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마을 순례기 ~ 둘째날
먼저 이 얘기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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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부 <메르헨 가도서부터 로만틱 가도까지>

둘째날


9시 반에 느지막히 일어나 샤워를 했다. 날씨가 여름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선선했다. 19-20도밖에 안 된다고 한다. 38-39도를 오르내리는 서울의 불볕더위를 생각하면 피서 하난 제대로 하는 거지만, 긴 옷은 아래 위로 한 가지씩밖에 안 챙겨왔는데 큰일이었다.
“어째서 유럽인 주제에 이렇게 추운 거야! 가이드북 거짓말쟁이!”
“...로마군이 왜 여기까지 쳐들어오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날씨 때문이었잖아!”
“......”
한 마디로 나를 잠재워버리는 구레상이었다.
(※ 구레상과 나는 로마사에 버닝하다가 만난 친구 사이다. 첨언하면 로마군은 남부 유럽에 비해 추운 날씨 탓에 독일까지 올라오지 못했고, 그래서 이쪽은 게르만 문명의 자취가 오래 남게 되었다. 계속 칠칠치 못한 발언의 연속이구만.)
대체로 흐린 날씨라서 돌아다니기엔 좋을 듯했다. 로마인들이 못 올라온 이유를 알만 해. 8월 중순인데 말이지. 해는 또 엄청 길어서 8시 반이 넘어야 지기 시작하더라.

11시에 구레상이 다니는 대학의 학생 식당에 가서 닭가슴살 요리를 먹었다. 이런 저런 요리가 담긴 접시를 골라 집어드는 대로 계산하는 시스템이었는데, 나는 닭가슴살, 으깬 감자, 고슬고슬한 밥을 골랐다. 학생 식당답게 싼 데다가 맛있어서 좋았다. 지금 내가 뭔들 안 맛있겠느냐 싶긴 하지만... 하지만 음료는, 슈퍼마켓에서는 76센트에 파는 걸 1.20유로에 팔고 있었다. 알았으면 안 샀다구~!

돌아오면서 근처 슈퍼마켓을 구경했다. 초콜릿만 진열해놓은 블록이 5개라니! @_@ 하긴 유제품 코너는 아예 방이 따로 있더라. 요플레, 요구르트, 그리고 치즈. 그런 것들이 어찌나 종류가 다양하던지.
그리고 내가 여기서 맨 먼저 익혀야 할 것은, 물 중 탄산이 들어간 것과 안 들어간 것을 구분하는 일이었다. 여기에서 파는 식수들에는 기본적으로 전부 탄산이 들어가 있다고 한다. 세상에... 그게 목으로 넘어가나? 구레상 말로는, 익숙해지면 탄산 없는 물은 심심해서 못 마신다고 하지만.(김빠진 콜라 같은 느낌인 걸까) 식수병들 중에서 Ohne Kohlensaure라고 쓰인 것이 있는데, 이게 ‘탄산 없음’이다. 혹은 Natriumarm. 어쨌거나 Ohne만 열심히 기억해두었다.
구레상이, 쵸콜릿 로쉐를 만드는 회사 페레로의 다른 과자인 라파엘로를 사줬는데 이게 굉장히 맛있었다! 겉은 코코넛으로 감싸고 안에는 화이트 크림이 들어있었다(네 개에 56센트).




쾰른에서

오늘은 근처에 있는 도시 쾰른에 나가보기로 했다. 역에서 때마침 놀러와 있던 구레상의 사촌과 합류해서 쾰른 행 기차를 탔다.
쾰른 역을 빠져나오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하늘을 찌를 듯이 뾰족하게 그 위용을 뽐내고 있는 쾰른 대성당이었다. 오늘부터 World Youth Day 기간(젊은 카톨릭 신자들이 모이는 날이라고 한다)의 시작이라 사람들이 많이 붐볐다. 광장의 한 구석에서는 보드족들이 묘기를 부리고 있었고, 나이 지긋한 어느 할아버지는 광장 바닥에 교황의 초상화를 분필로 그리고 있었다.

쾰른 대성당의 안으로 들어갔다. 삐죽삐죽한 고딕 양식이 이채로웠다. 현란한 스테인드 글라스가 곳곳에 보였고, 앞쪽에는 일곱 개의 돔 속에 각 황족들의 무덤이 있었다. 자신의 모습을 예수님과 함께 그려놓은, 제후들의 갖가지 초상화를 보면서 왠지 씁쓸해졌다. ‘나 높은 분이랑 이렇게 친해염’이라고 홍보하는 것 같잖아. 자신들의 정치를 위해 전쟁을 하고, 그 명분을 위해 종교를 끌어다 내세웠던 역사들.

성당을 나온 후에는 번화가인 호에 거리를 걸으면서 아이쇼핑을 했다. 그 거리가 시작되는 지점에 <성인용품점>이 보이길래 구레상과 의기투합해 들어가보았다.

(이하 자진심의 삭제 ^^; 별 대단한 건 아니지만 역시 이런 얘기는 여자친구들과 밤에나 하렵니다.)

