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일의 나쟈> (2003년) 도에이 동화 애니메이션 <오자마녀 도레미>의 이가라시 타쿠야 감독, 현재 <오란고교 호스트부> 감독 중 애플필드 고아원에서 자란 나쟈. 어느날 그녀 앞으로 배달되어온 수수께끼의 소포를 보고 자신의 어머니가 죽지 않고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동시에 나타난 괴한들은 어머니의 유품인 브로치를 빼앗으려 하고, 그 순간 백마를 탄 미모의 소년이 위기에 처한 나쟈를 구해준다. 그리고 나쟈는 어머니를 찾아서 단데라이온 서커스단의 댄서로서 전 유럽을 헤매는 여행길에 오르게 된다. ...라는, 모에코드를 따르는 것이 대세인 요즘 시대에 완전히 어긋나는 설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바로 이 <내일의 나쟈>(2003)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소녀 로망의 궁극이자 집대성인 듯한 나쟈의 오프닝을 보고 너무도 감탄했고(엔딩도 멋지다), 그래서 1화를 봤지만 막말로 쌍팔년도 센스같은 정석 닭살에 버텨낼 자신이 없어 관두었던 전적이 있다. (‘별빛 눈동자의 기사님’이라는 호칭만 아니었어도 그만두진 않았을거다...) 하지만 츄츄가 그랬듯이, 그리고 모든 애니가 그렇듯이(그래야 하듯이) 첫화는 시청자로 하여금 작품의 세계관을 이해하고 그에 녹아들 것인지 말 것인지 의견을 타진하는 자리이다. 1화를 보고 온몸을 뒤틀었을지언정 다음화를 볼 마음이 들었다면 일단 한고비는 넘은 셈이다. 격투코드를 변신소녀물에 삽입해 히트를 친 나쟈의 후속작 <두사람은 프리큐어>에 비교해볼 때, 나쟈가 그렇게 되지 못한 것은 아마도 남성 시청자층에게 외면당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쟈는 정말이지 고전적인 여성향이라서, 전부터 고전 순정만화의 세계에 익숙해져 있는 남성이 아니라면 끌어들이기가 어려워보인다. 게다가 초반에는 이야기 전개가 지지부진하고 단데라이온 서커스단이 가는 곳에서 발생하는 소동들로 매 에피소드가 채워지기 때문에 계속 눈길을 붙잡기가 힘든 것도 사실이다. 매주 보는 거라면 모를까 몰아보는 거라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 작품의 진짜 정체성은 유럽 관광 가이드 애니메이션이다. <프린세스 츄츄> 이래 배경미술만으로 이토록 감동을 준 애니가 없었다. 츄츄가 발레단장의 추천을 받을 만하다면 이 작품은 EU에서 표창장이라도 주어야 마땅하다. 이걸 보고 나면 유럽여행을 떠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초반의 서커스단 이야기는 의미를 갖는다. 매화 바뀌는 도시, 그에 따라 달라지는 배경, 각종 관광명소. ...지금은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사실 처음에는 그런 것도 눈에 안 들어왔다. 화면이 아름답다는 것만으로 지지부진한 전개를 참기에는 내 심미안은 너무 낮고 성격은 너무 급했던 탓일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초반을 계속 볼 수 있었던 것은, 꺼버릴까 싶을 때마다 환상적인 장면들(5화의 댄스나 13화의 아침해 등)이 타이밍을 맞춰 나와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13화 라스트씬의 연출은, 그날 밤 두시간 동안 그 1분 45초 영상만을 계속 돌려보고 있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이, 이런 정공법 연출에 당할 줄이야... 그리고 우테나 마지막회의 콘티담당으로 소개했던, 호소다 마모루씨가 연출한 문제의 26화. 나는 내일의 나쟈 26화, <프란시스의 반대편>만으로도 50화 전체를 볼 가치가(+ DVD 소장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26화가 왜 대단한지를 이해하려면 1-25화를 봐야 하고, 26화를 보고 나면 50화까지 안 보고는 견딜 수 없어질 테니까. (츄츄로 치면 13화에 해당한다고 할까? 한국 츄츄팬 인기투표에서도 1위를 차지했던 13화의 위대하고도 무서운 점은, 가장 전율을 느껴야 할 클래이맥스(25-26화)조차 넘어서는 완성된 미(美)에 있다. 나쟈에서는 26화가 바로 그런 화였다) 물론 26화를 제외하더라도 주옥같은 에피소드는 얼마든지 있지만. 