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낙원 ~ 27화, 소중한 누군가를 위하여 시작되는 비극

「Lost Paradise」

Aphros presents

2005년 6월 12일
일본 츄츄 5회 온리전 <꽃의 왈츠> 출전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책도 카피북입니다. 하지만 카피북이라고는 해도 옵션이 엄청납니다;;; 겉은 붉은 종이와 테이프로 테두리하고 내부에는 컬러 일러스트까지 첨부되어 있어요.

실은 이 컬러 일러스트를 보는 순간 삘이 팍 왔습니다. 바로 우테나의 복장을 한 아히루와 안시 복장의 루우, 그리고 발치에 벌러덩 드러누워 있는 왕자님 차림의 두 남정네 그림이었거든요! 츄츄와 우테나의 크로스오버라니 좋은 사람이구나!!!!! 하면서 바로 넘어가버렸습니다. 이제까지 소개했던 츄츄북들에 비해서 그림이 좀 서툰 감은 있습니다만, 그걸 커버할 만한 감성이 돋보입니다.

펼치면 맨 먼저 나오는 원고는 무려 마리미떼 프롤로그 크로스 패러디입니다. 아히루의 흐트러진 타이를 고쳐매주는 화키아 선배(女)를 볼 수 있지요. 게다가 끝맺음 원고는 프리큐어와의 크로스 패러디이고 본관은 온통 세일러문으로 가득차 있는 등 미소녀 애니를 주로 소재로 삼으시는 듯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책의 본편 원고인 [27화]가 무척 강했습니다.

[27화]의 첫번째 원고인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26화로부터 몇년이 지난 어느 추운 겨울밤에 화키아에게 일어난 일을 이야기합니다. 병에 걸려 수명을 다해가는 아히루, 그걸 바라볼 수밖에 없는 화키아. 그러다 어느 순간 정말로 오리의 맥이 사라진 것을 깨달은 화키아는 절규하고, 오리를 안은 채 눈물을 흘리면서 펜을 손에 꽉 쥡니다. "내게 아직도 그 힘이 남아있을까..." 그의 뒤에 비치는 것은 드롯셀마이어의 그림자.

몇페이지밖에 안되지만, 대체로 아예 패러렐로 가거나 발랄한 러브러브 혹은 아련함으로 끝을 내던 일본의 츄츄북들과는 무척이나 대조되는 방향이어서 충격이었습니다. 어쩐지 일본보다는 한국 쪽에서 자주 나왔던 망상과 결합되는 듯한 면이 있기도 했고요. 하르모니엄처럼 오리와 화키아인 상태로 러브러브 해피엔딩 모드 이야기를 만들 수도 있지만, 이런 식으로 바라보면 암울하기 짝이 없으니까....

두번째 이야기 [라 트라비아타]는 앞서 말한 사건과 같은 날 밤 다른 곳에서 벌어진 일을 그리고 있습니다. 동화나라의 궁전에서 뮤토와 행복하게 살고 있는 루우. 하지만 그날 밤, 어두운 방에서 루우는 홀로 아히루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립니다. 분명히 그건 해피엔딩이었는데, 뭐가 모자란 걸까. 어째서 함께 있을 수 없는 걸까. 아히루, 넌 정말 그걸로 괜찮았던 거니? 하지만 어쩔 수가 없어. 나는 동화 속 인물. 너는 오리.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하지만 다음 순간, 루우의 시야에 뭔가가 떠오릅니다. 길게 잘라진 컷들 사이사이로 비치는, 창문으로 뛰어들어와 당당히 선 까마귀 공주의 모습이. '이게 아니야' '그래' '난 프린세스 클레르' '원하는 것은 힘으로 손에 넣으면 돼' 그리고 스윽 돌아보며 가늘게 웃는 루우의 눈이 독자를 정면으로 응시합니다. "그렇죠? 드롯셀마이어....."


짤막한 원고들이지만, '누구보다 소중한 아히루를 위해서'라는 행동지령에 따라 움직이는 두 사람의 행동이 새로이 시작되는 비극을 암시하도록 그려냈기에 정말 오싹했습니다. 덜덜덜덜;;; 정말 동인지라는 건 몇 장만으로 팬을 죽었다 살렸다 할 수 있어서 무서운 것 같아요.
우테나와의 더블 패러디도 그리셨으면 물건이 나왔을 것 같은데 아쉽네요.


이글루스 가든 - 한국오리펫치연합
by 살아가자 | 2005/11/17 21:58 | 네버 엔딩 스토리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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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Meister at 2005/11/17 22:32
저는 요즘 츄츄를 다시 봤는데, 저 26화가 원한도 여한도 없이 해피엔딩으로 보여 어쩔 수 없었습니다.(..인간적으로 너무한게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들어서 무지 곤란했음.)
tv때야 내용 쫓아가느라 기진맥진해서 25화에서 이미 성불해버려서 그랬다 치지만, 지금은 대체 왜. 그렇다고 제 머릿속의 미래예상도가 하르모니엄틱하게 잘먹고 잘사슈 급으로 해피엔딩인건 절대 아닌데 말입니다. (아히루는 머릿속까지 오리. 화키아는 학교 때려치고 은둔.) ..아, 아오토아가 같이 기억해주고 있을거라고 생각해선가.; 혼자 땅파는 거보다 옆에서 같이 추억해줄 사람이 있으면 아픈 과거도 추억으로 미화되는 법.
...머릿 속이 진짜로 드롯셀마이어 과여서일지도.
Commented by 사이암 at 2005/11/18 05:23
와, 원고 내용들이 사람 잡네요. 치가 떨리게 무섭습니다. orz
Commented by 살아가자 at 2005/11/18 14:58
Meister님 / 그렇지요? ^^; 저도 의의적으로는 납득하지만, 제가 아히루에게 너무한 것 아닌가 싶어서 괴로워지더라구요. 사실 이렇게까지 땅팔 이유는 없다는걸 알고 있긴 한데, 그래도 자꾸 미련이 남아버려서 스스로도 어쩔 수가 없어요. 누가 저 좀 구해주세요 orz

사이암님 / 다음에 보여드릴게요 ;ㅁ; <-....
Commented by 미애 at 2006/10/10 16:47
하아아아- 정말이지 왜 지금에서야 이쪽을 알게 된 건지...
정말 보고 싶어요 ;ㅂ;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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