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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회 제목, ‘달빛천사’로 바뀌어버리는 건 아닐까 생각했는데 ‘풀문을 찾아서’로 나와줬군요. 자기 혼자 만월 대신 풀문을 고집했던 보람은 이런 곳에서 느끼는 건가 ^^;
애니피아에서 모 분이 말씀하신 대로, 가슴으로 느끼기만 하면 되는 엔딩이었습니다. 확실히 말해 복선도 없이 이야기가 급진전된 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T_T), 저야 에반게리온 엔딩도 납득하고 박수쳤었기 때문에(신지가 행복해졌다잖냐!!!)... 당위성 있는 엔딩은 중요합니다만, 정말로 ‘당위성’이 획득된 엔딩은 또 딱딱합니다. 사람들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그 이상을 원한다고 생각합니다. 엔딩 자체가 훌륭했다나 좋았다거나, 그런 문제보다는.... 이 엔딩이 담고 있는, 세상을 향한 기대와 믿음과 사랑이 딱 제 평소 신념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그토록 울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난 뒤에는 세상이 모두 아름다워 보인다는 극도의 부수효과가.(웃음)
전에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이라는 글에서 길게 썼습니다만, 멜로니가 그렇게 고생해서 망각의 꽃을 따오고 루나가 타토를 설득하고, 타토가 기억마저 희생하면서 살아남기로 결심했음에도... 결국 그 노력을 전부 비웃기라도 하듯이 사라지는 타토를 보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억울함과 비애감에 마구 울었었지요. 스스로를 희생하여 루나를 지켜준 멜로니, 시작되는 심판과 수술. 그리고 그 뒤의 전개를 보고는 아이캣치 전보다 배는 더 눈물 흘린 것 같습니다. 다들 잘 됐다는데 왜 그랬을까요.
제가 풀문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만, 이 엔딩은 지금 일본애니가 일반적으로 타고 있는 흐름과는 굉장히 다른 방향입니다. 캐릭터들이 갖가지 수를 써가며 노력을 했음에도 그건 다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흔히 나오는 ‘지지 않아’ 파워, ‘포기 안해’ 파워가 통하질 않았지요. 그런데, [이들의 노력이 ‘운명’을 바꾼 것이 아니라, 그들의 노력을 보고 하늘이 감동해 ‘운명’을 바꿔주었다]는 엔딩은 ‘인간은 근성으로 뭐든지 할 수 있다. 신 따윈 없으며 필요도 없다’라고 노골적으로 외쳐대는 현재의 세태와는 정반대입니다. 개인이 운명을 바꾼 엔딩이나, 개인이 결국 운명을 바꾸지 못하고 끝장나는 엔딩과는 다릅니다. 어떻게 보면 개인은 세계 앞에 결국 무력하다는 것을 속속들이 비춰준 결말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개인의 노력이 소용없다고 결론내린 것은 아닙니다. 마지막 순간 ‘세계’가 개인을 위해서 움직여주는 것으로 맺고 있지요. 취향에 따라서는 주체적이지 못하다고 비난하실 분도 계시겠고, 말도 안되는 유아적인 발상이라고 말씀하실 분도 계시겠습니다만, 저는 사람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이런 것을 믿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뛰어넘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신이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바라는 마음이죠. 가끔 소원도 빌 수 있고 원망도 할 수 있게. 그리고 무엇보다, 그 편이 안정적이니까. 불확실한 인간의 마음만을 의지하며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정말 불안한 일이거든요. 그래서 [달빛천사]는 만신과 인벌의 나라인 일본보다는 오히려 한국 입맛에 맞는 작품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루로우니 켄신] 덕분에 한국에도 좀 알려진 단어가 되었습니다만, 일본에는 ‘인벌’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즉 ‘하늘이 저 자에게 벌을 주지 않아도 내가 저 자에게 벌을 내리겠다’는 의미죠. 그런데 아시다시피 한국에는 ‘천벌’이라는 단어는 있지만 ‘인벌’이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천벌’은 말 그대로 하늘이 내리는 징벌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언젠가 악인에게는 어떤 절대적인 존재가 벌을 내릴 테니 지금은 참으라는 의미고, ‘절대적인 존재’가 있음을 믿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문화적 어휘인 셈입니다. 기다리라는 ‘천벌’과 직접 행하는 ‘인벌’. 한국인들은 워낙에 어쩔 수 없는 세태에 인내하는 법을 배웠고, 반면 일본인들은 칼의 문화를 강조하다보니 이런 면에 더 능동성이 강해졌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보다는 가장 종교성이 옅은 나라인 일본의 특성이겠죠. 모든 것에 (귀)신이 존재하지만, 그만큼 절대적이지 못하고, 믿을 것은 신이 아니라 인간의 힘이라는 일본의 문화적 기본 바탕. 하지만 그래서는 세상사는 게 정말 팍팍해지지 않겠습니까. 모든 걸 자신이 해내고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살아서는 여유도 없죠. 그런 주체적인 삶은 이상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인간에게는 너무 무거운 짐입니다.
