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스카프
지앙지리 지음, 홍영분 옮김
읽을 만한 청소년 소설을 찾던 중 이 제목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중국의 문화혁명에 대한 이야기라길래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집어들었다. 문화혁명과 홍위병,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그때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왜 그런 일들이 생겨났는지에 대해서 하나도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임철우의 「봄날」을 읽어보기 전까지 518 항쟁을 ‘무고한 사람이 많이 죽은 사건’ 수준으로 알고 있었던 것과 비슷하다. 그때 「봄날」을 읽으면서 다큐멘터리 소설이 지닌 힘을 톡톡히 실감했고, 이번에 선택한 「붉은 스카프」에서도 비슷한 효과를 기대했다.
그리고 이 책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아침이슬에서 내놓은 두번째 청소년 소설이자 지앙지리의 자전소설인 「붉은 스카프」는 독자를 1966년 문화혁명이 시작되던 그 해, 그 혹독했던 일 년의 정중앙으로 데려다놓는다.
운명적인 1966년이 다가오기 전까지, 나는 공산 소년소녀단임을 알리는 빨간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또한 기쁨으로 터져 버릴 것만 같은 가슴을 안고 매일 무언가를 이루며 성장해 갔다.
그때 나는 열세 살,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그리고 그 해에 문화혁명이 시작되었다. (프롤로그에서 발췌)
문화혁명이란 마오쩌둥이 제기한 ‘4대 구악’을 몰아내기 위한 운동으로, 낡은 사상, 문화, 풍속, 습관 등의 사악하고 해로운 영향력을 깨부수어야 한다는 것이 요점이다. 홍위병들은 그를 실천하는 선봉대로서, 마오쩌둥을 추종하는 젊은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언제나 그렇지만, 대의만 들으면 별 문제가 없는 것 같다. 과연 그러했을까?
부르조아 냄새가 난다며 군중들이 ‘대번영 상회’라고 적힌 간판을 깨부순 것이 지리네 마을의 시작이었다. 유행에 걸맞게 차려입은 사람들은 길을 가다 붙잡혀서 옷을 찢기는 봉변을 당했다. 조금 잘 사는 집은 수색을 당해 값비싼 물건들을 모조리 탈취당했다. 그렇게 털린 집 사람들은 사상을 개조한다는 의미로 허름한 옷을 입고 길거리 청소를 하며 마오쩌둥 대자보 앞에 절을 해야 했다. 홍위병에게 저항하던 할아버지는 땡볕 아래에서 몇 시간이고 빨래판 위에 무릎을 꿇게 되었다. 그를 본 옆집 할머니는 충격에 자살을 택하지만, 그 할머니의 가족들은 슬퍼하는 티조차 낼 수 없었다. 자살은 사상 불순자나 하는 것이며, 그를 동정하는 것 또한 사상 불순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일들이 시내 곳곳에서 일어난다. 강제로 청소에 동원되다 길에 쓰러진 자기 어머니를 못 본 척 지나치는 아들은 공식적으로 어머니를 비난하고 연을 끊는다는 대자보를 썼다. 어느 홍위병 여학생은 길거리에 묶여 처벌받던 어머니의 뺨을 때리고 침을 뱉었다. 학생들은 자기를 가르치던 선생들이 실은 서양 사상에 취해 있었으며, 자신들에게 그를 강제로 주입시키려 했다고 비난하고 고발했다. 당연히 고발 대상이 된 선생들은 혹독한 고초를 겪었다.
그 와중에 자신의 할아버지가, 얼굴도 한 번 본 적 없는 할아버지가 옛날 지주였다는 걸 알게 된 주인공 지리는 큰 충격을 받는다. 전교 학생회장이며 선생님을 대신해 아이들을 가르칠 만큼 똑똑했던 지리는 이제 반동분자로 낙인찍히고, 평소 자신을 시기했던 아이들에 의해서 비난받고 괴롭힘을 당한다. 정말로 할아버지는 악마 같은 지주였으며, 끌려가서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는 반동 우익인가? 지리는 그 사실에 괴로워하고 힘들어한다.
