 팬픽도 해본적 없는 내가, ‘직접 동인지 만드는 수밖에 없나?’라고 한번이라도 고려한 커플은 얘네밖에 없다. 동탁X혜성 혜성이 쫓아다니다가 인생이고 지구고 다 말아먹는 탁이를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어서. 평범한 소시민으로서 나는 지구의 평화를 바란다. 솔직히 이토록 전례가 없는 엄청난 애정을 과시하는데도 커플링이 초마이너라는 게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된다. 이현세가 작가경력 25년에 이르는 세월 동안 이 커플은 세계를 몇십 몇백 번이고 말아먹었고 그래도 또 만나서 새로 싸우고 상처를 내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전평행세계구적인 놈들이었단 말이다. 천년여우도 여기엔 못 당한다고. 누가 동탁혜성 좀 그려줘요!!!!!! ;ㅁ; .......개인적으로는 이현세씨가 충격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발칙한 망상도 좀 한다. <- 이것이 여자의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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