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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한달 전에 쓴 글들이지만, 지금의 생각과는 좀 차이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직도 그 녀석의 마지막 표정이 잊혀지질 않아요. 미리니름이 만재합니다2006/03/08
오전에 45화서부터 몰아서 전부 보고서는 방구석에 처박혀서 동그라미만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헤어나오고 있지를 못한걸 보니 생각보다 충격이 컸나봐요. 신지 녀석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이 이야기를 이토록 심각하게 지켜보진 못했을 겁니다.
신지... 제발 죽지 마. 죽지 마. ...죽지 마라.
어허헝~
2006/03/09
수업 시간에 자꾸 신지 얼굴이 떠올라서 하마터면 울 뻔했습니다. 뭐가 그렇게 슬픈지 잘 모르겠네요. 제 친구 말대로 그런 녀석이 조연 취급을 받아서? 마지막에 찾은 답이라는게 정의란 거울 속의 허상이라고 깨닫는 거라서? 나 자신부터가 사람의 생명의 무게를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끝의 끝까지 그 녀석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상은 사라지고 희생은 거대했고 남겨진 것은 욕망에 상처입는 청춘들 뿐이었기 때문일까요. 자본주의 따위.......(의미불명)
2006/03/11
사람은 다들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면서 산다. 하지만 자신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도 잔뜩 모여서 함께 살아가는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기 때문에, 욕망을 ‘추구’하지만 적당히 ‘타협’도 해가면서 그렁저렁 살아간다. 칸자키 시로는 가면라이더들의 배틀 로얄 참가 자격증을 욕망이 강한 사람들에게 부여하였고,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필사적인 라이더들은 저마다의 생명을 담보로 걸고 타협할 길 없는 전투를 시작한다. 연인 때문에, 자신 때문에, 돈 때문에, 싸움 그 자체 때문에. 각자의 욕망은 다 다르지만 그 어느 것도 인간적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그것이 옳으냐 그르냐, 아름답냐 추하냐 하는 가치 판단의 문제를 떠나서 말이다.
신지가 우유부단하고 하는 일도 없다는 비판을 듣는다고 하는데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기는 쉽다. 하지만 타인의 욕망을 듣고 심사숙고해주는 건 훨씬 어려운 일인 것이다. 이 녀석이 열심히 쫓아다니면서 라이더들의 폭주를 막지 않았다면 이들이 도대체 어디까지 추한 꼴을 보여줬을지 상상하기도 싫다. 하루에도 수십 번 고민하고, 자신의 결정에 회의하고, 다시 번복하고 일어서는 과정을 일 년 간 지치지도 않고 반복하는 건 분명 우유부단하거나 도덕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모두에게 가장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지, 그 녀석 나름대로 필사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인데 나라면 그렇게까지 못한다. 골치도 아프고 내가 뭣 땜에 남을 위해서 그렇게까지 고민을 해야만 해, 하면서 윤리관 따윈 집어치웠을 게 분명하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풋내기에 지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그 이후의 행동을 지켜본 결과 그건 분명히 신지가 지닌 ‘강함’이었다고 생각했다.
배틀 로얄이라는 체제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다. 파벌은 있어도 친구는 없고, 결국은 누구나가 적이다. 어떤 치사한 짓을 해도 비겁한 수를 써도 남는 녀석이 승자다. 그렇기 때문에 배틀 로얄은 비정하고, 처절하고, 인간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욕망을 이루기 위해 무슨 짓을 하건 끝에 살아남는 놈이 이기는 게 우리들의 현실이기 때문에.
근데 ‘그게 현실’이라고 그토록 간단히 정의내릴 수 있다면 세상이 또 재미가 없겠지.
인간이라는 동물은 또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아서, 끝없이 회의하고 방황하며 자신의 욕망에조차 충실하지 못한다. 그걸 양심이라고 불러도 좋고 죄의식이라고 불러도 좋고 도피건 포기건 뭐라고 불러도 좋다. 모두 함께 행복할 수는 없으니 너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존재하라고 부추기는 것이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지만,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는 말처럼 욕망만이 인간의 정수는 아닌 것이다. 절박한 상황에서 라이더가 된 녀석도 있지만 아닌 녀석도 있다. 심지어 이 싸움을 막기 위해 불 속으로 뛰어든 자들도 있다. 하지만 일단 라이더들은 자신의 소원을 위해서 타인을 해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은 뚜렷한 목적도 욕망도 없이 얼떨결에 라이더가 된 신지를 비난한다. 우리의 심정도 모르면서 입에 발린 소리만 늘어놓는 네가 뭘 알겠느냐고.
