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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31 작성 ※ 두 작품을 비교한 이유는 하나는 높이고 하나는 깎아내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차이점을 대조함으로서 새로이 발견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공정하게 객관적으로 쓰려고 노력했으나, 천사가 아닌 인간인지라 보시는 분에 따라서는 어쩌면 편애하는 구석이 있다고 느껴지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읽으시는 분들께 부디 양해 부탁드립니다. ※ 재미도 없으면서 길이도 긴 주제에 그림 첨부도 하나 없는 글입니다. 더불어 미리니름도 한가득이니 주의해 주세요. 보시겠습니까? - 보름달이 뜬 하늘로 - [풀문을 찾아서]와 [카레이도 스타]를 비교해볼 맘이 들게 된 계기는 네 가지 정도의 눈에 띄는 공통점 때문이었다. 1. 둘 다 감동적인 결말이라는 평을 듣는다(나카세 미카씨가 각본가로 참여). 2. (예능인이 되고 싶은)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소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3. 전 52화 / 51화로 1년 동안 방영해 길이가 비슷하다. 4. 방영 시기가 비슷하다(풀문을 찾아서가 02년, 카레이도 스타가 03년). 물론 다른 점은 훨씬 더 많다. 기본적으로 [카레이도 스타]는 꿈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풀문을 찾아서]는 러브 스토리이다. 특히나 [카레이도 스타]는 드물다 할 만큼 연애적 요소가 배재되어 있다. 그럼에도 비교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것은, 대조하면 대조할수록 예전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두 작품의 숨겨진 요소가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 전개 구조 - 스토리의 구조를 놓고 보자. 우선 [풀문을 찾아서]의 경우, 보편적인 소재를 사용한 [카레이도 스타]보다는 복잡하다. 단, 획일화의 위험성(최종적으로는 주인공이 죽느냐 사느냐 둘 중의 하나니까)에 따라 시청자가 예상할 수 있는 엔딩의 선택지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다. 미츠키에게 주어진 최종적인 문제는 두 가지이다. 수명과 에이치. 즉, 시청자는 이 작품을 보면서 엔딩의 가능성을 크게 네 갈래로 예상하게 된다. 1. 죽지도 않고 에이치와도 이루어진다. (해피엔딩) 2. 결국 죽지만 에이치와는 이루어진다. (?) 3. 죽지는 않지만 에이치와는 이루어지지 못한다. (?) 4. 에이치와 이루어지지도 못하고 죽는다. (비극) 에이치는 단순한 연인이 아니라 미츠키가 획득해야 할 가장 중요한 목표이다. 따라서 타쿠토를 포함시켜 삼각관계로 발전하거나 미츠키가 막판에 타쿠토를 택하더라도, 어쨌거나 에이치와 만난다 / 못 만난다는 중요하다. 그러나 이건 연애담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명 문제와 달리, 설마하니 에이치와 못 만날 거라고 생각하고 본 시청자는 하나도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기에 어느 순간 갑자기 [에이치]가 소실되면서 이제까지 미츠키 중심이던 전개 구조에 타쿠토와 메로코의 [선택]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된다. [에이치]라는 코드에 집결되어 있던 미츠키의 ‘사랑’과 ‘꿈’이 분산되면서 상황은 180도 달라지고, 그에 따라 타쿠토와 메로코의 결말 역시 엔딩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복잡한(?) 스토리 구조에도 불구하고 전개상의 농밀도는 흔한 이야기라고들 하는 [카레이도 스타]가 더 높다. 