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마을 순례기 ~ 여섯째날
오늘 학교 후배랑 같이 신촌 민토에 갔었는데요. BGM으로 도나우강, 꽃의 왈츠, 행진곡, 정경 등을 틀어주는 통에 얘기하다 말고 다 죽어서 돌아왔습니다. 민토에다 카페 내에서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는 걸 금지시키라고 건의하든지 해야지...



제 2 부 <금관마을 뇌르틀링겐>

여섯째날


좀 추워서 한겹 더 껴입고 자기를 잘했다. 샤워기의 물 온도가 왔다갔다 하지만 그거야 프랑크푸르트 민박에서도 그랬고.

8시에 아침 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갔다. 하멜른에서만큼 화려한 식단은 아니었지만 정성이 깃들여있는 게 느껴졌다. 삶은 달걀에 직접 뜨개질한 작은 모자를 씌워놓는 센스는 정말...! 빵, 치즈, 햄, 잡곡식빵, 잼, 꿀, 버텨, 반숙달걀, 홍차, 오렌지쥬스, 우유 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특히 우유는 정체가 무엇인지, 아주아주 진했는데 이제까지 먹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맛있었다. 할머니께서, 남은 빵으로 점심에 먹을 샌드위치를 싸가라고 먼저 권해주셨다. 정말 감사합니다!

나 말고도 오스트레일리아에 거주 중이라는 독일인 할아버지 두 분이 식사 중이셨다. 테이블 너머로 이것저것 얘기하면서 즐겁게 식사를 마쳤다. 그런데, 왜 다들 나 혼자 여행 중이라고 하면 놀라는 걸까?



로텐부르크에서

짐은 다 싸놓고, 내가 잤던 방 안을 그리려다 깨끗하게 실패하고선 다시 시가지를 구경하러 나섰다. 갈 곳은 너무 많은데, 버스 오기 전까지 대략 두 시간밖에 여유가 없었다.

우선 시청사 탑을 올라가보고, 거리를 걸으며 가게들을 훓어 보다가 부르크 공원에 들어갔다. 공원 성벽 아래로 펼쳐진 산맥과 푸르른 숲이 아름다웠다.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랑하는 크리스마스 용품점에 들르고 인형이 튀어나온다는 광장의 시계를 본 뒤 장난감 박물관을 돌고 나오니 끝이었다. 으윽.

장난감 박물관은, 짐작은 했지만 정말 물건이었다!!! 상상을 초월하게 정교한 초대형 인형의 집, 조그만 군인들 피규어-_-에, 일본 인형이나 한국 인형도 전시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정말로 성인 등신대 인형이 전시되어 있어!!! 맙소사... 어릴 때 봤다면 배가 아파서 밤새도록 잠을 못 잤을 거 같은 물건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특히나 구석에 있던 마리오네트 인형들은 새삼스레 염장을 질렀다. 하긴 크리스마스 용품점에 무려 마리오네트 오리 인형도 있더라.

도저히 발길이 안 떨어져서,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2분 지각이었다. 그나마 가방을 다 싸놨길 망정이지. 할머니가 자가용으로 버스를 탈 역까지 데려다 주셨다. 할머니의 차는 아주 낡아서, 가다가 신호등 때문에 잠시 멈춰 서려다 시동이 꺼지면서 아주 서버리기도 했다. 곧바로 다시 시동 걸긴 했지만.

하지만 역에 가보니 버스는 없었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화장실도 들르고 구레상에게 보낼 엽서도 다 썼다. 그런데도 버스가 도착하지 않았다. 결국 버스는 예정시간보다 30분 늦게 도착했는데, 사정을 들어보니 어제의 페스티발 때문에 평소엔 5분 걸리던 길에서 30분을 지체했다고 한다. 버스에 짐을 싣고 펜션의 할머니와 아쉬운 작별을 했다. 할머니는 그 버스로 도착한 또다른 한국인 가족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셨다.

버스는 딩켈스빌에서 잠시 멈춰섰다. 별로 둘러보진 않았지만, 하멜른만큼이나 아기자기한 건물이 많은 도시였다. 딱히 특출난 볼거리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만 아주 예뻤다. 하도 예쁜 마을이 많다보니 이젠 눈이 좀 높아진 듯하다.


뇌르틀링겐 도착

그리고 뇌르틀링겐이다. 안내방송에서 ‘뇌르틀링겐’ 그 한 단어를 읊자마자, 반쯤 졸고 있던 정신이 확 깰 뿐만 아니라 심장 박동 수가 두 배로 증가해 펄떡펄떡 뛰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그리고 차는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뇌르틀링겐의 성벽을 지났고, 나는 무릎 위의 아히루 인형을 꼬옥 끌어안았다. 정말로 그곳에 온 거야!