하지만 난 신지의 방황에 분명 의의가 있다고 믿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은 욕망만으로 사는 -혹은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니까. 욕망에 맹목적인 인간만을 모아놓은 미러월드, 칸자키 시로의 정글 속에서 신지는 가장 뚜렷한 변수였으며 안티테제였다. 공존이 불가능하도록 극단적으로 짜놓은 체제인 배틀 로얄이라는 구조가 맘에 안 들 경우 선택지는 얼마 없다. 체제로부터 도피하거나(영화 <배틀 로얄>에서처럼), 아니면 다같이 그 체제를 혁명하는 수밖에. 서로의 불신감을 조장하는 배틀 로얄의 특성 상 후자는 정말 힘들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많이 흔들렸지만 신지의 주장은 줄곧 후자였다. 그 녀석의 행동은 틀림없이 라이더들에게 영향을 끼쳤고, 크고 작게나마 생각에 변화를 주었다(개인적으로는 키타오카가 신지를 걱정해줄 때 가장 감동했다. 이 사람이 욕망을 포기했던 유일한 라이더라는 게 정말 인상적).
그런데 왜 네가 그렇게 죽는 거야. 처음에 가장 쇼크먹었던 부분은 신지가 최종보스전까지 가지도 못했다는 거지만,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분하고 억울하고 잊혀지지 않는 부분은 그 녀석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자신이 하려고 했던 일도, 해왔던 일도, 역시 라이더로서의 욕망이었던 거라고. 유언을 그딴 걸로 해놓고 튀어버리면 뒤에 남겨진 난 어떡하라고 이노무 자식아. 일주일이라도, 삼일이라도, 단 하루라도 아니 한 시간만이라도 그 녀석이 더 살아 있었다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고민 끝에 그게 아니라고 생각을 바꾸었을지 모르는데. 서로 죽이는 일 따윈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싸움을 멈추고 싶다, 그런 바람이 잘못된 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런 소망이 없었다면, 지구를 날려버릴 능력을 갖추게 된 바로 그 순간 지구상에서 인류의 자취가 사라졌을 거다. 하지만 신지의 마지막 결론은 항복선언처럼 들렸다. 이 배틀 로얄이라는 체제를 인정하고, 욕망만이 전부라는 룰을 인정하고, 자신도 그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학교를 때려 부수며 “X까”라고 외치던 권상우가 결국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기존 체제에 편입하려 하던 엔딩을 보면서 입맛이 엄청 씁쓸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죽을 때 죽더라도 자신의 신념에 회의하지 말았으면 했다. 누군가 한 사람만이라도 선택을 바꿔주길 바랬다. 그리고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마지막 라이더는 자신이 그토록 바랬던 소망을 성취했고, 이 싸움에 참여한 라이더들은 전멸했다. 배틀 로얄이라는 체제의 룰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마지막에 나오는 리셋인지 평행세계인지 패러렐인지 모를 평화로운 나날은, 잘됐다는 느낌을 주기는커녕 서러움만 배가시켜서 아주 펑펑 울었다. 저런 식으로 살 수 있다면 좋겠지. 서로를 잊고 알아볼 수 없어도 어쨌거나 살아 있기만 하다면. 하지만... 모두의 의지가 공존하지 못하고 상처입히다가 전부 꺾여버린 현실을 방금 보여주고서 이런 장면을 오마케로 넣어줘봤자 기쁘긴커녕 슬프단 말이다.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모두 쳇바퀴 속에서 놀아나는 다람쥐였을 뿐, 맴도는 쳇바퀴에서 놓여나지 못하고 죽어라 달리다가 전원이 파멸해버렸는데 그게 단 한 사람이 욕심을 버리는 것으로 해결되었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그러고도 허무하지 않다고, 그간 들어간 눈물과 땀과 피가 아깝지 않다고 할 참인가? 현실에서는 이런 식의 리셋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데도. 츄츄에 대입해 말하자면 모든 캐릭터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은 후에 우즈라의 탄원을 들은 드롯셀마이어가 자비심을 지니사 해피엔딩 버전도 써줬다는 식인데, 이걸 보고 성불하라고?
신지가 라이더들을 바꿔 보이겠다고 큰소리칠 때, 나는 그걸 믿지 않았다. 그렇게 잘 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이 쳇바퀴의 한 구석탱이라도 부숴주길 바랬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녀석이 자신을 믿길 바랬다. 체제에 순응하고 이용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부조리함을 부수려고 노력하는 거라고. 그 사실만은 믿어주기를 바랬는데. 끝까지 회의하고 고민하는 모습이 그 녀석다워서 좋아하지만, 아주 좋아하지만. 숨을 거두는 타이밍이 너무 나빴다. 그래도 렌이 그런 말을 밖으로 내뱉을 만큼 변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조금은 만족했으려나.