거리에서 선물가게, 서점 등을 돌아보았다. 목욕탕 오리가 한쪽에 다섯 칸을 차지하고 있는 가게도 있었다. 그것도 매우 인상적이었지만 가장 박장대소를 하게 만들었던 것은 Sex dice라는 물건이었다. 두 개가 셋트였는데, 정육면체에 각각 장소와 체위가 전부 다르게 적혀져(& 그려져) 있어서 그 아이디어에 뒤집어졌다. 무려 야광.
서점에는 한국만화도 많고, 무려 에반게리온 엔솔로지도 정식출판되어 있어서 놀랐다. 달빛천사가 유난히 눈에 와서 박혔다.

그쯤에서 호에 거리의 쇼핑가가 끝났기에, 중앙역으로 돌아가서 아이스크림 가게로 들어가 앉았다. 유럽에서는 직접 아이스크림을 만든다고, 한국에서는 못 먹어보는 맛이라고 권하는 구레상. 4.70유로 하는 Mocca backer 아이스크림은, 크림을 잔뜩 얹고 와인도 솔솔 뿌려 맛있었다. 가게에서 직접 만드는 유럽 정통 아이스크림이라니까 비싸지만 말이다.
그 후에 역 앞에서 구레상의 고모가 맛있다고 권했다던 감자 요리집을 찾아 헤매었지만 발견하지 못했다. 대신 광장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디아블로 묘기를 선보이던 어느 아저씨를 만났다. 아저씨가 막 음악 틀고 무대를 만들고 사람들 앞에서 쇼를 시작하려는 순간, 금발을 늘어뜨린 어느 꼬마 여자애가 해보고 싶어해서 아저씨의 도움으로 디아블로를 시도하게 되었다(카레이도 스타의 로제타가 안 떠오를 수가 없었다!!! 이건 절대로 내가 애니팬이라서가 아니야!!!). 당연하지만, 계속 실패했고, 이윽고 아저씨의 멋진 디아블로 쇼가 펼쳐졌다. 정말로 줄에서 떨어지질 않는 깔때기 팽이(....). 두 개도 돌렸다가 하늘 높이 던져올렸다가, 디아블로를 직접 보는 것이 처음인 나는 눈을 떼지 못했고 옆의 구레상 사촌은 아예 동영상을 찍고 있었다. 이 아저씨의 넉살이 여간 아니어서, 결국 외발 자전거 쇼를 하는 것까지 전부 보고 말았다. 더블 디아블로가 역시 가장 멋졌지만.

그 후에 라인강 쪽으로 내려가면서 크리스마스 용품점을 좀 구경했다. 날씨가 잔뜩 흐려 있어서, 강변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이미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고, 우리는 뒤셀도르프로 가려던 예정을 변경해 저녁을 먹고 집에 가기로 했다.
저녁은 가난뱅이의 벗 버거킹에서 해결했다(버거는 학생식당과 달리 맛이 하나도 없었다...) 여기서 ‘아무도 못 듣는다’는 걸 핑계로 음담패설을 좀 나눈 뒤 플랫폼으로 이동했다. 구레상이 구운 커리 소세지와 콜라를 사주었고, 집에 가는 기차를 탄 건 8시 다 되어서였다.



by 살아가자 | 2005/08/29 19:07 | 금관마을 여행기 | 트랙백(1) | 덧글(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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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Peruru`s Can.. at 2005/10/01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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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드디어 개막했습니다!! 2. 이런걸 샀습니다 (1) 3. 이런걸 샀습니다 (2) 4. 교정..들어갔습니다. 5. 내일 시험이네요... ...more

Commented by 마스터 at 2005/08/29 20:10
으핫핫..^^ 거기서마저도 오리가 먼저 눈에 들어오신 거군요.
Commented by 살아가자 at 2005/08/29 22:18
마스터님 / 구레상이 저보고 "넌 오리만 있으면 다 좋은 동네 판정이냐?"라는 소리를 하더라구요 으하하.
Commented by 살아가자 at 2005/08/29 22:18

아무래도 저거 신경쓰인다 싶다가, 자기 블로그에서 신경쓸 필요가 뭐 있냐 싶어서 그냥 그쪽 얘기는 다 삭제하는 쪽으로 조치를 취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Commented by laitwave at 2005/08/30 01:17
역시 지워졌군요. 잘 하셨습니다.
필수적인 것도 아닌데, 계속 신경쓰이는 걸 놔 둘 이유는 없지요.
Commented by 미로냥 at 2005/08/30 14:12
핫핫 결국 또 오리!
이런 살아가자님 같으니라고!(<<)
Commented by 살아가자 at 2005/08/30 17:17
laitwave님 / 아무리 제가 이 블로그 주인장이라 하더라도, 양해 없이 제 임의로 타인의 덧글을 지우는 것은 나름대로 대단한 결단입니다. 이쯤이면 뭔가 낌새를 채셨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요. 그냥 은근슬쩍 넘어가지 말고 처음부터 제대로 얘기할 걸 그랬나 봅니다.

