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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삼청동 길에서의 기록입니다.
금요일에 날이 새도록 지켜보았었기 때문에 토요일에는 가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서 그냥 가볍게 걷기만 하고 돌아오려고 가방도 옆으로 메고 완전 피크닉 복장으로 차려입고 갔는데 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요... 광화문에 도착한 것이 8시 40분쯤. 그런데 닭장차가 어찌나 빽빽하게 인도와 차도를 갈라놓고 있는지 속된 말로 쥐새끼 한 마리 들어갈 구석이 없더군요. 촛불시위에는 여러번 참가했지만 이랬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닭장차끼리 앞뒤를 붙이면 인간은 통과를 못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게다가 제가 도착했을 때는 시청 앞 지하도를 봉쇄하고 있었기에 건너편 시청광장으로 갈 수조차 없었어요. 결국 다시 광화문 지하도까지 돌아가서 건너갔지요. 전경이 정말 새까맣게 많긴 하더군요. 오늘 아침에 비하면 새발의 피입니다만. 가면서 H님과 K님께 마감 독촉(...)을 하다가 두 분 다 집회에 와 계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하지만 뭐 만나는 건 포기하고 있었고... (집회는 대개 혼자 다니는 버릇을 들여서요;; 블로그에 정치 관련 포스팅을 자제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였습니다만) 그저 H님의 마감을 방해하다니 2MB 더욱더 용서할 수 없다! 라면서 불타올랐죠. 참 바보 같아요. 그렇게 우둔했다니. 도착하고 얼마 안 되어서 곧 촛불행진이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따라간 행렬은 시청 광장 오른쪽으로 빠져나가서 롯데백화점 앞으로 돌아 청계천을 건너 동십자각 방면으로 빠지는 루트를 탔어요.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행렬이 세 줄기로 분산되었는 줄도 모르고 있었지만. 그런데 올라가다보니 연합뉴스 건물 뒷골목에서 닭장차 서너대가 길을 막고 있더군요. 걸으면서 행렬을 상당히 앞질러 온 탓에 굉장히 앞쪽에 있었어요. 사실 닭장차 매연에 쿨럭거릴 정도로 최전방에 있었구요... 그 대로는 닭장차로 꽉 막혀 있었고, 한 사람 정도 지나가게 난 양끝 틈에는 전경들이 막고 서 있어서 들어갈 수가 없었어요. 그 앞에서 “길을 열어라!” “불법주차 차 빼라!”고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소릴 지르고 노랠 불러도 묵묵부답. 몇몇 사람과 기자들이 닭장차 위로 기어올라가기도 하고 맨 끝의 닭장차는 사람들이 다같이 흔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대충 두 시간을 대치했는지... 한 발짝도 못 나가고 닭장차 앞에서 소리만 지르고 있으니 정말 소모전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모르긴 몰라도 후방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많이들 해산했을 거예요. 그런데 어느 순간, 위에 올라갔던 한 학생이 “닭장차 뒤에 전경들이 없어요!”라고 소릴 질렀어요. 그 말을 듣고 보니 정말로 양 끝을 막고 있던 전경들이 없더라구요. 원래 한 50명 정도 있었다고 했는데 왜 철수했는지는 지금도 미스테리네요. 여튼 그걸 아는 순간 사람들이 엄청난 함성을 지르면서 닭장차를 타넘기 시작했습니다. 