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진 님의 「온」 감상
…을 빙자한 자기 얘기. =ㅠ=
요새 쓰는 글들이 전부 요 모양이라 죄송합니다.
얘가 좀 신기한 경험을 해보더니 한달이고 두달이고 그 경험 얘기만 하려고 들어...
그래도 이 블로그 오시는 분들 중에 열 분 이상은 공감하실 거라 믿고 써봅니다.




온 3

유시진 지음





유시진 님의 「온」완결편은 옛저녁 코믹뱅에 올라왔을 때 이미 봤다. 그러니까 다 알고 있는 내용이었고, 코믹스판을 구입한 것은 종이로 읽는 맛에 대한 집착 + 팬이 갖출 당연한 예의 + 소장욕구 등등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송되어 온 김에 다시 본 「온」은 예전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물론 예전에도 이 작품을 좋아했다. 좋아했지만...
이렇게 피를 콸콸 토하면서 읽지는 않았다.
맙소사... 예전에는 몰랐다.



나단과 사미르, 그리고 젤.
나는 어느 쪽인가 하면 사미르에 해당되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그렇게 고결하고 완전하고 잘난 것도 아니지만, 자기 자신에 만족하고 있었고 타인이 가진 것에 질투를 느끼지도 않았다. 그 사람의 것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어서 빛나는 것이고 내 것은 내가 가지고 있어서 빛나는 것이다. 대충 이런 것이 나의 사고방식이었다.
(왜 모님이 나보고 귀족이라고 표현했는지 이제야 좀 알 것 같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들은 반드시 했고, 실현시켰고, 그것에 충만했고 만족했다. 적어도 내 대학시절은 그랬다. 학점과는 상관없는 활동이었지만...;

그런데 졸업하고, 취직하려고 준비 중이던 그 시점에 뜬금없이 이야기를 쓰고 싶어졌다. 이제껏 없었던 일이다. 내가 과연 이런 걸 할 수 있을까, 있을까 한 달이나 망설이고 머뭇거리다가, 공개하지 않는 걸 스스로에게 조건으로 걸고서 쓰기 시작했다. (도중에 r님께서 회지 프로젝트를 결행하는 바람에 화려하게 무너졌지만 말이다)
그리고 내 안에 충만하던 세계는 4년 만에 극심한 풍랑에 시달리게 되었다. 내가 갑자기 나단이 된 것 같았다. 아니, 그냥 나단이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세상 모두가 빛나 보이는데, 나만이 홀로 우물 안에 있었다. 인쇄된 책 위에도 좁은 모니터 안에서 너무나 훌륭한 문장이 가득했고, 그것들은 도저히 손이 닿지 않는 별이었다. 책장에 꽂힌 수많은 책들은 그 하나하나가 완성된 세계로서 찬란히 빛나며 나를 거부하고 있었다. 세상이 이렇게까지 나를 비웃으며 거부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질풍노도를 달렸던 중고교 시절에도 이렇게까지 자기 비하를 오랫동안 한 기억은, 심지어 남을 질투하기까지 한 기억은 없었다!!! 내가 남의 것을 질투하다니 일대 사건이었다.
그것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 필사적으로 웃으면서 감췄다. 나도 나단처럼 사람들이 “퀭한 눈매와 비틀어진 입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존심, 자부심, 자긍심. 자기연민, 자기혐오, 자격지심. 자괴감, 자조, 자학.
그런데도 그걸로 부족했는지, 내면이 그렇게 엉망인 상태에서 취직이 결정되었다. 정말이지 사면초가였다. 처음으로 소속된 조직사회 속에서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고, 나의 세계라는 것은 거기에 존재하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선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차라리 마음이 죽어버리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나는 사미르였으며, 곧 나단이었다. 내가 나의 황금안을 뽑고 황야로 추방했다. 그럼에도 내가 그 황야에서 살아나올 수 있었던 것은, 젤에 해당되는 나 또한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이야기를 동경하는 나의 조각. 이렇게 고통스러운데도 끝을 보고 싶다고 소망하는 나 자신 또한 있었기에 나는 황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끝은 있었다. 영원히 찾아오지 않을 것 같던 이야기의 [fin] 표시가 어느 날 페이지의 마지막에 떡하니 새겨졌다. 그걸 보고도 전혀 감회가 없었다. 바로 중반부 수정에 들어갔을 뿐이다. 내 안에서 나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일까. 나는 아직 나단을 포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필사적으로 나단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대화만이 길이었다. 왜 이렇게 질투하게 되는지, 왜 이렇게도 그 용광로가 탐이 나는지, 이대로 완전연소해 버리고 싶다고 바라게 되는 것은 왜인지. 해답은 없었다. 그래도, 이사현과 하재경이 대화를 통해 나단과 사미르를 알아갔듯이 나도 대화를 통해 조금씩 내 안의 나단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온」이 내 방에 도착했다.
“그러나 아직... 남아 있는 일이 있어. 이걸 마치기 전에는 진정으로 변할 수가 없어. ‘나단’이 사라질 수가 없어. 당신에게 이제... 돌려줘야 해. 당신의 것을.”
나단은 사미르에게 황금안을 돌려주었다.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예전과 같을 필요도 없지만, 그가 가지고 있었던 ‘세계’를. 내 세계에 대한 자신감. 가치관. 희망. 나 자신.
그리고
“용서한다, 나단. 나도 용서해주겠니?”
이것으로 완결이다.

