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우키 엔딩을 처음 보고서 미치고 파치고 솔쳤던 그 날을 기억한다.
구석에 처박혀서 방바닥을 긁다긁다 못 참고 MSN에 접속했다. 마침 있던 친구녀석을 붙잡았다. 두다다 타자를 쳤다.
그러고선 가슴에 엉겨있던 류우키 엔딩 유감(...인지 원한인지 뭣인지)을 나불나불 떠들어댔다. 나야 시원했지만 영문도 모르고 결말만 죄다 들어버린 입장에서는 참 난감했을 것 같다.(사실 난감했다..는 말로는 부족할거다) 그렇지만 참을 수가 없었다.
난 이 작품을 참 재미있게(...) 본 사람이다. 무슨 소리냐면 제작진이 설치해둔 함정이나 복선에 일일히 다 빠져가면서 봤다는 얘기다. 내, 내가 아사쿠라한테만 몇번을 속았는지 생각하면..... orz
"어? 실은 좋은 놈인 건가? 에이 여기서 저런 식의 전개가 되면 이야기가 재미없어지는데 그럴리가 있겠어." <- 나름대로 작품 외적인 분석까지 하면서 안 속으려고 한다
"......에 정말로 좋은 놈인가?;;;;"
"끄아악 내가 속았구나. 이젠 안 속겠어."
".........그럴리가 그럴리가 그럴리가 없는데.... 사실은 로리콤이었냐? 아냐 쟤가 그럴리가... 어 정말인가?"
"끄아아악 또 속았어"
......의 반복이었다. 아사쿠라만이 아니고 모든 전개에 있어서.
심지어 라스트까지도. 설마하니 류우키가 마지막에 남지 못할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해본 일이 없었기에 너무 충격먹었다. 가슴에 제대로 상처받았다구. 알아? ;ㅠ;
하지만 그보다 더 쇼크였던 건, 전에 적었다시피 신지가 이 '배틀 로얄의 룰'에 굴복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는 점이었다.
당시의 내 주장은
저 아래 글에 구구절절 썼으니 패스하고.
그 이후에 다른 분에게서 <서로의 정의가 절대적이라고 내세우는 상황에서, 신지가 독선일지도 모르는 자신의 정의를(그것도 포기하기 어려운 보편적인 정론을) 내려놓고, 타인의 정의를 동등하게 보면서 현실을 받아들였으니 신지다운 성장이고, 그런 신지의 모습을 본 '이번 유이'의 저항이 가장 격했기 때문에 미러월드가 닫히고 새로운 세계가 열릴 수 있었던 것 아닌가>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무척 일리있는 이야기여서 또 한참을 삽질했다.
정말이지 독선적인 정의와 보편적인 윤리의 간격은 알 수가 없는 것 같다.... orz....
어떤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인간다운' '인간으로서' 남겨지는 선이라는 것은 어디까지일까?
비극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이 있다.
장애물이 너무 견고해서, 주인공이 정말 무력해서,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쏟아져 내려옴과 동시에 알바트로스 강림으로 죽었던 꾸러기 수비대 대원들이 몽땅 살아나는 허무버젼 해피엔딩으로 낼게 아니라면, 어쩔 수 없이 주인공이 파멸하는, 전개상 파멸하고 끝날 수밖에 없는 이야기란 것도 있다. 아마 류우키도 그런 류의 이야기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씹어먹을 칸자키 형님께서 그렇게 예비해 놓았으니까. 틈새를 죄다 막고 한번 뛰어들면 나갈 수 없도록.
하지만 가끔 그 절대적인 간격을 파고들어 한줄기 빛을 붙잡는 '이야기'가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 <소녀혁명 우테나>가 그랬고, 한국 드라마 <부활>이 그랬다.
현실이 이토록 절망적인데도, 파멸할 수밖에 없는데도, 거기서 좌절하고 만족하려는 나를 붙잡고 희망을 보여주었다.
"이대로 끝이 아니야, 잘되긴 개뿔"이라고 외치면서 그렇게. 실로 믿기 어려운 마지막을 보여주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난 아마도, 무의식 중에 신지도 그 길을 내게 보여줄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이 이야기에 기대를 걸었던 건지 아직도 알 수 없지만.
그냥 잘생긴 청년들이 치고박고 싸우는 아침드라마(진짜로)일 뿐이잖아 그렇잖아 근데 왜 orz내 안의 신지가 꽃으로도 때려선 안되는 사람으로 등극해서 그런 걸까.
신지라면 밖으로 나갈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가.
리셋된 세계는 아무래도 내게 '엔딩'으로 다가오질 않는다. 오히려 '시작'처럼 느껴진다. 저렇게 살 수도 있었는데... 하는 안타까움.
저 얼굴이 뇌리에서 지워지질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