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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2차 창작의 형태 중 하나로 팬픽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팬픽은, 기존에 있는 어떤 공인된 이야기에 기대어서 존재한다는 점에서 특수성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이야기에 기대지 않는' 팬픽 같은 건 없습니다. 그 요소가 없다면 그건 팬픽이 아니라 그냥 오리지널이겠지요. 시작부터 독자로 하여금 모종의 바탕 지식을 요구하며 시작되는 것이 팬픽이기 때문입니다.
팬픽이 존재하는 이유는 오리지널이 존재하는 이유와 그다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두 경우 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망의 분출이니까요. 하지만 쓰는 이가 요구받는 것과, 읽는 이가 요구하는 것이라는 면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팬픽은 앞서 말한 모종의 특수성을 가지게 되지 않나 싶네요. 기본적으로 팬픽이라는 것은 당연하게도 무상노동(웃음)이며, 대체로 아마츄어의 글입니다. 프로 작가가 팬픽을 쓰는 경우도 있겠지만 어른의 사정이라는 것이 있는 이상 팬픽으로 돈을 벌기는 어려울 테니까요. 대신 팬픽은 자유롭고, 다양하며, 출판시장보다 더욱 제멋대로입니다. 초등학생이라 하더라도 팬픽이라고 뭔가를 써서 올릴 수 있으니까요. ...해리와 몬스터가 출간된 이후 저 주장에 자신이 없어졌지만 일단 그렇다고 해둡시다. 팬픽의 장점은 역시 '새로운 이야기, 듣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의 발산과 창출'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가지 제약 때문에 원작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들도 팬픽에서는 가능해지지요. 생각 폭을 넓히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고, 무엇보다 일종의 한풀이적 성격을 띄기 때문에 저는 팬픽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원작만 둘렀다고 전부 팬픽은 아니고, 팬이라고 해서 모든 팬픽이 재미있는 것도 아니거든요; 팬픽의 수준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입니다. ---에? 수준이라니? 재미있다 재미없다, 잘썼다 못썼다, 혹은 누구네들이 좋아하는 표현대로 문학성이 있다 없다를 어떻게 판별할 수 있을까요? 문장력? 전개능력? 연재속도?(폭소) 혹은 누가 그걸 결정할 수 있는 것일까요? 평론가도, 돈의 논리도 존재하지 않는 곳인데. 조회수가? 독자가? 하지만 그럼에도, 팬픽 별로 재미있다고 느끼는 강도가 다른 이상 분명히 그런 것은 존재합니다. 팬픽을 보고 재미를 느끼는 기준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다른 분들의 경우까진 알 수 없으니까 제 경우를 얘기해 보겠습니다. 저는 무엇을 보든 이야기 중심으로 보는 타입이거든요. 이야기 70% 캐릭터 20% 로망 10% 정도의 비율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지막 항목인 '로망'은 뭐냐 싶은 분들이 계실 듯한데,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어떤 시츄에이션, 혹은 팬들이 원하는 서비스씬을 가리킵니다. 몇년 전부터 유행하는 '특정 작품의 몇십제' 이런 부류를 생각해보시면 더 잘 이해하시지 않을까 싶네요. 거기서 주어진 어떤 단어나 테마로 짤막한 장면을 그려내는 글들이 주로 이쪽으로 가더군요. 기승전결 없이 어떤 로망만 묘사하는. 이것이 팬픽의 특수성 중 하나입니다. 원작에서 이미 '어떤 이야기'를 전부 해버린 이상, 꼭 새로운 이야기를 끌어내지 않더라도 특정 장면만을 망상할 수 있을 만한 키워드를 몇 줄로 묘사해놓고도 사람을 염장 지를 수 있는 거죠. 실제로 많은 단편 팬픽들이 이 '팬의 망상'을 흡수하고 탄생합니다. 