여기서 기가 막히는 사실은, 지리가 한번도, 단 한번도 이 ‘문화혁명’이라는 것에 반감을 갖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리는 아버지가 우익 반동인지 아닌지를 의심하기만 했지, 마오쩌둥이 잘못하고 있다는 의혹 따위는 추호도 품지 않는다. 마오쩌둥도, 문화혁명도 무조건 옳은 것이다. 자신이 지주 집안의 딸이라는 사실이 어찌나 괴로웠던지, 지리는 경찰서에 가서 자신의 성을 바꾸려고까지 한다. 경찰은 그런 지리를 반갑게 맞는다. ‘그래, 네 출신성분이 어떻든, 그런 관계를 끊어버리고 마오쩌둥님께 충성만 맹세하면 넌 우등시민이 될 수 있단다!’
* 이 전개는 가X낙스나 클X프의 막장계열 픽션이 아니며, 역사에 기반한 자전소설의 내용임을 재차 알려드립니다.
이 문화혁명의 가장 무섭고 두렵고 끔찍한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진심으로 사랑하던 가족끼리도 서로를 고발하고 연을 끊는 판에 누구를 믿고 의지할 수 있을까? 아무리 아버지를 존경해도, 그 아버지가 마오쩌둥에게 반하는 행동이나 말을 했다면 용서없이 고발해야 한다는 지리의 신념. 어린 학생들은 그렇다치고 학교 선생님들마저, 그렇게 학생들에게 당하고 홍위병에게 수모를 겪으면서도 ‘마오쩌둥은 옳다. 지금 내가 당하는 것은 행정상의 착오 때문이다’라고 생각했으니 정말 말 다했다.
이 소설의 끝나는 지점은 그래서 슬프고 가슴 아프다. 문화혁명은 1966년부터 마오쩌둥이 사망할 때까지 10년이나 지속되었다. 따라서 소설의 결말에 이르러서도 이 모든 미친 행위는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 작품의 엔딩은 그런 것이 아니다.
「붉은 스카프」의 마지막 장에서, 지리는 ‘도저히 내 가족을 버릴 수는 없다. 온 힘을 다해 지키겠다’라고 처음으로 결의한다. 콕 찍어 비교하지는 않았지만, 그 말은 즉 마오쩌둥이 아니라고 해도 가족을 선택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어찌나 가슴이 아리던지. 솔직히 보면서 지리가 그토록 사랑하는 아버지를 배신하지는 않을까 내내 가슴을 졸였다. 거의 그럴 뻔한 순간도 많았고.
이런 시대를 겪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모든 것이 순식간에 변할 수 있음을, 정치가가 변덕 좀 부렸다간 자신이 믿던 모든 이들이 자신을 비난하고 돌아서고 매질할 수 있다는 것을 겪어본 사람들은 어떻게 인간 사회에서 발붙이고 숨쉴 수 있을까? 그런 거대한 상처를 안고서도.
사람의 신념이란, 뭔가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종류의 것일까. 이 땅에 하나의 개인으로 태어난 이상, 접할 수 있는 정보는 모두 어느 정도 가공되고 왜곡된 사실들이다. 일본 만화에서 흔히 나오는 공상과학적인 세뇌 플레이 따위 하지 않아도, 사람은ㅡ 아니 사람들은 얼마든지 정보를 통해 세뇌될 수 있다. 이런 생지옥을 낳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이런 걸 접할 때면, 이제 국가 폭력에 대한 책은 그만 좀 봤으면 좋겠다고 절로 바라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다음 책을 찾고야 마는 것은 이미 관성이 되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아직도 뭔가 더 알아내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인가.
그 바람이 뭔가를 바꿀 수 있을까?
ps : 북한 어쩔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