솔직히 이것이 나의 라렌인지는 아직 확신이 없다. 꽉 차 있을 때는 몰랐던, 텅 비고서야 알았던 그 세계. 고독. 지금이야 괜찮지만 언제 또 황금안을 집어던지고 우물 속에 다이빙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나단과 사미르가 완결되는 것을 보면서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온」이라는 이야기는 그것만으로, 나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가치를 가진다. 이야기는 사람을 치유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고작 이야기일 뿐이지만, 현실을 바꾸지도 못하는 한낱 진실에 지나지 않지만, 신기하게도.
유시진 님도, 조금 변한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이 변화가 눈물날 만큼 기쁘고 감사하다. 다음 이야기가 벌써부터 기대되어서 참을 수가 없다. 「폐쇄자」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온」에서 ‘완결’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은 왜일까.


키라렌 시타 온.



ps : 아직 이런 얘기를 신기하다는 듯이 계속한다는 것 자체가 완결 안됐다는 증거야 악악 레퍼토리 좀 바꿔
by 살아가자 | 2007/09/07 23:46 | 만화 | 트랙백 | 덧글(3)
트랙백 주소 : http://tutu.egloos.com/tb/3377455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디온 at 2007/09/08 01:14
그렇지 않아도 오늘 서점에 갔다가 '온' 을 발견했었죠.
유시진이라는 이름에 구입할까 말까...했다가 단 한편의 감상도 본 적이 없어서 일단은 보류했었건만;
사도 전혀 후회 없을만한 책 같군요. 하긴 유시진 선생님 작품이 언제 실망을 안겨준 적이 있었냐마는.
Commented by 헤르비안 at 2007/09/10 18:20
우연히 들렀습니다아.
온 3권이 집에 온지 열흘쯤 됐는데도 아직도 온 얘기만 나오면 두근두근하네요ㅠㅠ 저는 처음부터 완전 나단에 이입해서 봤었는데, 우우 의외로 사미르 쪽 성향인 분도 계시는군요 ㅠㅠ
Commented by 살아가자 at 2007/09/29 12:19
디온님 / 댓글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ㅠ.ㅠ
맞습니다. 저도 유시진님 작품에 실망한 일이 없었어요 ^^ 온도 정말 멋진 작품이었고요. 즐겁게 보셨기를 바래요 :)

헤르비안님 / 역시 답글이 늦어서 죄송... orz
둘 다 살아숨쉬는 캐릭터들인 이상 양쪽 다 현실에 존재하는 거겠지요. 보통은 나단일지도 모르겠지만;;
저도 온 너무 좋아한답니다 >ㅁ<

:         :

:

비공개 덧글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


rss

skin by 이글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