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츄츄북들을 '쌓아놓고' 읽은 후에
이제 간신히 이틀이 지났네요.
뭐랄까... 헤니히님의 말씀대로 쓸쓸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그저 멍~합니다. 끝났다는 실감이 좀처럼 오지 않는 모양이예요.
생각해보면
* 작품 종료 후 3년 만에 첫 온리전
* 대상이 (동인계에서 가장 일반적인) 소년만화가 아니다
라는 점에서 좀 독특했던 온리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그래서 다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거겠지만... orz...) 저도 순정만화 계열 온리전은 차라리 후르바가 더 실현 가능성 있다고 생각했고, 아예 마법소녀물 온리전 기획이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의심했으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많이들 참여해주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 날 밤, 책들을 싸짊어지고 와서 읽으면서 안구로부터 뜨거운 마그마가 흘러내리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호러네요).
그래!!! 바로 이거야!!!! 난 이런 게 보고 싶었다고오오오오우어어어어어!!!!!!!!!!!!!!!!!!!!!!!!!!!!
내 가슴 한복판에 불을 붙혔다구 베이붸

일본 쪽 츄츄 동인지는 카피본 인쇄본 안 따지고 백 권 좀 넘게 읽었습니다만, 의외로 딱히 꽂히는 게 적었거든요. 아마 제가 가지고 있는 게 대부분 방영 종료 2년 이후에 그려진 것들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습니다만, 어째서인지 제가 가려워하는 곳으로부터 딱 5cm 떨어진 곳을 긁고 있다는 느낌이어서 말이예요.
그 위화감, 그걸 이제까진 그냥 ‘한국과 일본의 차이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한국에서 나온 츄츄북들을 읽으면서 그 위화감의 정체를 어렴풋이나마 잡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동인지라는 2차 창작의 매체를 통해서 이야기하고픈 것 자체가 달라요.... 으아 살려줘요 너무들 극강이셈 쿨럭쿨럭

맨 처음으로 읽기 시작했던 당면님의 카피북에 걸려서 피를 한웅큼 토했습니다만(죄많으신 분... 쿨럭쿨럭), 그런 거지요. 다들 아히루를 향한 애정으로 가득 찬 북을 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애정은 아히루의 선택 전부를 긍정하는 방향으로 표현되었지요. 아히루가 사라진 사실은 슬프지만 그건 절대 헛되지 않다고.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전부 그녀를 기억하고 있으니까.” 당면님의 <그녀의 이야기>
“그리고 헤어질 때는 너무너무 사랑했었다고 말해줄 거예요!!” aida님의 <이상한 나라의 화키아>
“화키아와 내가 바랬던 것처럼, 꼭두각시 인형으로서가 아닌 우리 자신이 결정한 일이잖아!” 엘루시아님의 <Happy Valentine to everyone>
“있잖아... 화키아... 나... 이 이야기의 끝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아.” 이코&고마님의 <Shall we dance?>

현 동인지 문화에서 가장 범람하고 있는 것은 BL이던 백합이던 결국 커플링이고, 그건 일본의 츄츄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화키아-아히루가 대세입니다만 결국 그들은 호노보노라든가 처절이라든가 그러한 ‘계통’에 휩쓸려 ‘츄츄’라는 작품이어야 할 정당성을 잃고 맙니다. 어느 한 계열에서 시간이 흐르고 책이 거듭되다보면 결국 모두 패러렐로 봉착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제가 일본 츄츄북에서 그런 고착을 느낀 것은 작품 종료 2년 후에 나온 후기 북들을 주로 보았기 때문일 거라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갈증이 너무 심했습니다.

알테마님의 <숲의 마법사> 후기에서 아주 직격을 먹었는데요. ‘이랬을 거라 생각하지 않지만 이랬어도 좋겠다는 마음에’ 저는 츄츄북에 집착을 합니다. <프린세스 츄츄>라는 작품은 그렇게 끝나서 좋고, 동인은 차마 그걸 그대로 끝내지 못해서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그 양쪽의 미묘한 밸런스와 새로운 이야기와 묻어나는 애틋함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릅니다.