어디서 사다리 두 개가 나와서 걸쳐졌는데, 솔직히 그 많은 사람들이 딸랑 사다리 두 개로 넘어오긴 무리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참;;; 대단하더군요 다들 어떻게 그리도 잘 넘어오는지 무슨 베를린 장벽 넘듯이 초스피드로 순식간에 닭장차 정복;;; 앞쪽에 있었던 저는 비교적 빨리 넘어간 편이었는데 이때 양 끝의 빈틈으로 빠져나오시던 K님과 합류했어요. 그렇게 올라간 곳이 경복궁 뒤쪽 삼청동 길. 거기서 또 닭장차로 막혀서 농성 시작했어요. 어제랑 똑같이 경고문에 “노래해” “개인기” 등등... 이때까지만 해도 분위기가 상당히 코믹했는데요. 하아... 닭장차 위에 올라가서 상황을 본 학생이 “전경들 50명 안 된다, 넘어가자”라고 했지만 솔직히 그렇게 못하죠... 사다리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고. 상황이 궁금해서(뒤에 있으면 정말 아무것도 알 수가 없거든요. 집에서 대기 중이신 H님의 문자 중계만이 힘이었음) K님께 앞쪽으로 가보자고 제의했고, 닭장차를 손으로 만질 만큼의 거리까지 왔어요. 오른쪽 닭장차 끝은 건물 앞의 움푹 파인 사각 반지하 입구 때문에 완전히 막히지 못했는데, 거기는 전경들이 막고 있더군요. 그때쯤 사람들이 전경들을 떠밀고 그 틈으로 통과하자고 했고, 우 몰리는 바람에 얼떨결에 반지하 안쪽 모서리에 들어가 기대게 되었는데요. ......정말 깜짝 놀랐어요. 갑자기 전경들 뒤에서 허연 가스가 막 뿜어져 나오는 거예요. 이상한 소리에 퍼뜩 하늘을 올려다본 순간, 시야의 검은 밤하늘이 갑자기 하얗게 뒤덮이면서 미친 듯이 기침이 나고 코가 맵더라고요. 아뿔싸 싶으면서 무릎이 꺾일 뻔했는데 그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연기 속을 어떻게 달려나왔는지 모르겠어요. 주위는 온통 비명과 욕설에 아수라장이고, 흰 가루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웩웩거리면서 순식간에 흩어지는게... 첨에는 최루탄인 줄 알고 이제 죽었구나 싶었는데, 책에서 읽었던 묘사보다 괴롭지 않은 걸 보니 소화기 분말이거나 사과탄인 것 같더라고요. 여튼 엄청 신맛이었다는 것은 기억나요. 그런데 분사 거리가 생각보다 길어서, 저야 너무 가까이 있었으니까 완전 직격이었다 쳐도, 아무리 걸어도 분말 안 뒤집어쓴 사람이 안 보이는 거예요. 숨도 못 쉬겠고... 정신없이 휘저으면서 가로등까지 도망쳐온 다음에 K님과 간신히 합류하니 둘 다 옷 꼴이 완전 밀가루 쳐 발라 기름 넣기 직전의 튀김 꼴이었어요. 내가 왜 가벼이 생각하고 나들이옷을 입고 나왔던가 후회 막심이었죠. 그 사각 반지하 안에서 두 번인가 더 가스가 발사되었는데, 거기가 좀 밀폐공간이기 때문에 안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가스 맞으면 진짜 힘들어요. 그쪽으론 돌파 못한다는 얘기죠. 이렇게 되니 뭐... 답이 없더군요. 지금까지의 시위가 그랬듯 벽 보고 소리 지르다가 한 두시쯤 지친 사람 가고 남을 사람 남는 분위기가 될 줄 알았어요. 물대포 전까지는요. 대열의 오른쪽에서 가스 먹고 K님과 둘이서 튀김 꼴이 된 채로 왼쪽(경복궁 후문 도보)으로 갔더니, 몇몇 사람들이 경복궁 담을 막 뛰어넘으면서 뭐라고 악을 쓰고 있었어요. 그런데 너무 시끄러워서 전혀 안 들리는 거예요. 간신히 얻어들으니까 “경복궁 너머로 길이 뚫렸으니까 빨리 넘어와서 합세해라"는 얘기였어요. 그쪽은 난리도 아니었어요. 남자들이 문 앞에서 밀어붙이고, 여자들은 돌난간 두드리면서 빨리 넘어와 달라고 소리지르고... “이쪽으로 넘어오세요! 남자분들 도와주세요!” 그런데 구호를 못 맞추니까, 개개인이 그 시끄러운 곳에서 아무리 넘어오라고 악을 쓰고 난리를 쳐도 전~혀 안 들리는 거예요. 처음에 조금 노력하다가 점차 지치더라고요. 아무리 말해도 안 들리니까. 