얼핏 보기엔 뇌르틀링겐의 건물들도, 이제까지 보아온 로만틱 가도의 건물들과 별 다를 게 없어보였다. 하지만 예약한 숙소를 찾아서 거리를 누비는 동안, 낯익은 건물들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공식 홈피의 후기에는 ‘거리에 별로 사람이 없다’고 했던 것 같은데, 어찌나 거리가 북적이는지 축제라도 있나? 싶었다.(그리고 나중에 알고 보니 실제로 그러했다)

숙소는 버스가 들어온 북쪽 문의 가까이에 있었다. 실은 이 숙소, 작품 내 지도상으로 금관학원이 위치해 있었던 장소에 있길래 찍은 거기도 하다 으하하. 그런데 막상 방으로 들어가보니 35유로씩이나 내는 것치고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낮에도 복도가 어두운 건 그렇다치고 싱글룸에 창문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창이 하나 있기는 한데 불투명 유리인데다 열고 내다볼 수도 없으니 빵점. 그제서야 나의 숙소 만족도는 방 크기나 화장실 등과 상관없이 창문 크기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안내서를 보니 더 싸고 좋아보이는 데도 있던데 내일 숙소를 옮겨야겠다(이젠 이런 배짱이 생겼다;). 게다가 방 안에서, 독일 와서는 처음으로 모기와 조우한 후 그 생각이 더 강해졌다. 바로 근처에 강이 있으니 도리 없는 일이긴 하겠지만.


...그야말로 사진 남기려는 목적으로 챙겨온 하얀 스커트를 입고선 호텔을 나섰다.

비난사절! 나도 여자란 말야! 꿈에도 그리던 장소인데 이쁜 옷 입고 사진 안 찍고 싶을 리 있어?!

그런데 당황스럽게도 주위에서 엄청나게 쳐다보는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이 마을 주민은 아닌데 옷차림이 관광객 같지도 않으니 완전 이방인이다 이거겠지. 그건 둘째치고 남자분들의 태도가 뭔가 많이 달라져서 진심으로 당황했다. 사진 찍어달라고 부탁하는 것뿐인데 자기가 무슨 마당쇠라도 되는 것같은 태도로....; 화장한 것도 안하고 옷만 바뀌었을 뿐인데, 생떽쥐베리가 지하에서 울겠군.

여튼 내가 느끼기에도 상황에 너무 안 어울리는 복장이었다. 돌아가서 바꿔입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는 도중에, 아까부터 동네를 왔다갔다 하던 빨간 열차가 눈에 밟혔다. 동네 꼬마들이 전부 나와서 기다리는 걸 보니 관광객 유치용은 아닌 모양이네... 그 순간 뒤늦게, 그 기차에 붙어있는 포스터에 [모모]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포스터 중앙에 떡하니 박혀있는 Michael Ende의 글자가 눈 속으로 뛰어들어오면서 벼락처럼 머리를 내리쳤다.

미하엘 엔데!!!

영어로 옆의 학생에게 물어본 결과, 지금 독일 전역에서 10주기를 기념하여 엔데 전시회 및 이벤트를 순회하고 있는데, 예의 이벤트라는 것이 바로 그 빨간 열차였다. 그의 동화 속에 나오는(짐 크노프와 기관사 루카스) 열차가 동네 어린이들(어른도 된다)을 태우고 마을을 한바퀴 도는 것이다. 그게 독일의 각 동네마다 단 하루동안이다.

한데 그게 타이밍 죽이게도, 바로 오늘이 뇌르틀링겐에 그 열차가 오는 날이었던 것이다!!!!
우와아아아아아.... 이것은 드롯셀마이어의 가호가 있었음인가!!!! 팬이라고 자처하는 몇 안되는 작가 중 한 분의 이벤트가 금관마을에서 열리고 있다니!!! 이렇게 되면 나도 이 열차를 안 타줄 수가 없지.
아이들은 나를 괴물 보듯이 했다만...;(입을 헤 벌리고 뒤에서 쳐다보는 그 시선이 사진에 다 찍혀 있었다 쿨럭) 어쨌거나 열차를 타고 동네를 한바퀴 돌면서 뇌르틀링겐도 구경할 수 있었다. 전시회는 내일도 한다고 하니 천천히 봐야겠다. 엔데의 전시회라니!!!! 금관마을에 와 있는 주제에, 잠시지만 츄츄에 대한 생각이 싹 지워졌었다. 으아아 행복해.

뇌르틀링겐은, 타 관광도시들에 비해 잘 꾸며져 있지는 않았다. 관광상품으로 마을 구석의 폐가촌을 내놓을 정도니까 뭐;;; 하지만 완전히 한바퀴를 돌 수 있는 성벽은 정말 매력적이다. 로텐부르크와 비교해도 확실히 성벽이 낡은 티가 난다. 배경에 사용된 건물을 찾느라고 성벽을 두 바퀴 반이나 돌았다. 처음에는 한 바퀴 도는데 시간이 얼마나 드는지 알아보려고, 두 번째는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깔은 다니엘(교회 탑의 애칭)을 찍으려다가. 실패했지만 말이다. 한 번 비잉 도는데 35~40분밖에 안 걸리는 크기인데도 피곤해 죽겠다. 성벽 위에서 내려다보면 곁의 집들이 정말 잘도 보인다. 성벽 가까이의 집들은 감시당하는 기분일지도...;

