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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부 <메르헨 가도서부터 로만틱 가도까지> 알스펠트에서 첫날 졸다가 종점까지 간 후로 기차 안에서 잔 적이 없다. 나처럼 잠이 많은 녀석이 그런 게 가능하다니 기적에 가까운 노릇이지만, 종일 걷고 들어와서 기차로 이동하는 시간에 후기를 쓰니까 잘 시간이 없다. 하지만 이런 건 나 자신도 상상하지 못했다. 원래대로라면 절대로 못했을 일인데 어찌 된 걸까. 알스펠트는, 내가 이제까지 갔던 독일 마을 중에서는 가장 촌동네였다. (누구더라 내게 빨간모자 전설이 여기서 나왔다고 한 게...) 기차역이 썰렁하다 못해 유령의 집 같은 데다가, 엘리베이터는 고사하고 전광판조차 없는 역은 처음 봤다. 하지만 그래서 그런가, 10분을 걸어들어가서 만난 구 시가지는 최고였다! 정말로, [꾸미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는 중세 독일]이라는 느낌이었다. 울퉁불퉁 박혀 있는 그 돌들 위로 캐리어백을 끌고 다니는 건 괴로웠지만. 정말이지 완전 삽질이었다. 5시 반 가까이라는 늦은 시간대에 도착해서 그런가, 원래도 조용한 마을이라지만 가게들이 대개 문을 닫은 뒤라서 관광엽서조차 구경할 수 없었다. 질질 끌리는 내 가방의 소음이 동네의 고요함을 다 깨고 다녀서 무진장 민망했다... 이제 슬슬 독일 구 시가지, 중세 마을의 사회구조가 파악이 되는 듯하다. 사람들이 무엇을 중심으로 움직였는지, 어떻게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살아왔는지 말이다. 알스펠트의 고동색 구 시청사 건물도, 베이지색의 결혼식의 집도 정말 아름다웠다. 예쁜 집들이 대체로 가게이거나, 인위적인 냄새가 나던 다른 동네와 달리, 알스펠트는 정말 사랑스런 목조주택들이 가정집으로 남아있었다. 아아, 이런 집에서 살아봤으면...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걸. 기차 시간에 늦을지도 모르는 걸 각오하고 서둘러 그리던 빨간 지붕집 위로, 10분 동안 길게길게 내려앉던 6시 종소리를 잊을 수 없다. 창마다 장식되어 있던 빨간 꽃들도. 어쨌거나 잘한 일이다. 사진을 통째로 날린 지금 내게 남아있는 것은 몇점의 되도 않는 스케치 뿐이다. 으흐흐흐흑.... (운다) 풀다에서 프랑크푸르트로 가기 위해서는 다시 풀다를 거쳐야 했다. 이게 다 알스펠트가 촌동네라서 그런 거지만. 이곳에서 저녁을 해결해야 했지만, 8시가 가까운 만큼 가게들이 이미 다 문을 닫았을 거라는 사실을 깜박하고 있었다. 아직껏 문을 연 곳은 맥도날드밖에 없었지만 거기의 버거나 감자튀김을 먹는 것만은 정말 사양하고 싶었고... 결국 맥도날드에서 새로 나온 ‘과일 요구르트 드링크’라는 걸 골랐는데 이건 맛이 꽤 괜찮았다. 한국에도 들어왔으면 좋겠는데. 가라앉은 마지막 과일 조각까지 빨아먹고, 남는 10분 동안 풀다 역사를 그렸다. 프랑크푸르트행 열차는 5분 지각이었다. 독일에서는 어째 기차들이 늦는게 다반사인지 그것도 미스테리다. 덧붙여서, 프랑크푸르트 가는 기차 안내 방송의 차장 목소리가, 아니 정확히는 말투가 정말 페가사스(일본판) 같았다. 어릴 때 저걸로 놀림 안 받았을래나 모르겠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땅거미 지는 남색 하늘에 퍼진 구름이 꼭 천사가 마블링이라도 한 것처럼 아름다웠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차는 9시 45분이 되어서야 중앙역에 도착했다. 짐을 끌고 역을 나오는데 한 무리의 동양인 그룹과 지나쳤다. 그리고 이틀 만에 귀에 스치는 낯익은 언어. 혼자 여행 나선 후로는 처음 듣는 한국어였다. 확실히 공항이 있는 대도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부터 내가 가려는 숙소도 한국 민박이니 말이다. 프랑크푸르트의 많은 한국 민박 중, 역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선택한 숙소이다. 기아 옥외광고 오른쪽 길로 3분을 걸으면 나온다고 했다. 뉴욕을 연상시키는 고층 빌딩들 사이로 완전히 파김치가 된 채 걸음을 서둘렀다. 머리 속에는 빨리 발닦고 자고 싶다는 생각뿐이었고, 왜 안 보이는지, 혹시 내가 모르고 지나친 건지 싶을 때쯤 한국어로 된 자그마한 팻말이 눈에 보였다. 길 오른쪽에 있는 고층빌딩의 맨 꼭대기였다. 명패라기보다는 초인종판에 가까운 것에 이름표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걸 보고, 도대체 어떻게 초인종을 눌러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지만, 어떻겐가 두드려보다가 윗층과 연락하고 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 가파른 계단은 정말, 길었다... 세어 볼 여유도 없었지만 나선계단이 5~6층쯤 되는 모양이었다. 손은 양쪽 다 화끈거리는데 무거운 가방을 들고 올라가려니 죽을 지경이었다.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궁금해질 때쯤 계단 위로 고지가 보였다. 민박에 도착한 시간은 9시 55분이었는데, 아주머니가 10시면 캔슬해버릴 생각이었다며 전화 좀 미리 하지 그랬느냐고 하셨다. 일단 인터넷 예약 게시판에 기차 시간 적어놨었지만, 뭐어 그런 얘기 꺼낼 필요는 못 느꼈고... 예약금을 안 냈다면 6시에 캔슬해버렸을 거라지만, 어쨌거나 캔슬 안되었으니까 더 말할 것 없이 오케이. 나는 7호실 더블룸을 배정받았다. 내일 귀국할 예정이라는 어떤 언니가 옆 침대에 먼저 들어와 있었다. 사실상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민박 내에는 슬리퍼가 비치되어 있었고, 방이 여덟 개인가 있었다. 깨끗하고 넓어서 방에 빨래를 널어놓았다. 펜션과 달리 수건은 자기 것 사용이었다. 하나뿐인 작은 창 밖으로는 맞은편 건물 너머 걸린 초승달이 보였다. 정말로 뉴욕 같은걸. 내일 유로파 버스에 타려면 일찍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서둘러 씻고(11시 이후로는 샤워 금지) 알람을 맞춰놓은 뒤 자리에 누웠다. 왠지 잠이 쉬이 오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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