그런데 그때였어요. 돌담 너머에서 바깥사람들한테 넘어오라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갑자기 밤하늘에 시허연 줄기가 팍 터지면서 사람들에게로 마구 떨어지는 거예요. 엄청난 비명이 터져나오면서 순식간에 대오가 무너지는데, 돌담 너머에서 발사 장면을 보고 있던 저는 처음엔 너무 황당해서 그게 뭔지도 몰랐어요. 닭장차 한참 위에 떠 있는 웬 노란 장치에서 허연 분말 같이 보이는 것이 쏟아지는데, 딱 스필버그의 <우주전쟁>에서 세발달린 우주선이 사람들을 공격하는 장면이라 현실감이 없더라고요. 허연 가루가 풀썩풀썩 일어나는 것마저(물줄기가 그렇게 보여요) 똑같았어요. 너무 어이가 없어서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게... 악몽임에 틀림없지만. 그게 살수차에서 뿜어대는 물대포였습니다. 좀 떨어진 곳에서 봤는데도 정말 위력이 엄청나더군요. 성인도 그냥 밀려 나가떨어져요. 순식간에 사람들은 홀딱 젖고 물바다가 되고, 양 옆에 서서 물대포를 피한 사람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그렇게 무력감을 느껴본 적이 별로 없는데 말이에요. 그게 자정쯤이었는데, 참 기가 막혔던 것이... 어차피 이쪽에는 그 저지선을 뚫고 넘어갈 방법이 없었거든요? 닭장차를 타고 넘어가봤자 반대편에는 전경들이 있으니 하나 하나 내려갈 때마다 하나 하나 잡혀들어갈 뿐이고, 양 사이드도 가스를 뿌려대니 못 들어가고, 그러니 그냥 내버려두면 언제나 그랬듯이 두세 시쯤 자기 풀에 죽어서 해산할 것을 왜 물대포 따윌 쏴가지고 사람들이 악에 받치게 하냔 말입니다. 무대응했으면 이리 되지도 않았을 텐데. 덕분에 사람들이 전부 ‘끝장 보기 전까진 집에 안 간다’ 분위기가 되고 만 거에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 장면의 이미지가.. 너무 충격적이었거든요. 그 높은 곳에서, 자그맣게 보이는 수많은 군중을 향해서 밀어붙이는 물줄기. 정말 무서웠어요. 그런데 그걸로 끝나지 않은 거예요. 멀리서 맞아도 날아갈 만큼 강한 물줄기를 바로 아래 있는 닭장차 천장 위로, 그 위에 올라간 기자진과 시민을 향해 뿌려대기 시작했어요. 그 살수차 수압이 절대로 만만하게 볼 게 아니거든요. 직격당하면 안구가 어긋날 정도로... 그런데 그걸, 2미터도 안 되는 그 거리에서, 사람들 머리 위에 쏴댄 거예요. 거기에 깃대를 든 시민이 저항하니까, 그 사람한테 핀포인트로 맞춰서... 그 물줄기를 맞으니까 결국 사람이 못 버티고 벌렁 미끄러져서 차 아래로 떨어지는데... 그걸 보는 순간 온몸이 싸늘해지면서 정신이 멍해졌어요. 아까 다같이 타넘었던 그 닭장차... 높이는? 저 앞쪽에서 손톱만하게, 개미처럼 보이는 사람이 바둥거리다가 머리 위의 물줄기에 맞고 떨어지는 모습. 그게 너무 충격적이고 비현실적인 거예요. 사방에서 경악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다가 급기야는 새 구호가 생겨났습니다. 처음에는 한덩어리로 몰려서 잘 안들리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이쪽으로 파도처럼 커져오면서 점점 선명한 목소리로 들려왔어요. “살인자! 살인자! 살인자!” 이 순간에는 더 이상 여유도 없고, 해학도 없고, 남은 것은 공포와 분노밖에 없는 거에요. 사람이 떨어지는 광경, 그리고 수천 명이 한목소리로 외치는 “살인자”. 수위 조절한 옛날 애니에나 나오는 유치한 비난이라고 생각했던 그 단어가 그렇게 무섭게... 들린 건 처음이었어요. 정말 이 모든게 꿈이었으면 하고 얼마나, 진짜 얼마나 간절하게 바랬던지요. 하지만 이쯤 되니까 이젠 도저히 집에 못 가겠는 거예요. 어차피 차도 끊겼지만 그게 아니라도, 이걸 끝장 보지 않고는 돌아갈 수 없다는 그런.... 