저녁으로는, 폐점 직전의 빵집에 들어가서 블루베리 파운드케익 한 조각이랑 초콜릿 묻은 쿠키 하나를 골랐다. 그런데 폐가촌을 걸으면서 빵을 먹던 중, 왠 애교만점의 도둑고양이 한 마리를 만나서 꼼짝없이 파운드 케익을 다 뺐겼다. 내가 평소에 좀 동물들에게 왕따라서 애교부리는 녀석을 만나면 저항을 못한다. 아니 이 녀석은 왜 내 다리에다 몸을 비비적대면서 도는 거냐. 나누어 준 거를 다 먹으면 냐옹거리면서 또 돌고. 무슨 탑돌이하는 건 줄 아니?

내일은 본격적으로 찍어야겠다. 그리고 호텔은... 아침식사가 35유로 값을 하는지 두고 보자. 식수를 사올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가게도 문을 닫았고, 결국 수돗물 한 컵 들이키고 참았다. 한끼 굶는 건 예사에 이젠... 어디까지 갈 건지.
아니지, 생각해보면 한국에서도 라면이건 국이건 전부 수돗물에 끓이는 주제에 새삼 무슨 소리야.




by 살아가자 | 2005/09/10 23:36 | 금관마을 여행기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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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Hippopota at 2005/09/11 14:37
...뒤늦은 인사 올립니다.;;
아아... 드디어 꿈의 뇌르틀링겐이군요. 비록 사진이 없다한들 그나마 이게 어딥니까.
(사실 동영상만으로도 추~웅~분히 속 쓰리답니다. 이 부러우신 분! T T)
여하간 곤란한 일도 여러번 겪으신 듯 한데 무사히 돌아오셔서 불행 중 다행입니다.
Commented by 계짱 at 2005/09/11 19:19
후우 사진있었음 좋았을터이지만..ㄱ-; 아 나 방금 뭔가 그 갓슈에 얽힌 일이 생각났는데; 자네가 가지고 있던 카루양의 모동인지(...뭐였는지 기억안나지만 갓슈아님;)를 보고 내가 "아 칼우 동창이야!"해서 어떻게 홈페이지를 알려주게 되다가; 그때 한창 카루 홈피가 갓슈 도배여서(...)자네가 보고선 갓슈에 흥미를 가지...었지 않았나??ㄱ-....버엉... 버엉....아니던가;...기억이 자꾸 섞여서말이쥐..
Commented by 아사히 at 2005/09/11 20:40
그대~ 내가 왔소. 닉네임 저렇게 써놔도 누군지는 알겠지? 후후후. 다름이 아니라 나도 이제 블로그를 하나 차렸거든. 당신 블로그 링크해갔소. 괜찮겠지? (안괜찮나? 쿨럭) 싸이에서 좀 벗어나보려고 일단 주소만 만들어놨소. 앞으로 빠른 연락은 메신저 아님 얼음집으로 하세~
Commented by 살아가자 at 2005/09/12 19:23
하마님 / 속쓰리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 혹시 수상한 바이러스가 묻어 있는 독일 엽서 안 도착했는지요?
곤란한 일이라고 해도 저 정도면 애교일 겁니다 아마도. 잘은 모르지만요...

계짱 / 응 사진 있었으면 정말 좋았을 거야 ㅠㅠ
네 말 듣고 보니... 내가 갓슈를 보기 시작한 계기가 된 게 바로 금지적격이었어;; 한데 그걸 네가 소개해 준 건지, 아니면 내가 어쩌다 굴러들어가서 보다가 너랑 얘기하게 된 건지 앞 뒤 순서가 기억이 안나. 쿨럭;;; 만일 네가 원흉인 걸로 밝혀진다면 각오하셔. -_-+

아사히 / 오신 것을 축하 축하 합니다~
하가렌도 온통 동인바닥이라 너 같은 일반인이 순수하게 작품에 불타기엔 좀 힘들지도 모르겠다 쿨러덕
Commented by Hippopota at 2005/09/13 02:41
물론 도착했지요~~~!! (내색 않으려 했는데 이런...;) 엽서사진을 보자마자 몸에 닿기도 전에 바이러스에 중독되고 말았습니다. 전혀 생각지 않은 일이라 정말 감격했어요. 흑흑
Commented by 살아가자 at 2005/09/13 18:47
그게 말이죠... 엽서가 배달되는 성공률이 생각보다 낮은 것 같습니다 ㅠㅠ 엄청 많이 썼는데...
Commented by laitwave at 2005/09/16 22:43
할머니가 버스역까지 태워다주는 장면이, 지브리 애니처럼 그려지네요.
새삼스럽지만 역시 부럽네요. 그 빨간 열차도 타보고...

10월에 지원받아서 해외로 나갈 기회가 있는데, 조건이 해당국가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을것.
독일어는 다 잊었는데...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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