감독이 능숙한 덕일까. 51화를 1,2부로 나누어 1부는 꿈의 달성, 2부는 이상의 달성이라는 식으로 분리를 했기 때문에 그만큼 이야기의 집중도가 높았다. [풀문을 찾아서]의 경우, 초반에는 꿈의 달성, 후반에는 사랑의 완성이라는 식으로 얘기를 진행하려 했다(대립항인 마도카-이즈미의 교체시기를 보라). 그러나 에이치라는 코드에 두 가지의 가치가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일까. 1부의 마지막인 26화에서 극적인 카타르시스를 부여하는 [카레이도 스타]와 달리, [풀문을 찾아서]는 그러한 ‘사건의 완결’이라는 중간지점이 도중에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이 작품은 스토리상으로 봤을 때 [카레이도 스타]와 같은 1부의 자체 완결성 부여가 애시당초 불가능하다. 에이치만이 아니라 수명의 문제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1년이라는 세월을 지켜보는 시청자로 하여금 좀처럼 갈등이 고조되지 않고 지지부진하다는 느낌을 주기 쉬운 것도 사실이다. 중간 달성 목표가 있었으면 좀 나았을까? 괜히 게임에 중간 보스와 라스트 보스가 있는 게 아니듯이 말이다. 그러려는 의도는 보인다. 딱 중간부분인 27화에서 마도카에게 샴푸모델 건을 리벤지하며 이터널 스노우 싱글을 당당히 발매하는 풀문의 에피소드는 풀문을 적대시하던 마도카의 탈락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마도카가 1부 동안 그럴 만한 - 중간 보스를 해치우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만한 - 활약을 보여주었는가 하면 대답은 No다. 1화에 잠깐 나왔다가 16화에서 재등장하는 식으로 지속적인 등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카레이도 스타]에서 작 중 내내 엄청난 존재감을 자랑하는 레이라 선배와 소라의 공연이 그토록 사람을 고조시키는 이유가 뭐겠는가. 하지만 뭐 말은 이렇게 해도, 두 작품 다 4쿨의 길이로서는 기본 이상의 호흡조절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 위기 속의 비젼 - 미츠키도 소라도, 처음에는 그저 자신들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이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그보다 더 높은 [이상], [비젼]을 품은 모습으로 변화된다(미츠키는 27화에서, 소라는 41화에서 이상을 발견한다). 사적인 꿈 : 유명한 가수가 되어 에이치를 찾고 싶다 (미츠키) 카레이도 스타가 되고 싶다 (소라) 궁극적인 이상 : 듣는 사람의 마음을 따스하게 하는 노래를 부르고 싶다 (미츠키) 분쟁 없는 무대 위의 진정한 스타가 되고 싶다 (소라) 그리고 두 사람 다 목표의 상실을 겪는다. 미츠키는 에이치의 죽음과 맞닥뜨린다. 소라는 서커스 무대에 환멸을 느낀다. 좌절의 순간, 미츠키는 폐인이 되었고 소라는 집으로 도망쳤다. 이 반응의 차이는 두 사람이 짊어진 리스크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풀문을 찾아서]의 회심의 한 방이랄까. 앞에서 지적했듯이 [카레이도 스타]의 이야기 구조에 비해 약점이 되어 왔던 ‘에이치&수명’이라는 코드를 종합해 그야말로 전개상의 폭탄을 던지는 것이다. 특히나 ‘죽음’이라는 코드는 문자 그대로 막다른 골목에 몰린 미츠키의 위기에 묵직한 무게를 더해준다(제작진들, 이 날을 벼르고 별러왔겠지...). 이 위기상황의 구성 또한 두 작품의 재미있는 차이를 보여준다. [풀문을 찾아서]의 경우, 어째서 위기인지를 설명하려면 딱 한마디면 충분하다. ‘에이치가 죽었다.’ [풀문을 찾아서]는 이 한 방을 극대화하기 위해 장장 9개월 동안, 41화 동안 내내 미츠키가 에이치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따로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간단히 기운을 회복할 수 있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 뒤의 상황은 정말 죽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어두컴컴했다. 