당장 꼽아보자면 24-25화, 28-29화-일명 스페인편-는 필견이다. 스포일러 없이 작품을 소개하려니 변죽만 울리는 기분이 들어 성에 안 차지만, 고전적인 작품답게 서사가 무척이나 중요하기 때문에 함부로 말할 수가 없다. “다 뻔한 얘기 아냐?”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직접 보면 그렇지가 않다. 나쟈가 마지막에 어머니를 찾고 행복해지는 거야 누가 모르겠는가. 하지만 언제?! 어떻게?! 은근슬쩍 깔아놓은 복선도 많고 캐릭터도 많고 변수꺼리도 한두가지가 아니다. 어머니의 존재가 의외로 빨리 드러나기 때문에, 보는 사람은 점점 더 초조한 기분이 된다. 이제야 만나려나 저제야 만나려나, 다음화 예고가 심상찮은데 다음엔 만나려나, 으악 또 엇갈렸어! 저 얄미운 악당은 언제나 몰락하려나 전전긍긍하면서 보고 있자면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것이다. 이런 고전 서사의 힘은 정말 무시할 게 못된다. 시청자가 정말 속터지는 순간이 언제인가? 알고 보니 여자친구가 복제인간이었을 때? 혹은 개조당했을 때? 지구의 운명이 자기 어깨에 달렸을 때? 친구가 자길 구하려다 죽었을 때? 동료가 몰살당했을 때? 일본 애니에서 비장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 정말 쉽게 사용하는 소재들이지만, 냉정한 시청자는 이미 익숙해져서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주인공의 고민이 찌질하다고 비웃기 일쑤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열세 살짜리 천애고아 여자애가 어머니를 찾겠다고 가방 하나 들고 여행에 나섰는데, 남자애들에게 맞고서 가진 돈을 다 뺏긴 채 기차에서 쫓겨나면 그것만큼 속터지는 상황이 없는거다. 그게 고전 서사의 무서움이다. 짜증나서 못볼 것 같다고? 실은 나도 그랬지만 orz 그걸 커버할 만한 아름다움이 이 애니메이션에 있었다. 아 정말... 일본 아니메의 한계는 어디인 건지... 비록 상업적으로 히트하지는 못했다 해도, 이런 애니메이션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일본 아니메를 무시할 수가 없다. (그렇다기보다, 나 어째 계속 버닝 취향이 여성향 마이너로만 가는 것 같은데 이대로 좋은 건가;;; 완전 시대 역행!) 2부가 나오지 못한게 아쉬울 뿐이다. 100화 어쩌고는 인터넷상의 루머일 뿐이지만, 엔딩을 보고 나니 아무래도 2부 계획이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등장인물 중에 퇴장하는 것은 패션센스 제로인 모씨 뿐이고, 심지어 갈아마시고 싶었던 모양마저도 유유히(표표히?) 가버렸으니... 만일 나쟈를 끝까지 봤다면, 당신은 이 작품의 가치를 인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취향이라는 게 있는데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만, 재미있다 어쨌다를 떠나서 스탭들이 자기들 등골을 빼가며 만든 작품이라는 건 확실하니까. 스스로 좋아하지 않고는 절대로 이런 걸 만들 수 없을 테니(남자들이 만들었단 말이지... 남자들이... orz). * 이런 당신에게 추천 - 아름다운 배경이나 연출, 춤 등 여튼 아름다운 것이 좋다 - 고전 순정만화나 세계명작동화 아니메를 좋아한다 - 남자주인공은 역시 양손의 떡이어야 - 유럽여행을 할 예정이다 - <프린세스 츄츄>를 좋아한다 이 중에 한가지라도 해당하신다면 추천합니다.
|
카테고리
한국슬레팬픽사 통판은 여기로 샘플 구경하시려면 클릭! 이글루 파인더
최근 등록된 덧글
오.. 이글루스에서도 광고가!
by 김개구리 at 08/28 살아가자님 안녕하세요? 츄츄를 .. by 까망오리 at 08/10 저... 늘 눈팅만 했었는데 하도 .. by stonebe at 07/08 감사합니다 ^^ 음.... 우테나.. by 청룡하안사녀 at 06/30 살아가자님 언제나 열정적인 모습.. by 청룡하안사녀 at 06/26 안녕하세요 책 잘 받았어요 저는 .. by clay at 06/26 네이버 블로그로 담아가겠습니다... by 이세린 at 06/20 살아가자님 이제 유명인 되셨군.. by 휘연 at 06/17 ...울어라 팬... ㅠㅠ!!! 2 by 아리샤인 at 06/16 ...울어라 팬... ㅠㅠ!!! by 계짱 at 06/16 최근 등록된 트랙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