글쎄요, 남들 다 보는 블로그에선 아예 말을 말았어야 하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바이브레이터를 봤는데 상상보다 훨씬 커서 놀랐다'는 몇 문장이 그렇게 자극적일 줄은 몰랐군요. 그건 음담패설도 아니고 순수하게 놀랐다는 경험담이었고요(적어도 제 의도는).
백배 양보해서, 그 부분을 정독했다는 얘기나 크기에 대한 얘기들이 리플로 달리는건 애초에 화제로 꺼낸 제 자업자득이라고 치죠. 하지만 전혀 상관없는 다른 분 리플까지 받아서 거X기가 어쩌고 하는 농담이 달리는 건 참을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다 내 탓이오 하고 삭제해버린 겁니다만...
Commented by 살아가자 at 2005/08/30 17:19
그간 인연도 있고 해서 제가 기본적으로 laitwave님께 호감을 가지고 있기는 해도, 남자분에게 그런 얘기를 듣는 것은 당연히 불쾌한 일입니다. 상대가 저와 가장 친한 남자친구라 해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오해가 없도록 말을 고르느라 리플이 길어졌습니다. 블로그나 홈피를 해보신 분들이라면 제가 이 리플을 달 때까지 얼마나 많이 고민했는지 아실 겁니다. -_-;
Commented by 살아가자 at 2005/08/30 17:20
미로냥님 / ;;;;;;;; 그거는 어느나라 비유법입니까?;;;;;
결국 오리인 거죠. 그런데 독일 강에는 오리 떼 정말 많더라고요.
Commented by laitwave at 2005/08/30 21:23
저 역시 써 놓고 나중에 보니 좀 그렇더군요.
불쾌하셨다니,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지우시길 백번 잘 하셨어요.
Commented by 살아가자 at 2005/08/31 09:08
괜찮아요. 다음부터는 주의해 주시면 됩니다.
Commented by laitwave at 2005/08/31 09:28
아침에 일어나서 생각해보니 위에 쓴 것을 반어적표현으로 이해하신 것 같았습니다.
어투를 바꿔서 읽어보니, 충분히 오해를 불러일으킬만하네요.
오버가 지나쳤다건 사실이고, 살아가자님께서 괜찮다고 하셔도 제가 괜찮지 않네요.
츄츄동맹서부터 하루에도 몇번씩 들러보던 게, 오히려 독이 된 거 같습니다.
츄츄동맹을 포함해서 잠시 들르지 않는게 좋겠단 생각이 드네요.
Commented by 서찬휘 at 2005/09/01 03:41
으핫핫. 오리라. 광주에 가시면 괴로워서 눈물 흘리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골목 전부가 오리고기집인 '오리 골목'이 있거든요. (…)
Commented by 살아가자 at 2005/09/02 09:54
laitwave님 /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말아주세요. 개인 블로그의 주인장으로서 지켜주셔야 할 룰에 대해서 말씀드린 것뿐이예요. 여기서 일어난 일을 츄츄동맹과 연결시키시면 안돼죠;; 동맹이 저 혼자의 것도 아닌데요. 다들 소중한 동맹의 일원이잖아요.

서찬휘님 / ....그런 곳에는 절대로 가고 싶지 않군요;;;; 쿨럭.
Commented by laitwave at 2005/09/03 08:24
제 글을 다른 뜻으로 받아들이신 것 같습니다.(제가 짧게 쓴 탓도 있겠죠)
이 글은 한 템포 늦춰서 읽어주세요. 빨리 읽으면 감정적으로 보일테니까요.

제가 괜찮지 못하다고 한 것은, 제 자신의 문제로 인한 것이란 뜻입니다.
새 근무지에 총각들이 많다보니 그렇고 그런 얘기들이 자주 나오긴 했지만,
근묵자흑이란 소리로 책임전가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스스로 씻어내지 못했기에 물들어간 것뿐이니까요.
근 몇달간은 經이라 부를만한 책보기를 소홀히 한 점을 반성하고 있습니다.

잠시 들리지 않겠다고 한 것은, 거리를 어느정도 띄울 생각으로 드린 말씀입니다.
한번 더 생각하고, 주의해서 쓰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MSN이나 블로그 등 타인의 일상을 느낄 수 있을 만한 것들은 정리를 한 것이고요.
결과적으론 딱딱해지는 면도 있겠지만, 일단은 당분간 거리를 둘 생각입니다.
영원히 떠나서 아주 안 나타나겠다고 하는 게 아니며,
그런 식으로 살아가자님 곤란하게 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Commented by 살아가자 at 2005/09/03 10:05
잘 알겠습니다.
역시 온라인은 이게 불편해요. 그냥 얼굴 보고 얘기하면 오해없이 끝날 일인데도, 글만으로 의사를 전달해야 하니까 엄청 주의해서 써야 한다는 게 말이죠...
그럼 버젼업한 laitwave님이 다시 오시는 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Commented by frost at 2007/08/07 01:39
무참히 뜨는 404 에러 페이지........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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