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마을 순례기 ~ 첫째날
요새 서울 하늘이 미쳤는지 비가 왔다 안 왔다를 계속 반복한다. 캐리어백을 끌고 11시에 공항버스를 탔다. 원래 생각대로 Kim's Club이라든가 들렀다간 늦을 뻔 했지.
드디어, 드디어... 수많은 자신의 한가운데서 얻어맞던 녀석이 활약할 때가 온 것이다! <- 의미불명
간다고 결정난 순간, 나 스스로도 부러워서 견딜 수 없던 내가 되는 날이 정말로 왔다. 왠지 영원히 그런 날이 올 것 않았는데... 츄츄 문집 만드느라 정신 없는 사이에 시간은 총알같이 빠르게 흘러갔다. 으아아아악... 준비가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처음으로 떠나게 된 혼자/ 해외/ 배낭 여행. 트러블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뇌르틀링겐이 너무 기대된다.

비행기에서 처음으로 비상구 좌석에 앉게 되었는데, 발을 쭉 뻗을 수 있어서 좀 낫더라. 옆자리의 아저씨는 출장 일로 유럽을 많이 가보신 듯, 독일의 명소에 대해서 여러 가지 얘기를 해주셨다. 덕분에 드레스덴에도 흥미가 생겨버렸어.
요 2주일만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걸 질러야 했는지... 모조리 일상에서라면 절대 필요없을 것들이다. 그나마 알람손목시계를 포기해서 다행이다. 순전히 그거 때문에 어제 그토록 오랫동안 발품을 팔았는데도! 정신없는 나날이었다. 그 와중에 주민등록증이나 잃어먹고, 씁.
캐리어백의 무게는 10kg. 괜찮을려나...
챙겨 넣은 짐에 비해서 가방이 좀 큰지 위쪽 공간이 20%는 남는 듯하다.



제 1 부 <메르헨 가도서부터 로만틱 가도까지>

첫째날


첫날부터 버스를 놓치다

내가 탄 비행기는 대한항공에서 성수용으로 내놓은 특가 프랑크푸르트행이었다. 사실은 친구가 사는 보훔까지 가려면 뒤셀도르프행을 타야 했는데, 두달 반 전 내가 알아보고 다닐 때는 이미 다 팔린 뒤였던 것이다. 그래서 대한항공에서 제공하는 뒤셀도르프행 무료 버스를 타고 가기로 하고 대한항공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편을 예매했었다.

비행기에서 내린 후, 버스가 출발한다고 스튜어디스 언니가 말해준 6번 출구를 찾아 헤매었다. 여유시간은 1시간. 표지판을 해독할 수 없는 상태에서 마구 헤매다가(40분 헤맸다...) 드디어 6번 출구로 보이는 장소에 도달했다. 한데 뭔가가 수상했다. 출발 시간 10분 전이 되어도 5분 전이 되어도 버스 비스무리한 것도 안 보이길래 불안했는데, 출발 시간인 6시 반이 되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등 뒤에 소름이 돋았지만 그러나 늦었다. 또 15분 간 열심히 헤매서 대한항공 창구로 찾아가 물어보니, 버스는 이미 떠났다는 것이었다(비유 아님). 프랑크푸르트 공항에는 ABC 구역이 있고 DE 구역이 있어 두 개의 건물로 되어 있는데, 예의 버스 떠나는 6번 출구는 DE 구역 쪽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설마하니 6번 출구가 두 개 있을 줄이야!!! 이런 상식 밖의 상황이!!!!
왜 그런 말을 안 해줬냐고 친절한 스튜어디스 언니를 탓할 수도 없는 것이, 내가 타고 온 비행기는 DE 구역에 내렸기 때문이다. 안내해준 창구의 직원도 도대체 어떻게 ABC 구역까지 흘러들어갔냐고 궁금해 하는 표정으로 물어오니 할 말이 없음... 흑흑 그저 하늘을 달리는 기차간 밖의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다고 밖에.
(※ ABC 구역과 DE 구역은 스카이라인이라는 공중기차로 연결되어 있어 이걸 타지 않으면 서로간의 이동이 불가능하다. 내가 왜 그걸 탔지?!)(신기해서가 아니었을까.... orz)
첫날부터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날 줄이야. 직원은 [무료 서비스 개념으로 제공되는 버스라 달리 방법이 없다]고 잔인하리만큼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조금 정신이 아득해지는 자신을 다독이면서 ‘괜찮아, 괜찮아’라고 심호흡한 뒤, 우선 지폐를 동전으로 바꿔서 독일에 사는 친구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굉장히 오랜만에 듣는 구레상의 반가운 목소리! 하지만 나는 그 앞에 대고
“그런데 보고해야 될 게 있어. 나 버스 놓쳤거든. 어쩌면 좋지?”
라는 한심한 질문이나 할 수밖에 없었다... 우욱. 이제부터 독일을 혼자 돌아다닐 거면서 처음부터 이렇게 칠칠맞은 모습을 보이다니. 아아 민망해라.
그러나 구레상은 별로 당황하지도 않은 듯한 목소리로(...) 그럼 기차를 타고 오라고 지시를 내렸다. 독일 기차가 굉장히 비싸다는 얘기를 사전에 들었던 터라 떨리는 목소리로 “기차표가 ...얼만데?” 라고 조심스레 물었다. 그리고 조심하거나 말거나 닥쳐오는 답변.
“그게 아마 100유로는 안 할 거야.”
.....아아 하나님이시여!
100유로가 어느 정도인지 감이 안 오시는 분들이 많을 테니 짤막하게 설명하겠다.
그건 내가 생활비 외에 여유로서 잡고 온 비상금 전부였다....