분노. 근처 공중 화장실에 늘어선 줄에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앞에 서신 의료반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하게 되었어요. 부상자가 엄청나게 많다고, 맨손인 사람들에게 이게 무슨 짓이냐고 분개하시더라고요. 어떤 학생은 수압 때문에 안구에 손상이 왔고, 어떤 학생은 전경이 던진 뭔가에 맞아서 눈 아래가 찢어졌고, 아까 떨어진 분은 뇌진탕으로 실려갔다고... 이런 피비린내 나는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지금 내가 2008년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것이 맞는가, 이 기가 막히는 상황은 다 무엇인가 싶어서 팔다리에 경련이 올 지경이었어요. 처음에는 물대포 발사할 때마다 횟수를 세었는데 나중에는 너무 많이 쏘아대니까 의미가 없어졌어요. 흠뻑 젖은 사람들이 뒤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서로 몸을 맞대고서 덜덜덜 떨고 있는데 너무 안쓰럽더라구요. 가슴도 아프고... K님 말따나 차라리 물대포를 맞으면서 버티고 말지 이런 무력감이 독처럼 스며드는게 미칠 것 같았어요. 광주에서 시민들이 차타고 올라온다는 둥(결국 루머였지만 사람들이 광주를 어떤 곳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증거라 하겠지요)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 발권이 중지되었다는 둥(이건 지금도 사실 여부를 모르겠네요) 대테러부대가 투입되었다는 둥(이건 오늘 아침 일곱시에 직접 눈으로 봤어요),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 없고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건 H님이 안 주무시고 계속 보내주시는 속보 요악 문자밖에 없었어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시위의 시 자도 경험한 적 없을 2-30대가 대부분이었는데 어쩜 그렇게 적응을 빨리 하는지, 한쪽에서는 여성분들을 모아 놓고 다 같이 전달사항을 소리지르게 하고(그제서야 뭐라고 말하는지 들리더군요) 한쪽에서는 의료진이 사람들 응급처치를 하고 있고, 바닥에는 타다 남은 모닥불의 잔해와 비에 눌어붙은 종이들이 끈적하게 녹아붙은 상태. 그곳에서 K님이 주워올리신, 알이 다 깨지고 짓밟히고 진흙투성이가 된 누군가의 안경. 울컥하더군요. 매캐한 모닥불 연기가 오르고 있는 아스팔트 위를 보니 정말 영락없는 피난민들이고... 야전이 따로 없고. 기가 막힌다는 표현 오늘 너무 많이 쓰네요. 어휘가 빈곤하다... D 언니가 다른 친구 연락을 받고서 택시로 달려왔다고 문자를 보내왔어요. 분명 사람들이 지쳐서 많이들 돌아갔는데, 전체 명 수가 그리 줄어들지 않았던 이유는 새벽에 자다 말고 뛰쳐나오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더라고요. 김밥이랑 오예스랑 물, 비옷 같은 것이 주변으로 막 무료 배포되고, 물에 젖은 바닥에 앉을 수 있도록 공장에서 자르지도 않은 듯한 기나긴 은박 돗자리를 통째로 들고 오고, 가방에 ABC 초콜렛을 넣어왔던 학생이 봉투를 뜯어서 주변에 돌리는 등, 지원품들이 앞뒤로 퍼져나가기 시작했어요. 도대체 이 밤중에 어디서 저런걸 구해오는 건지.... (심지어 새벽 3시경에 짜장면 배달 오토바이가 들어와서 다들 폭소;;;) 어떤 학생은 ‘다음 아고라는 지금 알바들에게 점령당했다, 다들 여기 나와버리는 바람에’라면서 웃는데 마음이 짠했어요. 솔직히, 지인이나 친구들이 나와주는게 기쁜지 슬픈지도 모르겠더라고요. 