반면 [카레이도 스타]의 경우, 1부에서 일단 갈등을 일단락 지었기 때문에 2부가 시작하는 29화서부터 좌절하는 39화까지 겨우 11화 동안 가혹하리만큼 주인공을 몰아붙인다(보는 동안 어찌나 짜증이 나던지 선물받은 거만 아니었으면 진작에 때려쳤다). 목표였던 레이라 선배가 사라진 뒤 지지부진하던 소라는 메이라는 라이벌에게 스테이지의 주역도 빼앗기고 세계 서커스 경연대회 선발권도 빼앗기는 처지가 된다. 그러나 유리와 대회에 나가게 되어, 전화위복으로 2연패의 리벤지인가 했더니마는 오히려 더러운 서커스 무대에 환멸을 느끼고 3연패했다. 이쯤 되면 제 아무리 소라라도 집으로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 나지 않겠는가. 자신의 꿈이었던 서커스 무대의 실체를 알게 된 것이 결정적이다. 미츠키와 마찬가지로 목표를 잃어버린 것이다. 여기서 두 사람의 운명은 크게 고개를 튼다. 소라는 꿈에 좌절한 대신 더 높은 꿈 - 이상을 향해 날개짓한다. 분쟁 없는 무대, 모두가 한 마음이 되는 무대라는 궁극적인 비젼이 여기서 제시된다. 미츠키는 이제까지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고 있었던 자신의 운명, 죽음이라는 운명에 대해서 맞설 다짐을 한다. 그리고 이제 어느 쪽이랄 것도 없이 두 사람은 각자의 미래를 향해, 감동적인 엔딩을 향해 휘몰아치듯이 달려나가는 것이다. - 천사의 메시지 - 애초에 이 두 작품을 비교해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감동적’이라는 사람들의 평가 때문이었다. 무엇이 그리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둘 다 4쿨이라는 똑같은 기회를 받은 만큼 분명 뭔가 전개상의 공통점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답은 엉뚱한 곳에서 나왔다. 엔딩만 놓고 보았을 때, 두 작품은 이런 차이를 가진다. 풀문을 찾아서 : 친구들의 사랑으로 죽을 운명에서 구원받는 미츠키 (개인의 삶 구원) 카레이도 스타 : 친구들과 함께 분쟁 없는 무대를 성공시키는 소라 (이상의 실현) 일단 두 엔딩은 사적인 이야기 / 공적인 이야기라는 점이 다르다. 사적인 이야기라고 해서 가치나 감동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더 배가될 수도 있다(공적인 이상의 실현이 더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그보다는 두 작품이 추구하는 이상의 본질을 봐야 한다. 진정한 사랑을 보여준 메로코가 천사가 되고, 천사의 기예를 하는 소라가 증오도 껴안는 사랑을 목표로 하는 것은 시사점이 크다. [풀문을 찾아서]와 [카레이도 스타]는, 오는 길은 달랐지만 궁극적으로 아가페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아가페라는 개념은 소위 말하는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운운할 때 얘기되는 그 사랑을 뜻한다. 우리는 모두 현실 속의 사랑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랑은 탐욕스럽고, 파괴적이며, 때로는 죄악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또한 사랑만이 사람을 죽음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으며,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만들 수 있다. 그런 것이 여기서 얘기되는 ‘진정한 사랑’- 아가페이다. 두 작품에서 얘기하는 아가페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사랑’ 이야기였던 [풀문을 찾아서]에서는 ‘죽음에서 구원하는 아가페’로 나타나는데 반해, ‘꿈’ 이야기였던 [카레이도 스타]에서는 ‘아가페라는 이상의 실현’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것은 극 중에서 메로코와 레이라의 입으로 얘기되기도 한다. 