벌써 저녁 일곱 시. 자신이 정말 한심했다. 타국에서 이게 왠 삽질? 액땜이라 치기에도 너무 거대했다. 이런 돌발상황 때문에 예산을 빡빡하게 잡던 내게 엄마가 넉넉히 챙겨가라 하시던 거구나, 라고 피눈물을 흘리며 이번에는 표파는 곳을 찾아 헤맸다. 오랜만에 쓰느라 잘 안 돌아가는 혓바닥을 필사적으로 굴리며, 또 반 시간 이상 흐른 후에야 간신히 표를 끊을 수 있었다.
70유로. 각오했던 것에 비하면 싸서 다행이었다. 어쨌거나 30유로는 남은 거잖아... 하지만 한번만 또 이런 일이 생겼다간 정말로 라인강 오리알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식은땀이 흘렀다.
어쨌거나 ICE(고속열차) 보훔행 8시 17분발을 끊어서 기차에 탑승했다. 보훔에는 10시 17분 도착. 씁쓸한 기분은 남아있었지만, 그래도 좌석에 앉으니 안정이 되었다. 달리는 차창 밖에 비치는 숲들과 그 사이사이로 보이는 하얀 벽에 밤색 지붕의 집들은 정말 한 폭의 그림이었다. 계속 그걸 보고 있다가 피곤했던지 잠이 들었다.

누군가가 깨워서 일어났다. 이미 기차칸은 텅 비어 있었고 독일인 역무원이 나를 보고 뭐라뭐라 하고 있었다.
순간 등에 찬물이 좌악 끼얹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시계를 보니 10시 반이었다!!! 벌써 보훔 역을 지나쳐서 종점에 도착해버린 것이었다. 피곤하긴 했지만 젖혀지지도 않는 기차 의자에서 이토록 깊이 자다니이이이이익!!!!!!
(※ 당연히 젖혀진다. 내가 방법을 몰라서 그랬던거지.)
역무원은 영어를 못했다. 하지만 내가 처한 상황은 눈치챘는지 21번 승강장으로 가라고 했다. 우선 그쪽으로 가서 구레상에게 다시 전화를 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비싸더라도 로밍 서비스를 해올 걸 그랬다고 계속 후회하면서 공중전화의 다이얼을 돌렸다.
정말이지 구레상 대할 낯이 없었다... 이 무슨 초강력 민폐란 말인가!!! 올 사람이 내리지 않는 기차역에서 무작정 걸려올 전화를 기다리고만 있어야 하니 그 심정이 오죽 답답할까. 하지만 구레상은 내 전화를 받더니 지금 있는 곳이 도르트문트 아니냐고 우선 확인한 다음(그 때서야 종점 이름이 도르트문트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음 기차가 오는 대로 타고 이쪽으로 오겠다면서 대합실에서 기다리라고 말해주었다.
정말 눈물나게 고마웠다. 구레상이 탄 기차가 11시 반에 도착하기까지 그 추운 대합실에서 기다리는 시간은 왜 그리도 길던지, 사람들은 왜 그렇게도 낯설어 보이던지. 그다지 표정 상의 변화는 없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정신적으로 마비 상태가 아니었나 싶다. 여름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추웠는데 날씨 판단을 잘못하고 옷을 챙겨온 탓에 껴입을 겉옷도 없었다. 그래도 해가 지면 사람들이 싹 없어진다던 얘기와 달리, 조금이지만 대합실에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서성거리며 그저 흘려보내던 긴 기다림의 끝에, 드디어 저편에서 구레상이 나타났다. 나 때문에 오후 종일 속태웠을 거를 생각하면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었지만, 함께 기차를 타고 보훔역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따뜻하고 쏜살같았다. 실수로 종점에 왔다곤 하지만, 도르트문트에서 보훔으로 돌아가려면 ‘또’ 기차표를 끊어야 했기에 직접 데리러 와 준거다. 같은 주라면, 오후 7시 이후에 한해 자기가 가진 정기권으로 두 사람까지 기차에 탈 수 있다면서.

그렇게 자정 넘어서야 겨우 보훔 역에 도착해서 지하철을 타고 구레상이 살고 있는 대학 기숙사로 이동했다. 이미 늦은 밤이라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썰렁한 역 앞 거리를 둘이서 가로질렀다. 기숙사의 엘리베이터가 참 특이했는데, 엘리베이터의 바깥쪽 문이 여닫이인 데다 수동이었다. 긴장해서 그랬는지 배고픈 것도 몰랐고, 새벽 2시까지 구레상과 얘기하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by 살아가자 | 2005/08/29 18:40 | 금관마을 여행기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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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계짱 at 2005/08/29 18:58
...살아가자님.. 첫날부터 무슨이런 고행길을..ㄱ-............
<-너무 놀래서 갑자기 존댓말이 툭 튀어나왔음... 다음편 기대중..아하하하하하하...
Commented by 마스터 at 2005/08/29 20:05
왠지 이 첫날 이후로는 배짱이 두둑해지셨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듭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Commented by 수안 at 2005/08/29 20:34
고생하셨습니다 T.T 돌발상황일 때 말 안통하면 정말 가슴이 벌렁벌렁하는데 그 역무원분과 사랑에 빠지지 않으셨는지 궁금해요^^
Commented by 살아가자 at 2005/08/29 20:42
계쨩 / 아하하하. 저 첫날 빼고는 다 괜찮았어. 아마도....

마스터님 / 예감이 맞으셨습니다 푸후후후훗 ㅠ_ㅠ

수안님 / 파하하하하!!!! 아쉽게도 그 역무원은 XY가 아니구 XX였답니다. (어떻게 그런 상상을... 대단하세요 ;ㅁ;)
Commented by 환타 at 2005/09/11 11:55
이제서야 여행 후기 읽어요...아아...뭔가 조마조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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