이런 위험한 상황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은데, 저나 다른 분들이나 무기도 없고 가진 거라곤 머리 수밖에 없으니 사치스런 생각이잖아요. 일본 만화 속 주인공처럼 “내가 모두를 지켜줄게!”라고 멋지게 말하는 건 불가능한 거겠죠. 이건 현실이니까... 그게 좀... 무력감이 느껴졌어요. 그 와중에 H님으로부터 여고생이 실명되었고, 진중권 씨가 연행되었다는 소식이 도착했습니다. 주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다같이 문자를 보면서 경악했어요. 무슨 일이냐고 몰려든 사람들에게 직접 보라고 휴대폰을 비출 때마다, 어둠 속에서 새어나오는 형광빛에 보이는 얼굴, 얼굴, 공포... 아 정말, H님이 확인해주시기 전에도 실명되었다는 소리가 사람들 사이에서 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외부에서 문자가 날아오니까 정말 미치겠더라고요. 앞을 못 보게 되었다는 얘기죠 그거? 그게 만일 저였다면... 나라면? 나였다면 어쩌지? 그 애는 어쩌지? 그때 우리가 제일 불안했던 건,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걸 과연 메인 방송에서 다뤄줄까? 또 씹고 지나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었어요. 그래서 일반 시민들이 깨어날 때까지 조금이라도 더 오래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과제가 되었고, 효자동 골목이 진압되었다는 문자가 날아온 뒤 그 병력이 그대로 경복궁 정문을 덮치는 것을 멀리서 지켜봤어요. 날은 훤하게 밝아오는데, 경복궁 정문 앞의 사람들 정말... 대단하더군요. 다섯 시쯤 되고 날이 밝으니까 경찰도 초조해졌는지, 살수차 두 세대가 한꺼번에 사람들을 집중 공격하면서 밀어내는데 진짜 끈질기게 버티는 거예요. 7천 명 정도가... 거짓말 안하고, 다섯 시부터 여섯 시까지 물줄기가 안 멈추고 계속 미친 듯이 쏴대는데 그걸 그냥 다 고스란히 받으면서 안 움직이더라고요. 기가 막혔죠. 맘 같아선 전부 다 경복궁 앞으로 지원가고 싶은데, 삼청동이 제일 마지막 보루인데 여기 있는 사람 수가 적어지면 바로 진압 들어올 테고, 후방까지 막히면 일곱 시까지 -뉴스 나오고 사람들이 움직이는 시간까지- 버틸 수가 없잖아요. 발을 동동 구르면서 응원 구호 외치고 있을 수밖에 없었죠. 그래도 남자 분들이 많이들 경복궁으로 달려가셨지만요. 일곱 시까지만, 일곱 시까지만... 시계를 보고 또 봐도 시간이 정말 안 갔어요. 그러다 여섯시 몇분이었나. 결국 경복궁 앞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이리로 밀려오는 게 보였어요. 그 수많은 사람들이 물을 뚝뚝 흘리면서 와아 하고 뛰어오는데... 하 참, 오늘 별의별 걸 다 봐서 그 감정을 일일이 기억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도로 오른편에 서 있었는데 왼쪽 도로로 살수가 퍼부어졌기 때문에, 그 뒤로 쫓아온 살수차가 사람들에게 물을 쏘는 장면을 코앞에서 봤어요. 가까이서 보니까 정말... 무서워요. 말이 좋아 물이지, 그거 높이 올려 쏘는 것 같아도 절대 아니에요. 심한 폭우 이런 수준이 아니라, 정말 사람을 직격해요. 비닐시트 쪼가리 하나 가지고 그걸 요령좋게 막아내는 사람들을 보자니 얼마나 많이 당했는지 알만 했어요. 그리고 조금은 버텼지만 결국, 여섯시 사십분쯤에는 삼청동도 무너지고 어젯밤 닭장차와 대치했던 그 길까지 밀려났습니다. 일곱시 십분 전에, 경찰이 “우리는 시민과 대화를 하고 싶습니다”(사람들 일제히 야유. “물로 사람 날릴 땐 언제고 날이 밝으니까 대화냐!”) “청계광장으로 이동해주십시오” 이런 요구를 하더라고요. 이제 와서 밤새 아무 일도 없었던 척하라고? 