문장력이 별로라도, 서술력이 떨어져도, 문법이 엉망이거나 문체가 이상하거나 오자 투성이라도, 그런 것은 그냥 넘어갈 수 있어요. 이건 팬픽이니까요. 팬픽이 가지는 신성불가침의 권리인 '로망'이 그 속에 있으니까요. 근데 제게 있어 팬픽이라는 존재는 그것만으로 부족했습니다. 어차피 팬픽이라는 것은 태생의 특성 상 전개 중엔 팬의 로망씬을 반드시 품게 되어 있거든요. 읽다보면 '쓴 사람이 이 장면 쓰고 싶어서 혼났겠구나' 하는 타이밍이 옵니다. 그런데 그 타이밍이 전개와 잘 맞아 떨어지면 상승효과가 엄청나죠. 제가 '재밌다'라고 느끼는 요소는 그 완급조절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바로, 저를 긴장시켜 주는 이야기이죠. 쓰는 사람 스스로가 빨리 로망씬을 끄집어내고 싶어서 안절부절하다가 억지춘향으로 덥썩 꺼내놓는 것은 망상한 후에 설정의 아이디어만 사고 넘어갔지만, 천천히 이야기를 전개시키면서 클래이맥스로 저를 끌고 올라가는 팬픽들 앞에는 숨을 삼키면서 정신없이 휘말려 들었습니다. 전달 매체야 어떻든, 표현이 서투르거나 말거나 결국 모든 것은 '이야기'인 걸요. 그러한 팬픽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저의 가슴을 두근두근 뛰게 만듭니다. 그것은 '작가'로서가 아니라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일까나요. ...한데 이 팬픽이라는 것이 이야기로서 가지는 특수성은 하나 더 있습니다. 현실에서의 스릴입니다(...). 돈내고 보는 것이 아니다보니 쓰는 사람의 사정에 따라 언제 짤리거나 끊길지 모르는 일이거든요. 거기에 대해서 독자가 어떤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 참 슬픕니다. 지금도 넷상에는 수많은 미완 팬픽들이 끝을 찾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니까요. 그것들을 회상할 때마다 "이런 건 싫어!"라고 외치면서 끝을 잃은 이야기 속으로 난입해버리고 싶을 정도입니다 와하하하. 아니 그거 진짜 아프다구요. 장난이 아니라니까요? 금발의 왕자님이 메두사성으로 뛰어가는 장면에서 [끝]이라는 망발성 글자가 뜨는 것을 목격한 분이라면 제 심장에 새겨진 스크래치의 깊이를 이해하실 겁니다. 처음 저에게 팬픽의 재미를 가르쳐준 슬레계에 상주하던 무렵, 감탄사 외에는 인간의 문장을 만들어낼 줄 모르는 중딩 꼬마라는 이유로 손놓고 있었던 것이 제 평생의 후회거리가 되었습니다. 저의 우상이었던 리나는 후회할 바에는 뭐든 저질러버리라고 가르쳐 주었었는데도 말이죠. 그 때의 뼈저린 경험 덕분에, 지금은 감명받은 2차 창작에 대해서라면 꽤나 성실하게 감상문을 쓰게 되었습니다만 ^^; 돈 안 낸다고 해서 작가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것은 아니라구요. 뭔가를 해도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더 많을지 모르지만, 이젠 적어도 두 손 놓고 앉아서 당하고 싶진 않거든요. 나도 할 때까진 했다고, 후에 미완 팬픽을 뒤적이다 비명지를 자신에게 말해줄 변명거리를 만들어 놓고 싶어요. .....제가 왜 갑자기 이런 서론도 없고 결론도 없는 횡설수설 잡문을 써갈겼는지 눈치채주신 분은 천사입니다. 예, 몇년 만에 낚였습니다. 모처의 장편 연재 팬픽에 O T L 발견 당시에는 감격했지만 지금은 딱 죽을 것만 같습니다. 염장성 전개에 치가 떨려서, 그리고 완결이라는 단어 하나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앞날이 두려워서. 이상, 시험기간에 도피모드가 발동되고 있는 살아가자였습니다. p.s : 탁아 오늘 혜성이의 (가짜) 생일이야. 엄지를 빼돌리고서 기다리고 있으면 제 발로 걸어 들어올테니 분발하거라. 선물 정도는 준비해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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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이글루스에서도 광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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