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서울에서
제가 이 블로그를 만들 때 마음 속에 세운 규칙 중 하나가 '정치 이야긴 하지 않는다' 였는데 당분간 그 규칙 접어두겠습니다.


촛불집회는, 이제 절대로 실패해서는 안되는 곳까지 와버렸습니다.

여기서 아무 성과도 얻지 못하고 끝나버렸을 경우, 사회가 얼마나 팍팍하고 시민을 빨아먹는 구조가 될 것인가는 둘째치고라도
'노력해도 안되는구나, 윗대가리들은 그대로고 우리들에겐 아무 힘이 없구나'하는 좌절의 상처를 지금의 10-20대가 안고 살아가게 될 겁니다. 발버둥치던 좌파가 무너진 후 극단적인 정치적 무관심과 개인사만 남게 된 옆 섬나라처럼. (그 덕분에 일자리를 얻을 수 없었던 좌파들이 3D 업종이었던 애니쪽에 흘러들어가면서 엄청난 작품이 많이 나오는 부수효과가 있긴 했습니다만... 필요없어!)

전 그런 한국은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 한국에서 살고 싶지도 않습니다.

지고 싶지 않습니다.
질 수도 없습니다.
제가 이제까지 썼던 글과 저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이 순간을 끝까지 지켜볼 겁니다.
흥겹게, 놀면서, 즐기면서, 주최없이, 평화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촛불집회. 이런 혁명을 시도한 역사가 또 있었을까요.
한국 근대사를 공부할 때마다 느꼈던 감동보다 더 큰 긍지가 그 안에 있습니다.
전 이 나라의 민중이 자랑스럽습니다.



돔님이 추천해주신 노래 하나 첨부합니다.
아놔 가사 완전 쩔어요..... orz 특히 후렴구.... 미치겠다
96년 노래라면서 지금 공감가면 어쩌자고? 응?
들어보고 싶으신 분들께 : 네이버에서 제목 검색하면 바로 청취 가능합니다. 목소리가 정말... 정말...


[92년 장마, 종로에서]

작사작곡 정태춘
노래 정태춘 & 박은옥


모두 우산을 쓰고 횡단보도를 지나는 사람들
탑골공원 담장 기와도 흠씬 젖고
고가 차도에 매달린 신호등 위에 비둘기 한 마리
건너 빌딩의 웬디스 햄버거 간판을 읽고 있지

비는 내리고
장마비 구름이 서울 하늘 위에
높은 빌딩 유리창에
신호등에 멈춰서는 시민들 우산 위에
맑은 날 손수건을 팔던 노점상 좌판 위에
그렇게 서울은 장마권에 들고

다시는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 마라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
비에 젖은 이 거리 위로 사람들이 그저 흘러간다

흐르는 것이 어디 사람뿐이냐
우리들의 한 시대도 거기 묻혀 흘러간다

워, 워...

저기 우산 속으로 사라져 가는구나
입술 굳게 다물고 그렇게 흘러가는구나

비가 개이면
서쪽 하늘부터 구름이 벗어지고
파란 하늘이 열리면
저 남산 타워쯤에선 뭐든 다 보일 게야
저 구로공단과 봉천동 북편 산동네 길도
아니, 삼각산과 그 아래 또 세종로 길도

다시는
다시는 시청 광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말자
물대포에 쓰러지지도 말자
절망으로 무너진 가슴들
이제 다시 일어서고 있구나

보라 저 비둘기들 문득 큰 박수 소리로
후여 깃을 치며 다시 날아 오른다 하늘 높이

빨간 신호등에 멈춰 섰는 사람들 이마 위로
무심한 눈길 활짝 열리는 여기 서울 하늘 위로

한무리 비둘기들 문득 큰 박수 소리로
후여 깃을 치며 다시 날아 오른다 하늘 높이

훨, 훨, 훨.....
by 살아가자 | 2008/06/04 08:15 |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 트랙백 | 덧글(10)
트랙백 주소 : http://tutu.egloos.com/tb/3770818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OpenUrEyes at 2008/06/04 08:46
저도 지난 제 청춘이 부끄럽지 않기 위하여..
Commented by OpenUrEyes at 2008/06/04 08:47
참 이 음반은 아마 93년 음반일꺼예요.
Commented by 양군 at 2008/06/04 08:54
후렴구가 마치 최근의 모습들을 반영한 것 같군요. 90년대 노래일텐데도 말이죠.

이제는 향수로 남아야 할 노래가 직접적으로 와닿는다는건 그만큼 겉모습만 바뀌었다는 뜻이 아닐지..

후우.. 한숨만 나오네요-_-
Commented by iamsia at 2008/06/04 09:22
왜 90년대 노래가사가 2008년에 들어맞는단 말인가요. ㅠㅠㅠ
Commented by 보바도사 at 2008/06/04 09:36
희대의 명곡이지요. 93년에 전작 '아. 대한민국'처럼 사전심의 무시하고 불법으로 나왔다가 결국 96년 사전심의 철회하게 만들고(6월 5일 심의폐지, 10월 31일 선고유예)... 근데 저 가사 '웬디스 간판'(이랑 '날아오르는 비둘기') 만 빼면 지금도 상당히 들어 맞... OTL 그리고 같은 앨범에 명곡들 몇 곡 더 숨어 있으니 잘 들어보세요. 앨범 자체를 구하실 순 없겠지만... (집에 '합법판'으로 한 장 가지고 있습...)
Commented by ㅍㄹㄹ at 2008/06/04 10:15
개인적으로 좋아하던 정태춘씨의 노래들이 지금 다시 힘을 받는군요. '촛불'이나, '시인의 마을'등 서정적인 곡을 불렀던 과거의 자신이 부끄럽다, 세상은 아직 그렇게 아름답지 못하다..고 말하시며 언제나 알게 모르게 시위현장마다 나서서 노래를 불러주시는 그 분의 위대함이 새삼 다시 느껴집니다.(그 분에 대해 좀 알아 보시는것도 괜찮을듯 합니다. 정말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그렇죠. 절대 물러설수 없죠. 저도 당분간은 이글루스 인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Commented by LaJune at 2008/06/04 13:17
현실이 '정치얘긴 안한다'는 기본원칙을 무시하게 만드는걸요. 저도 잡상이나 적는 이글루에 요즘은 온통 촛불집회 관련 이야기 일색이되네요.

정태춘 박은옥님 너무 좋지요. ;ㅅ;
Commented by 리안 at 2008/06/04 13:20
아우. 정말 90년대 노래가 2008년에 딱 맞아떨어지다니. 이런 비극이 또 어디있습니까. ㅜㅜ
요즘 계속 그러고 있지만 저도 이 순간을 끝까지 지켜보겠습니다. 잠 못자는 게 대숩니까?! 함께 그 장소에서 밤을 새우지 못하는게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Commented by 보바도사 at 2008/06/04 13:52
그나저나 저 제목을 어디서 많이 봤다... 고 생각했는데 엇그제 제가 저런 제목으로 내용없는 글(...) 올렸었군요. (...기억력 감퇴 증상이... 끌끌...)
Commented by 이세린 at 2008/06/04 14:59
정치 이야기를 안한다라... 저도 블로그 만들때 논쟁거리가 날만한 이야기(정치, 종교, 사회이슈)는 절대 블로그엔 안 쓰겠다! 라고 결심했는데 만든지 2달 반만에 나라꼴 때문에 자꾸 정치글을 쓰고 있습니다...ㄱ- 이런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세상이 참 안타깝군요.

:         :

:

비공개 덧글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


rss

skin by 이글루스