그게 말이 되느냐, 우린 여기서 못 물러난다, 하고 야유하니까 아직도 정신 못 차린 경찰이 ‘협상할 수 있는 대표 분은 나와라’라고 말하더군요. 그랬더니 어느 재치 있는 분 덕에 모두 다 같이 ‘우리가 대표다’라고 외쳤어요. 이해할 수 없겠죠. 협상 가능한 대표따윈 없다는 걸. 개개인이 전부 대표고, 선동되거나 지휘된 게 아니고, 전부 각각의 목적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하나같이 모여서 연대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저도 보기 전까지는 몰랐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게 진실인걸요. 주최가 없고, 대표도 없고, 그래서 지도부가 없는 모임의 한계를 분명히 가지지만(인터넷과 핸드폰으로 이루어지는 정보의 공유가 아니었다면 집단의 성립조차 불가능했을 텐데, 지도부의 부재를 그게 어느 정도 메꿔주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아름답고 의의가 있는 대표들. 뒤집어서 말하면 요구의 수위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조금만 들어주는 척했어도 순식간에 사분오열로 와해되기 쉬운 집단인데, 그렇게 생각하면 MB는 이 얼마나 멍청한 것인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우리가 말하는 걸 좀 들어라’ 그것 하나뿐인데, 그 시늉도 못해서 사람들을 물과 가스로 밀어버리니 답이 없고 각이 안 나오네요. 전경과 시민들이 대치하고 있는 그 공간에 기자들이 둥그렇게 둘러서서 뭔가를 찍고 있더라고요. 뭔가 싶어서 가봤더니, 아.... 콘크리트 위에 피로 흥건하게 젖은 비옷이 놓여있는 거예요. 정말 보는 순간 머리가 띵해지는게, 아무 생각도 안 나더라고요. 예비군들이 '위험하다, 전경 자극하지 말라' 하면서 저희를 뒤로 물렸어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친 걸까요. 저 피는 또 누구 거지? 피라는게 단지 붉은색이 아니더군요. 이제까진 그냥 그렇게만 생각했었는데. 그리고 일곱시 반쯤, 결국 물량공세로 나온 전경이 순식간에 사람들을 ‘밀어버렸습니다’. 정말로, 인사동 앞의 그 넓은 사거리를 새까맣게 꽉 채운, 앞뒤좌우 어디를 둘러봐도 거리 위에 전경 옷 색깔밖에 안 보일 만큼 잔뜩 몰려든 전경들이 사람들을 저 만치로 밀어서 쫓아내 버렸어요. 소문대로 전국의 전경들을 다 붙잡아 올린 건지, 우리보다 몇 배는 많겠던데요. 그야말로 바퀴벌레 떼마냥(폄하가 아니라 정말 딱 그 느낌) 우글우글 움직이는 것이.... 이번주 들어서부터 전경 모인 걸 하도 많이 봐서 이젠 안 무서울 줄 알았는데 머릿수가 이렇게까지 많으니까 차원이 달랐어요. 이때 반대편 인도에 서 있다가 전경들에게 가로막히는 바람에 따라가지 못하고 뒤쳐졌는데요. 인도 위에 서 있던 여성분들도 붙잡아 가는 거예요. 한쪽에서는 저체온증으로 떠느라 정신을 못 차리는 여성분을 의료진이 살피고 있고, 바로 앞의 셔터를 내린 빵집 안에서는 유리창 너머로 알바생들이 수근대며 구경을 하고... 도대체 그때의 기분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단 하나 떠오른 것은 ‘이제 다시는 종로와 인사동길을 예전처럼 걸을 수 없겠구나’라는 거. 그 비현실적인 공간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요. 밀려간 사람들 쪽으로 쫓아가볼까도 했지만 발목을 접질리신 K님이 너무 지쳐보이셔서 일단 집에 가기로 했어요. 식욕은 없었지만 집에 가봤자 먹을 것도 없고 하니 일단 뭐 좀 배에 집어 넣어야겠어서 근처 식당으로 들어갔지요. 이상하게 정신이 말짱하더군요. 