가장 중요한 점은 ‘어떻게 아가페라는 결론에 도달했는지’이다. 극의 흐름을 보면 간단히 찾아낼 수 있기는 하다. 메로코는 타쿠토의 희생을 보고, 미츠키의 용서를 받고 성장해서 미츠키를 구하려고 애쓰다가 급기야는 천사로 선택받는다. 그리고 소라는 자신의 꿈인 분쟁 없는 무대를 올리기 위해서는, 그리고 누구에게도 미움받지 않는 진정한 스타가 되기 위해서는 아가페의 이상을 실현하는 천사의 기예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피나는 노력 끝에 성공한다. 독특한 것은, [풀문을 찾아서]에서는 주인공이 구원하는 주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그동안 다른 캐릭터들을 정신적으로 압도하고 있었던 것은 미츠키다. 그러나 죽음의 문제 앞에, 미츠키는 절대적으로 타쿠토와 메로코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 처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 부름에 응답해, 주인공인 미츠키는 구원을 ‘받는다’. 행동의 주체가 미츠키에서 메로코로 바뀌어버려 전체적 구성으로 보면 막판이 좀 어색할지도 모르겠지만, 감동은 이쪽이 더 크다. 주인공과 구원자가 일치되지 않는 편이 더 여운이 남는다고 본다. 왜인지는 뒤에 가서 설명하겠다. 나는 소라의 이야기보다 메로코의 이야기가 극적이라고 생각한다. 절대자가 나타나서 한방에 다 처리해주기 때문이 아니다. 메로코는 ‘변했기’ 때문이다. [타이의 대모험]의 진정한 주인공은 타이가 아니라 포프인 것과 마찬가지다. 소라나 미츠키나 이야기 시작할 때에 비해서 엄청나게 성장한 것은 맞지만, 내 생각엔 근본적으로 ‘변했다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그 두 사람은 원래 기본이 그랬으니까. 둘 다 아무리 험한 꼴을 당해도 화낼 줄도 모르고, 라이벌이 고의적인 방해를 해도 웃으면서 넘어가고, 누구 표현따나 오지랖 넓게 남의 일에 다 참견하고 해결사 노릇을 하며 다녔다. 솔직히 말해 동감하기 어려웠다. 그 한결같은 마음은 인정해주겠지만, 지나치게 ‘착한 주인공’이었다. 천성적으로 다툼을 싫어하는 평화주의자가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입하기에는 걸렸다. 적어도 메로코에 비해서는 말이다. 소라가 실현해낸 분쟁 없는 무대를 보았을 때, 그제서야 소라라는 캐릭터의 필연성을 납득할 수 있었다. 보고 있기 무서울 정도로 노력하는 기특한 모습에 절로 정이 붙지만, 지나치게 사람좋은 모습에 짜증이 나서 이래저래 순수히 좋아할 수 없었던 소라. 하지만 그래서 ‘천사의 마음’을 모으기 위해서는 소라가 아니면 안 되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쳐드는 의문이 있다. 맨날 백점만 맞던 우등생이 도무지 되지를 않는 꼴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타고난 천재 기다지마 마야가 죽어라 노력해야만 같은 레벨에 도달하는 히메가와 아유미의 터지는 속을 이해할 수 있을까? 사람을 증오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증오마저 끌어안는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삐뚤어진 걸지도 모르지만 그런 생각이 든다. 쉽게 말해, 그게 노력한다고 되는 문제냐? 라는 것. 누구나 인류평화를 기원할 수는 있다. 하지만 누군가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기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 과정에 사심이 없다면 더더욱 그렇다. 지금 소라가 보여주는 ‘천사의 기예’는 티없는 순수함 그 자체의 매혹이다. 소라는 앞으로 사랑을 하고, 자신의 어둠에 상처를 입고, 다시 태어나 진정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무대를 올리게 되겠지. 그거야말로 진정한 스타의 ‘상처투성이의 멋진 부활’이 될 것이다. 메로코가 희생을 했기 때문에 감동적인 게 아니다. 