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이놈의 정체가 뭔지....
요새(라고는 해도 꽤 됐습니다만) 카툰 네트워크를 틀어놓고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저녁 때 틀어놓으면 재미있는 것들이 줄줄이 나오거든요 ^^; 가장 먼저 빠졌던 파워퍼프걸, 사무라이 잭, 덱스터의 실험실, 배트맨, 저스티스 리그, 틴 타이탄즈, 엑스맨 에볼루션까지(웃음). 적어놓고 보니 언제 이렇게 많이 보게 된 건지...; 미국 애니들 특유의 까대는 대사들을 듣고 있자면 그 옛날 슈퍼소년 마이티맥스에 열광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강수진님의 목소리로 마구 쏟아지던 아메리칸 조크에 완전히 반했었는데.
틴 타이탄즈를 보면서 느낀 겁니다만, 액션 애니답게 유려한 동화라든가 호쾌한 액션 등등이야 언제나 좋지만서도... 개그 연출이나 캐릭터 표현의 테이스트를 볼 때 예전 애니들에 비해서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게 눈에 들어왔었는데요. 다른 의미로 더 엄청난 놈이 있었습니다.

[Megas XLR]
....이라고 하는 작품인데요. 게이머 주인공인 쿱이 쓰레기장에서 버려진 거대로봇을 개조해서 타고 다니며 뉴저지를 악당으로부터 지켜낸다는 내용입니다. 그렇다고 무슨 정의의 용사 노릇을 하자는 게 아니고, 악당들이 뉴저지를 부수면 게임도 못하고 햄버거도 못 먹으니까.(이런 폐인 녀석입니다) 이런걸로 차별하면 안되는 건 알지만 주인공이 너무 비만인 데다 얄짤없는 미국계열 폐인으로 보여서 ^^; 관심이 없었던 애니예요.
한데 얼마전에 카툰 네트워크를 틀다가 뜬금없이 독수리 오형제의 미국식 디자인 버젼(.............)이 나오는 걸 발견하고, 너무 황당해서 채널고정했습니다. 알고 보니 Megas XLR의 에피소드 중 하나였어요. 독수리 오형제 얘네들이 남박사님(.....)의 명령을 받고 뉴저지로 와서 쿱이 조종하는 로봇을 '악'으로 규정, 그가 끼쳐대는 민폐를 저지하려 합니다. 별의별 개폼을 다 잡아가면서 정의의 용사들이 날릴 긴 대사를 다섯명이 돌아가면서 외쳐대고, 그러면서 지네들이 거리를 다 부숴대죠 -_- 쿱이 난 아무짓도 안했다고 아무리 주장해도 변명무용. (게다가 솔직히 아무짓도 안한게 맞아?!)
마지막엔 진짜 악당이 나타나서 독수리 오형제의 합체로봇이(볼트론+전대물) 박살나고, 그걸 다섯 조각 낸 쿱이 자기 로봇의 팔다리에 억지로 구겨넣고서 파워업(-0-;;;;;)을 한 후 다 깨부숩니다.
그때만 해도 그냥 넘겼는데 오늘은 캡틴 하록이 나와서는 온갖 느끼함을 발산하며 쿱의 여자동료를 꼬시려 들더군요?;;;; 이봐 이 애니 도대체 정체가 뭐야....

많이 본 건 아니고 저렇게 단 두 에피소드 보았습니다만, 그 안에서 '일본 애니 바보 만들기'라는 공통적인 흐름을 발견했기 때문에 한번 인상을 정리해봤습니다. 독수리 오형제나 캡틴 하록 같은 유서깊은 캐릭터들을 바보나 호색한으로 등장시키는 것만이 아니었거든요. 일본애니에서 흔히 쓰는 연출, 그러니까 독수리 오형제 같은 경우 화면을 5분할해서 전 캐릭터의 얼굴을 동시에 보여주는 연출법이나 눈빛이 찡하고 빛난다든가 놀랄 일이 생겼을 때 캐릭터들이 "헉!!!"하는 화면을 시간차로 번갈아 때려가며 돌린다든가 -_-;; 하는 것들을 개그로 패러디하고 있었습니다. 쉽게 얘기해서 웃음거리로 삼는 거예요. 쿱과 친구 제이미는 그렇게 오버하는 일본만화 캐릭터들을 보면서 쟤네들이 뭘 잘못 먹었나? 왜 저렇게 포즈를 가지각색으로 취하지? 하면서 의아해 하고요.
캡틴 하록의 얼굴이 클로즈업 될 때마다 어디선가 뜬금없이 바람이 휘잉휘잉 불어오면서 머리카락이 흔들리는 연출이 그렇게 웃길 수가 없었습니다 파하하하. 일본 애니에서 정말 저런 연출 많이 나오죠 ^^;;;;

캐릭터만 따온 게 아니라 일본 애니의 고전적인 연출까지도 개그로 패러디해 버리는 이 애니의 배짱에 꽤나 끌렸습니다. 하지만 뭐랄까, 그 작품 안에서 - 이미 미국 시장에 깊이 침투하며 자기네식 연출법까지 시청자들에게 각인시켜 버리고 만 일본 애니를 향한 질투심과 우월-열등의식 같은 것도 좀 느껴버렸다면 제가 오버한 걸까요? 아니라면 그렇게 매번 바보로 만들 것까지야....; 저도 일본 애니를 꽤나 많이 본 편이라 그들의 화면연출 패러디를 발견할 때마다 "맞아!!!" 하고 데굴데굴 구르면서 웃어버렸지만, 한편으로는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남았거든요. 마치 자기네 홈 그라운드로 끌어들여놓고 동물원 원숭이 취급하며 웃는... 그런 느낌이랄까.
하긴 유리가면의 처절한 연출이나 북두신권의 장렬한 연출들도, 그것만 따다놓고 보면 개그로밖에 안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말입니다 ^^;