이번에 나온 츄츄북들은 센스도 정말 극강이었지만(라 실피드 보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ㅠ_ㅠ 특히 25p), 다들 이번으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셔서 그랬는지 ^^; 가장 핵심적인 부분, 츄츄의 제일 깊은 정수만 찔러내어 그려주셔서 진심으로 감동했습니다. 다들 할려면 이렇게 잘하면서 지난 삼년동안 어디 가서 뭐하고 있었어억
지현님의 책에서 아오토아가 츄츄 문집을 맞고 ‘뭐야 이 하드커버는...’하는 걸 보고 미안하다고 생각해버렸습니다만, 그 다음에 무려 드롯셀마이어를 동정하게 만드는 시리어스 네타가 나오더군요. 아니 다들 개그북인 것 같으면서 은근슬쩍 염장을 끼워넣는데 도가 트셨어요;;;
구아바님의 패러렐 동화책을 보면서 다시 쇼크를 먹은 이유는, 어느 샌가 또 ‘마법사의 딸을 조연으로서 무시하고 있었던’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이제까지 읽어온 수많은 동화에서, 단지 왕자를 제때 제 타이밍에 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잊혀져가야 했던 착한 처녀들에게 아무런 동정도 보내지 않았던 - 나를 깨닫고 뒤통수 맞고 피를 철철 흘리며 반성했습니다.

한 권을 보고 덮으면 어찌나 여러 가지 감정이 솟아오르는지,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전부 감상문을 쓰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습니다. 처절하게 뱃속을 뒤집어주신 보답으로, 한 권씩 써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첫 타자는 마지막으로 손을 댔던 소설 온리북 <숲의 마법사> 되겠습니다. 오늘 헤니히님과도 침을 튀기며 떠들어댄 거지만 세상에 어떻게 저런 염장을....(부들부들)
by 살아가자 | 2006/02/22 00:08 | 그랑 피날레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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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묘희猫姬 at 2006/02/22 00:13
숲의 마법사....orz 전 소설 회지는 항상 나중에 차근차근 읽는 편이기 때문에 새벽녘에야 잡았는데... 정말 가슴 먹먹해져서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으아아아아앍; 그래서 다음날 알테마님 붙들고 버럭버럭 나쁜 분 ㅠㅠ 했어요. (게다가 아리샤인님 회지까지 크로스 어택으로...orz)
정말 다들 너무 극강이셨어요. 츄츄의 결말을 긍정하고, 커플링에 휘둘리기보다 츄츄의 본질을 꼭 찝어서 그리고 쓰셨어요...ㅠㅁㅠ 회지들 다시 읽을 생각 하니 안구에 쓰나미가 밀려옵니다 흑흑 orz
Commented by peruru at 2006/02/22 00:49
으아.. 멋지군요.. 전 아직 소설책들은 못읽었어요. 으으 시간이 시간이.. 사실 코믹같은데가도 회지를 거의 안사는 편인데.. 이번 츄츄 회지들을 읽어보며, 사람들이 '왜' 2차 창작을 하는건지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다들 아히루에대한 사랑이 철철 흘러넘쳐 북받쳐오는 감정이 주체가 안되더군요. 책 내주신 분들 모두 모두 감사드립니다..ㅠㅠ
Commented by Lio at 2006/02/22 01:48
지하철에서 읽으면서 들어갔습니다. 숲의 마법사아...
OTL
어째서 똑같은 한글인데 왜 난 이런 글이 안써질까요오...ㅠㅛㅠ
Commented by Laitwave at 2006/02/22 17:34
더군다나 그 분량의 80%를 핸드폰으로 눌러서 쓰셨다죠...
내용도 대단하지만, 조앤롤링이 울고갈 대단한 집필법이었습니다. - 집필과 동시에 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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