그 입장이었다면 타쿠토도, 미츠키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는 것을 우리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천사가 된 것은 메로코 하나뿐이다. 그녀의 선택에는 에로스와 질투심의 극복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메로코가,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애쓰지만 악랄한 건 아니고 평범한 인간의 도리는 지키는 선에서 이기적으로 굴던 메로코가 타쿠토와 미츠키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그로 인해 구원이 이루어졌다는 것이 엔딩이 주는 감동의 핵심이다. 선의를 배신으로 갚았던 장발장이 미리엘 주교의 용서를 받고 재탄생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않으면 헌신적으로 타인을 사랑할 수 없다. 자기가 남들보다 잘났거나, 혹은 남들만큼은 한다고 생각하는 동안은 희생할 수도 없다. [프린세스 츄츄]에서 아히루가 자신을 공격하는 까마귀 떼 앞에서 그토록 한결같이 춤을 출 수 있었던 것은 자기 힘으로는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펜던트를 돌려주는 걸 두려워하던 자신처럼, 모두들 자기와 똑같이 두려워하는 나약한 인간임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구원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 감동적인 엔딩 - 해피엔딩은 감동의 카타르시스를, 새드엔딩은 비애의 카타르시스를. 요는 강렬한 인상을 남겨서 사람의 마음을 동요시키는 것이지만 이게 기본이다. 하지만 어느 쪽도 온전히 이루어내기가 어렵다. 특히 해피엔딩은 더욱 그렇다. 모든 것이 다 잘된 해피엔딩은 잊혀져가는 속도도 빠르다. 왜냐하면, 어떠한 ‘바람’, ‘소망’, ‘아쉬움’이 사람들 가슴 속에 남겨져 있어야 기억 속에 오래도록 자리잡기 때문이다. 다들 잘 먹고 잘 살았다는데 뭐 더 바랠 게 있고 아쉬움이 있으며, 그 뒤에 어찌됐는지 궁금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뭔가, 더 빛나는 순간을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남겨지는 편이 좋다. 아쉬움은 뒤집어 말하면 [희망]이다. 그래서 [완벽한 상황]을 갖춘 해피엔딩은 오히려 저하되기 쉽다. 이제부터 해야 하는 일은 이 완벽한 상황을 [유지]하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뭔가 위를 바라보게 하는 목표가 있을 때 가장 기운이 넘치고 희망에 충만하다. ‘이상’은 유보되었으나 ‘개인’은 구원받은 [소녀혁명 우테나]의 경우, 어째서 ‘언젠가’ 함께 빛나줘 라고 맹세하는 것인가. 어째서 ‘지금 이 순간’ 빛나지 않는 것인가. 왜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에서 끝나지 않는가... 라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시청자들은 그들이 언젠가 반드시 만날 것이라고 믿으며, 미래로 이어지는 기다림으로 작품에 대한 인상을 가슴에 남길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엔딩이 주는 판도라의 마지막 선물인 희망이다. 혹은 뭔가를 잃기도 한다. 희생된 것이 있을 때, 해피엔딩의 가치는 배가된다. 공짜로 얻은 것이 아니라, 어떤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는 인상은 그만큼 모두가 얻은 행복의 무게를 알려준다. [프린세스 츄츄]의 엔딩이 짠한 것은, 그들이 원하던 이상을 성취했음에도 잃은 것이 너무도 컸기 때문 - 아히루 - 이다. 그럼 이건 ‘이상’을 위해 ‘개인’을 희생한 것인가 하면, 전혀 그런 게 아니라는 점이 츄츄가 대단한 이유이지만...(츄츄의 스토리는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모든 것이 ‘그렇기도 하고’ ‘안 그렇기도 하다’.) 