* 여담이지만 카툰 네트워크 보다 보면 참을성과 인내심, 그리고 애국심이 길러집니다. 광고 즐!!!!
by 살아가자 | 2006/02/07 22:16 | 애니메이션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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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마스터 at 2006/02/07 22:36
한번 보고 싶어지는데요..^^; 보통 그런 종류는 만드는 쪽과 보는 쪽 모두 재료가 되는 화법을 즐길 수 있다는 걸 전제로 하니 겉으로는 웃음거리로 삼아도 속은 오마쥬에 가까운 게 많은 듯 한데 말이죠.. 그게 아니라니..
Commented at 2006/02/07 22:4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살아가자 at 2006/02/07 22:42
처음에는 말씀하신 그런 건가 싶었는데, 오늘 캡틴 하록 방영분을 보고 그런게 아니라고 느껴버렸어요.
하록 팬이라면 화를 냈을지도 모를 상황이라... 그냥 단순한 3류 호색한 악당으로 등장했습니다 orz
Commented by 살아가자 at 2006/02/07 22:43
비공개 / 어째서 비공개로 한거야?;;;;
지네들도 그런거 비웃잖아. 파워퍼프걸의 슈퍼영웅 모임대회 에피소드를 보아라(...)
일본쪽도 만만찮지. 도쿄가 무너지면 지구멸망이라느니 어쩌느니.
역시 남은 길은 태권브이 출동뿐인 거냐....
Commented by 식인참새 at 2006/02/08 01:14
Megas XLR.. 얼핏 봤을 때 주요 등장인물들이 너무나도 조역스러워서 당황했었는데 저런 내용을 담고 있었군요...oTL 나중에 꼭 한 번 제대로 봐야 겠군요;
Commented by Starless at 2006/02/08 23:18
아 이거 가끔 나오면 재미있게 보고있음. 생각해보면 사무라이 잭에도 수퍼로봇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있지. 시즌3 DVD는 언제 내놓는 것이냐 카툰네트워크!!
Commented by 살아가자 at 2006/02/15 23:12
식인참새님 / 정말! 정말 조역스럽지요 orz
제대로까지는 아니라도 한번 볼만은 합니다.

Starless님 / 사무라이 잭에.... 로봇 등장은 봤지만 슈퍼로봇도 나옵니까?;;; 그거 보고 싶네요.
Commented by 시바우치 at 2006/02/16 03:13
미국의 저런 식의 패러디(팬 혹은 오피셜 작품에 의한)를 보며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싶었는데 바로 살아가자님이 말씀하신 일본 애니에 대한 열등감과 질투가 뒤섞인 심정에서 나오는 것이었군요. 원래 구미 문화권 개그의 특징이 [성역은 없다]지만, 타문화에 대해 다룰 경우 1.너무 조심스러워서 개그가 안되거나 2.특정 관객은 웃기지만 어딘가 찝찝한 구석이 있는 편인데, 특히 구미 문화를 빠르게 제압해온 일본만화, 애니에 대해서라면 열등감과 동경이 뒤섞여 배배 꼬일만도 하군요. (실제로 만나본 자칭 서양 오타쿠들은 그런 공통점이 있는 편입니다) 온라인 팬아트나 창작 중에서도 뭔가 국내나 일본의 팬사이트에서는 느낄 수 없는 미묘한 불편함이 흐르는 편인데 바로 잡아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확실히 이번의 [게이샤의 추억]도 그렇고 동경과 경멸이 뒤섞인 대상을 다루기 힘드니 동물원 원숭이 취급하는 느낌이군요. 저 애니는 저도 캐나다 있을 때 봤는데 차마 오래 못 봐서 하록이나 독수리 오형제는 다행스럽게(?) 놓졌군요....
Commented by 시바우치 at 2006/02/16 03:14
캐릭터나 원작을 망가뜨리는 개그 패러디라면 저도 솔직히 즐겨 하니 남 욕할 상황은 안됩니다만(...), [사랑하기에 망가뜨리는 것]과 [미워서 망가뜨리는 것]은 명백히 다르다고 믿고 있습니다. 예컨데 똑같이 하록을 호색한으로 표현했다 해도 다루는 방식의 태도, 즉 개입자의 태도가 애정인지 미움/경멸인지에 따라 결과물에 명백한 차이가 난다고 생각합니다. (랄까...사실 호색한이라는 데서 이미 캐릭터 파악이 어긋났군요. 소년 매니아인데....퍽!) 미국 애니 중에 자사인 하나 바바라 사의 옛날 애니를 패러디한 하비 버드맨의 경우, 플린스톤 가족의 프레드 플린스톤을 마피아 가족드라마 소프라노즈(...)의 마피아 두목으로 망가뜨린다고 할까, 재해석하는 것 등이 아주 어처구니없이 망가뜨린다기 보다는 원작에 내재되어있거나 연상이 가능한 속성을 분석해내서 비튼 것으로, 드라이한 와중에도 충분히 애정이 느껴집니다. (스쿠비 두의 주인공 콤비가 약물중독자처럼 묘사되는 것도 물론;;;) 사실 동인물과 패러디를 애정의 차이가 있다고 서로 다르다고 분류하는 경우가 있지만, 진정한 패러디란 원작을 해부할 정도의 최소한의 애정이나 관심은 있어야 한다고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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