일본 만화를 즐기면서도, 저는 근본적인 점에서 이들의 사상을 좋아할 수가 없었습니다. 만화도 그네들 문화의 산물인 만큼 당연히 그러한 사상을 깔고 있으니까요. ‘이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 그러므로 절대적인 진리도 없다. 영원한 것도 없다...’ 모든 가치를 부정하고, 그나마 남는 것은 ‘그래도 살아있으면 어떻게 될 테니 무조건 살고 봐라’. 그렇게 무가치성과 허무주의에 가득 찬 채 완강한 현실에 부딪치기 위한 근성이나 남들과 잘 부대끼기 위한 상냥함을 강조하는 그네들의 작품배경을 보면서 항상 ‘아냐, 그럴 리 없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거든요. 즐기면서도 근본적인 곳에서는 어긋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제 베스트 작품인 ‘기생수’를 읽으면서 느꼈던 그 강렬한 비애감과 안타까움은 거기에 기반했었는지도.
그래서였는지, 풀문이라는 작품을 찾아냈을 때 저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맞장구치며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 만화에서 이런 사상에 이런 소릴 하다니 세상에나’라는 놀라움도 있었습니다. 순진한 주제에 대담한 작품이라는 생각도 했지만, 어쨌거나 궁극적으로는 ‘마음이 맞았다’는 거지요. 개인적인 종교의 문제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것은 이미 종교의 문제를 넘어 저의 신념이니까요. ‘최선을 다해도 안 될지 모르지만, 그건 헛된 일이 아니다. 근거도 증거도 없지만, 어쨌거나 그 노력은 보답받게 될 테니까.’ 바보같은, 혹은 어린애처럼 유치한 믿음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렇게 지적당해도 그다지 반박할 생각은 없지만. 정말로 그런 믿음이 전혀 없다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무가치성, 허무주의, 그것들은 일본만화가 소유한 독창적이고 매력적인 포인트이기도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반발하고 싶어지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계속 누가 할 지 신경쓰고 있었던 심판자 역은 한원자님께서 맡아주셨습니다(개인적으로 심판자가 여성이라는 점이 무척 맘에 들었어요). 일본에서는 딱딱하기 그지없는 B사감 목소리 같았는데, 엄하면서도 어쩐지 부드러운 느낌이었지요. 주연 세 분의 연기는 이미 연기의 영역을 넘어선 듯 했습니다. 용신님이 엔딩에 무척 감명받으셨다던데, 울먹이며 부르던 Love Chronicle과 마지막의 ‘고마워요’는 정말 가슴에 울리더군요. New Future의 터져나오는 강렬함이 좀 약하기는 했지만, 성우분들의 간절한 목소리가 모든 걸 커버해주었습니다. 루나가 타토의 이름을 부를 때의 그 카타르시스란. 멜로니가 “절대로 루나는 데려갈 수 없어!”라고 외칠 때 온몸에 흐르던 전율, 팬들에게 이별을 고하던 루나의 떨리던 목소리. 마지막에 ‘멜로니?’라고 중얼대던 타토의 목소리는 일본판 성우분과는 해석이 전혀 달라서, 정말 감동받아 버렸습니다. 최종화까지 보고 나니 왠지 탈진해버렸네요. 밖으로 뛰쳐나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비맞으며 New Future라도 마구 불러제끼고 싶은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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