그래서 지금은 뭐하고 있느냐면... 도서관에서 68 학생운동에 관한 책을 잔뜩 빌려와 읽는 중입니다. orz 어쩌다 일본이 이렇게 절망적인 이야기를 내뱉는 사회가 됐누.
2006/03/13
한 사람만의 의지로 세상이 좌지우지되는 것은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다. 설령 그 자가 선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신은 세상이 그런 식으로 돌아가는 걸 원하지 않았기에 이러한 '인간'들을 만들어놓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 안되냐고 물으신다면...
그건 그 한 명을 제외한 다른 56억 명의 자유의지를 무시하는 처사니까. 개개인의 자유의지가 허용되지 않는다면, 혹은 의미가 없다면 세상 모든 것은 허무하기만 할 뿐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행동을 취하든, 결국엔 하나뿐인 누군가에 의해서 모든 것이 결정되니까. 자신들의 손으로 얻어낸 평화가 아니라 누군가 타인에게서 받은 평화라면 그 누군가에 의해서 깨질 가능성도 높지 않은가. 칸자키가 당장이라도 포기했던 맘 고쳐먹고 리셋버튼 클릭하면 어떻게 되는 건데. 라이더들은 자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칸자키가 벌린 판 위에서 놀아주었고, 끝까지 판 위에서의 집념을 버리지 못한 결과 칸자키의 시스템 중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라이더들이 모두 공존하고 있던 그 별세계가 서글프다. 어쩌면 저게 제일가는 허무주의 엔딩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나쁜 엔딩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오늘 -벌써 어제지만- 류우키를 보셨다는 S님과 엔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신지의 마지막을 바라보는 견해의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 찾아낼 수 있었다. 내가 엄청나게(...오버하면서) 비통해하는 것에 비해 S님은 그렇게까지 안타까운 죽음은 아니라고 생각하셨던 듯. S님은 신지의 방황이 종결되었다는 의미에서 그 유언을 라이더로서의 자아확립으로 판단하고 계셨다. 나는 이 부조리한 체제를 변화시키지 못한 채 승복했다는 의미에서 좌절당한 혁명이라고 생각했다.
'사회의 혁명', 그리고 '자아의 완성'. 초점을 바꾸면 보이는 것도 달라지는 것일까? 내가 그 녀석에게 내멋대로 너무 지나친 기대를 걸은 것인가? 신지는 그걸로 됐다고 하고 싶었던 모양인데 말이지.(어쨌든 렌을 울렸고) 난 그 녀석이 찾아 헤매던 답이라는게 분명 [Revolution]일 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소녀혁명 우테나의 충격이 아직도...; 저항하고 싸우다 이게 아니라고 생각하고 체제를 인정한다면 그것도 하나의 선택이겠지. 그걸 뭐라 하고 싶진 않다. 않은데... 죽는 순간에 그러는 건 제발 좀.
2006/03/16
나는 이 세상에 절대적인 진리가 있다고 믿고 있는가.
이래봬도 류우키 관련 고민이예요...; 2006/03/20
'배틀 로얄'이라는 전투방식이 어디서 유래한 것인지 궁금해서 검색해봤는데, 죄다 일본의 그 영화와 소설밖에 걸려나오질 않아서 혹시 이 단어가 싸움방식을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그 작품에서 임의로 붙인 명칭인가 헷갈릴 지경에 이르를 무렵 외국 웹에서 겨우 발견했습니다.
Battle Royal. 로마에서 검투사들이나 짐승들, 혹은 크리스챤이나 죄수들을 경기장에 한데 몰아넣고 싸움을 붙인 것이 시초로 여겨진다네요. 최후에 살아남은, 혹은 두 발로 서 있는 자가 승자.
그 이후 권투에서 그러한 방식이 도입되었다가 레슬링에서 로얄 럼블이라는 이름으로 정착되었다고 합니다.
제 경우를 좀 들어보자면 이런 싸움방식이 있는 줄은 상상도 못하고 있다가, 2002년에야 비로소 국내에 소개되었던 문제의 그 일본영화를 접하고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이건 저만 그런게 아닌 듯하던데요.
그 이후 무슨 붐이라도 인 것처럼 일본 서브컬쳐 계열에 이 요소가 투입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옛날에는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고 생각되거든요. 아는 것이 일천해서 확신은 없습니다만.... 사실 아직까지 발견한 것이 류우키와 갓슈 밖에 없습니다. 전해 들은 것으로는 페이트, 로젠메이든 정도.
# by 살아가자 | 2006/04/10 23:00 | 올망졸망 | 트랙백 | 핑백(1)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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