그래서 해피엔딩은 어렵다. 가볍게 얻어낸 인상을 주는 행복한 결말은 힘든 등가교환의 세상을 사는 시청자들에게 어필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반발을 사기도 한다. 현실적인 척하지만 실은 비관적일 뿐인 작품들이 냉큼 비극적인 결말로 가는 길을 택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해피엔딩보다는 녹록하다는 거겠지. 주인공이 처한 최악의 상황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안정’의 쾌락을 맛보게 한다. 상대적으로 행운아인 자신을 돌아본 뒤, ‘난 저 정도까지는 아니야’라고 안심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잘 만든 해피엔딩은 이야기의 꽃이다. 사람을 감사하게 만드는 힘은 해피엔딩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비극을 보고 ‘저런 처지가 아니라 다행이야’라는 식의 안도하는 감사와는 다르다. 타인의 행복을 보고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는 감각을 부여하는 것은 희망적인 해피엔딩이다. 그래서 나는 [카레이도 스타]의 엔딩이 조금 아쉽다.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끝맺음인 것만은 틀림없다. 이 엄청난 해피엔딩을 납득시키기 위해 소라는 보는 사람이 차마 눈을 돌릴 만큼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해야 했다(희생은 없었지만 그만큼 몸으로 때웠다. 장하다 소라). 많은 애니들이 빠지는 함정인, ‘마지막회보다 마지막 직전 에피소드가 더 인상적이다’라는 점도 훌륭히 넘어섰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기대를 고조시키다가 최종화에서야 축적한 카타르시스를 한꺼번에 풀어놓는 실력은 대단했다. 그런데 상황이 너무 완벽해서 그 이상이 이미지되지 않는다고 말하면 욕심이 너무 많은 것일까? [풀문을 찾아서]의 엔딩은 주인공을 중심으로 봤을 때 [삶은 획득, 사랑은 재시작, 꿈은 유보]의 상태에서 끝났고, 이를 위해서 캐릭터들은 서로의 관계성을 대가로 바쳐야 했다. 하지만 그래서 여운이 남는 것이고, 이 순간이 가장 좋은 엔딩이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이루어질 풀문의 복귀 콘서트는 시청자들이 각자 이미지하면 된다. 그래서 주인공 = 구원자가 되지 않는 형태가 낫다는 얘기다. 메로코만 놓고 보면, 그녀는 천사가 되었다. 다시 말해, ‘이 이상’이 없다. 하지만 미츠키에게는 아직도 새털같이 많은 날들이 있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주인공은 희망의 존재가 된다. 이럴 때면 세상이, 아니 내가 얼마나 사랑과 감동에 목말라하고 있는지 느끼곤 한다. 그렇기에 시간이 흐르고 유행이 지나고 시대가 바뀌어도 소녀들의 꿈과 사랑은 유효하다. 언젠가 천사가 될 그날까지 소녀들은 구르고 달리고 울고 웃는다. 천사의 마음으로 당신을 사랑하고 구원하기 위해서. 날개는 꿈, 그리고 하늘로. This is a song for you... 출처 : 만화인 & 앙끄웹 '사람을 증오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증오마저 끌어안는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이 부분에 절대 올인입니다. 개인적으로 소라를 우습게(실례) 여기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유리도 카로스도 레온도 원망하여 부딪쳐본 적 없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악마가 될 각오도 없이 그저 이기적으로 자신의 꿈을 위해 자신을 소비하기만 했던 소라이니만큼 '싸움없이 모두가 사이좋은' 스테이지라는 철없는 망상을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자네, 사토 감독님이라는 멋진 감독님이 아니었으면 광년이 되어 쫄딱 망할 신세야. -ㅅ-