이제까지 올나이트로 밤샌 적이 딱 두 번 있을 정도로(한 번은 대학 첫 OT 때, 두 번째는 토가이누 책 만들 때) 잠을 자야 하는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피곤하지 않았어요. 긴장을 너무 했던가봐요. K님이 추천하시는 종로맛집 설렁탕을 먹는데도 맛을 하나도 못 느끼겠더라고요. 귓가에서는 "살인자" 소리가 떠나질 않고 반복되고, 눈앞에서는 떨어지는 사람이 지워지질 않고. 그런데 아침 일찍 설렁탕을 먹으러 나온 손님들의 대화 내용이나 TV에서 내보내는 오락 프로 소리를 듣고 있자니 너무 평화로워서, 너무 서울의 평온한 아침 그대로라서 더 울컥하는 것이... 백년이나 전통을 지켜왔다는 그 설렁탕집의 옛스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치 타임머신이라도 탄 것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요. 80년대에는 더했고, 물대포는 지난 십년 동안에도 쐈을지 모르죠. 하지만 그런 사실들이 제가 겪은 일을 정당화하진 못한다고 생각해요. 그 자리에 어린 학생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수압에 사람들이 떨어지고 쓰러지고 가스를 뒤집어쓰고 도망치고... 원래 다 그런 거라고 말할 건가요? 왜 이렇게 사람이 하려는 말을 안 듣는 건가요? 미리 얘기해두지만 난 투표 했고 너 안 뽑았거든? 그래도 난 기왕 뽑힌 거니까 잘해보라고 응원하려고 했어. 다른 수가 없잖아. 하지만 하는 꼴을 보자보자 하니 정말 대운하 팔 것 같길래, 너 싫어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 그러니 제발 국민 하는 말 좀 들어라 하고 촛불 수 보태주러 간 거야. 그런데 이게 뭐지? 분명히 이 상황에서도 하나도 안 들리겠지.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겠지. 언론통제하고, 조중동 거느리고, 그런 식으로 우리 부모님을 자기 편 만들고 이겼다고 생각하겠지. 그리고 인터넷에서는 또 양비론 펴는 사람들이 나올 거고, 감정에 상처입은 사람의 딱지를 떼면서 이성적인 설득을 강요하겠지. 그래야 할 때가 있겠지만, 지금은 아냐. 난 똑똑히 봤고, 지금은 그걸 볼 수밖에 없었던 자신이 부끄러워서 미칠 것 같애. 그래, 난 반발하는 민중이라는 주제에 흥미가 있었고, 짧은 기간이지만 관련 책도 열심히 읽었고, 그걸 소재로 1600매짜리 소설도 썼었어. 하지만 현실은 다르구나. 전혀 다르구나. 그게 너무 무섭고 부끄럽고 창피하다. 이 기억이 우리 젊은 세대의 가슴 속에 패배의 상처로 남아서 끝나면 어쩌나 하는 것이 제일 두려워요. 아무리 발버둥쳐도 결국 현실은 그대로라는, 뭐 그런 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요? 언제까지 절망하지 않고 있을지 모르겠어요. ps : 은애, 지은이, 서진이, 치셀님, 스란이, 계짱, 걱정해줘서 고마워. 난 멀쩡하니까 걱정하지 마. 문자중계 해주신 Hylls님과 찬휘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게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그리고 같이 자리를 지켜주신 안주인님....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혼자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는 말밖에는. ps 2 : 요 앞 골목에서 놀고 있는 아이가 "OOO! OOO!"이라고 박자 맞춰 소리 지르는게 창 너머로 들린다. 그 찢어지는 어린아이 특유의 목소리가 "살인자"로 들려서 깜짝 놀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