역시 소라 자체가 거의 꿈같은 캐릭터기 때문에 절대 감정이입할 수 없었죠. 레이라 누님과 어설픈 악당 유리가 없었으면 끝까지 볼 엄두가 안 났을 겁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소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토 감독님의 핵심적인 문제도 살짝 드러난다고 봅니다. 이 분, 너무 부딪치는 걸 무서워해요. 아직까지도 애니메이션에 이 정도로 꿈과 희망의 코드를 구원삼아 매달리는 한결같은 감독이 존재한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포스트 에바 이후로 감독이나 연출은 주로 꿈과 희망 부정파로 싹 물갈이가 되었다고 봅니다.) 그래도 사랑하니까 괜찮아요, 우리의 안선생님 사토 감독님. ㅠㅅㅠ 진부한 꿈과 희망을 당신만큼 감동적으로 표현해줄 수 있는 사람은 보물이나 마찬가지니까요.
길어진 댓글 죄송합니다. 칼레이도 스타 얘기만 나오면 답답해져서 하소연하고 싶어지니 말입니다. 달빛천사도 꼭 보고 싶습니다. 올해 내로 한번 스타트를 해볼까 하고 있답니다. 보게 되면 많은 코치 부탁드립니다 :D 3줄 요약.... 사이암님 / 동감입니다. 저도 레이라 선배와 찌질이 유리 덕분에 봤어요(살로메 최고). 사이암님의 평과 제 감상이 무진장 일치한다고 전에 말씀드렸었죠. 저 글에서 정말로 편애하고 있는 건 과연 어느 쪽일까요.....(먼산)
달빛천사는... 흑흑흑 그거야말로 과연 통할 수 있을지 걱정됩니다 ;ㅁ; 혹시 안 좋은 평을 하신다 해도 저는 전혀 상관없으니 솔직하게 쏘아주시어요. 뭐라 하실지 궁금하니까요. 슈퍼히로님 / 의미불명 아닙니까. :P 둘다 제가 재밌게 본 애니메이션이네요; 한번 비교해보니 꽤 재밌습니다~ 허허;
으음.... 소라의 이상은 제가 생각하기에는 절대 인간 영역이 아닙니다; 인간은 그렇게 순수하지가 않다구;; ... 그렇기때문에 소라는 존경스럽습니다..[퍽퍽!!;] 레이라씨 최고입니다! 검은고양이님 / 레이라 선배가 최고지요 >ㅁ<b
개인적으로 씨도, 언니도, 누님(...)도 뭔가 제 안의 레이라 이미지와 맞지 않는 듯해서 결국 호칭은 선배로 결정. 음.. 카레이도가 분쟁없는 무대를 만드는 것이었던가; 내가 자막을 안깔고 봐서;; 개인적으로는 삼위일체, 관객과 연기자와 스텝이 모두 하나가 되는 그런 무대를 만들자!<-이걸로 생각을해서..ㄱ-;;; 아하하하 ㅠㅠ 개인적인 이상으로 시청자와 스텝과 연기자가 하나가 될 수 있게 만드는 성우가 되고싶은게 꿈이다만.. 모두 함께 울고 웃고... 난 그런면에서 생각을 해서 카레이도 스타를보면 항상 분발하고 내가 이루고 싶던 꿈에 대해 또 생각하게 되서 매우 좋아함.. 물론 소라라는 캐릭터는 이해가 되다 말아도 말이지(...) 이 글을 보니 얼른 '풀문을 찾아서'가 보고 싶어졌어. 카레이도 스타는 아직 보기 위해서는 조금의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지만... (아직도 원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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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개구리 at 08/28 살아가자님 안녕하세요? 츄츄를 .. by 까망오리 at 08/10 저... 늘 눈팅만 했었는데 하도 .. by stonebe at 07/08 감사합니다 ^^ 음.... 우테나.. by 청룡하안사녀 at 06/30 살아가자님 언제나 열정적인 모습.. by 청룡하안사녀 at 06/26 안녕하세요 책 잘 받았어요 저는 .. by clay at 06/26 네이버 블로그로 담아가겠습니다... by 이세린 at 06/20 살아가자님 이제 유명인 되셨군.. by 휘연 at 06/17 ...울어라 팬... ㅠㅠ!!! 2 by 아리샤인 at 06/16 ...울어라 팬... ㅠㅠ!!! by 계짱 at 06/16 최근 등록된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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